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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감정적 공감이 아닌 이성적 공감을 이끌어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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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시사직격> 167회, [시한부 엄마의 호소문, '우리 새끼'를 부탁합니다] 방송 썸네일 ⓒKBS
 
 
‘방송’, 감정적 공감이 아닌 이성적 공감을 이끌어내야 할 때 
- KBS1 <시사직격> [시한부 엄마의 호소문, ‘우리 새끼’를 부탁합니다]
 
지난 6월23일 KBS <시사직격>에서 방송된 [시한부 엄마의 호소문 ‘우리 새끼’를 부탁합니다.] 편을 봤다. 두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두고 암 투병 중인 엄마, ‘김미하’ 씨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성인 중증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짚으며,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담았다.
 
2023년 6월13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 600여 명이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 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하는 모습이 담겼고, 5년 전 삭발투쟁과 삼보일배, 그리고 단식투쟁을 감행하며 ‘발달장애인도 익숙한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지역주민으로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안전하게 살고 싶다고, 지원체계를 구축해달라’고 외쳐 온 세월을 전했다. 이 배경을 올해 들어 벌써 4건이나 발생했고 매년 늘고 있는 사회적 참사, 즉 미흡한 지원체계에 견디다 못한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와 동반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의 일상, 무엇보다도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자녀들이 겪을 현실에, 부모들의 두려움과 절박함에서 비롯된 호소임을 전했다.
 
이날 <시사직격>은 시사에, 다큐멘터리를 접목한 프로그램의 형식을 살려 일련의 과정과 현실을, 현장과 당사자(부모) 중심으로 담아주었다. 그동안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들과 돌보는 그 가족들의 고통 받는 현실이 일부에 불과할 테지만, 영상에 담겼고, 나도 모르게 눈물과 함께 왜 이런 현실일까를 되뇌며 분노가 차올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방송은 역시 감성 매체구나'를 다시금 실감하게도 됐다.
 
사실 방송 전부터 제목에서 밀려오는 우려가 있었다. ‘왜’나, ‘어떻게’보다는 현상이나 결과에 주목하는 방송에서, 돌보는 부모의 입장이 중심에 놓이게 되면, 자연히 그 돌봄을 받는 장애가진 자녀는 그저 대상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송은 감성의 매체다. 드라마, 예능은 당연하지만, 교양,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까지도 이성보다는 감성을 건드리는 관점과 연출이 노출되는 것을 볼 때면, 감성 코드는 방송의 기본 매뉴얼인 듯싶기도 하고, 이 감성 코드로 인해 문제의 본질을 살짝 비껴갈 때면 우려가 앞선다.
 
이날의 방송도 이 감성 코드가 주요 화법에, 연출에 담겨 순간순간 우려가 현실로 재연됐다. 돌봄의 어려움, 이로 인해 지치고 고단한 부모의 일상을 설명하고 보여주며 집중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부모의 이런 힘에 부치고 고단한 일상을 전할 때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는 코멘터리 하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강조된다. 자해 행동은 물론이고 폭력성, 심지어는 가장 수치심을 건드리는 신변처리 문제 등이 적나라하게 재연된다.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의 특성임을 부모의 이야기나 내레이션을 통해 이해시키고는 있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장면들과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5%도 안 되는 00 씨”라든가, “아들의 힘을 당할 수 없는 노모, 잡으러 다니는 노모” 등의 장애를 부각하고 강조하는 부연 설명의 멘트들이 불필요하게 더해졌다. 특히 신변처리 같은 치부까지 자세히 이야기하는 부분은 부모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취재원 보호를 우선해 편집했어도 그 상황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시청하면서 출연한 부모나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사전에 알았다면, 과연 이대로 방송이 됐을까, 이 장면들을 발달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등등의 걱정도 됐다. 결정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입장과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은 되지만, 제작진이 의지가 있었다면 방법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태형’ 씨가 직업교육 받는 장면에서도 ‘태형’ 씨의 자립 가능성을 교사의 인터뷰로만 전했고, 방송 말미에 지원주택에서 자립해 생활하고 있는 장애 당사자들을 소개하면서도 이분들의 이야기, 자립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님의 입장과 바람만으로 전했다.
 
그나마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부모들이 인터뷰에서 자녀의 마음과 자신도 조절할 수 없는 행동임을 이야기해 주고는 있었지만, 장애인과 돌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에 더해, 감정의 공감을 건드리는 화법과 연출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만 인식시키며, ‘돌봄’의 권리를 가진 주체로써가 아닌 ‘돌봄’의 대상이라는 인식에 머문 내용과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가중된 돌봄의 무게는 자녀의 장애로 인해서보다는 부모의 돌봄을 당연시하는 사회의 인식과 암묵적 합의, 그리고 이에 앞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존엄과 권리가 무시되는 현실에 있다는 본질이 흐려졌다.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봤을까?, 과연 어떤 메시지가 전달됐을까? 참고로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거주시설 방향의 정책과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주택 등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돌봄과 자립을 위한 지원 사업을 축소하거나 예산을 줄여 장애계와 부모들의 요구와는 배치되는 방향의 답을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런 정부를 옹호하며 투쟁 방식을 비난하고 온갖 욕설과 세금만 축내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등의 혐오감을 조장하고 표출하는 일부의 정치인과 미디어(언론과 방송), 시민들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지역사회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고 권리다. 성인이 되면 자립하는 것 또한 존중해야 할 자유의지이고 자기결정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평등권이며, 기본권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나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특히 방송에서 소개된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생활하던 곳을 떠나, 산속이나 오지로 들어가 시설에 갇혀 살라고 떠밀고 있다. 정당한가.  
 
이날 방송을 보면서 부모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매달리는 장애인 돌봄의 현실에 앞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권리를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배제와 분리의 대상으로만 낙인을 찍는 세상과 정책에 대해 차별이라고 생각하게 된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 장애인의 돌봄과 교육, 자립은 현재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되고, 개인의 몫이 된다. 이런 사회에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라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돌봄’을 공동체 의식에서 바라보게 된 시청자들 또한 얼마나 될까?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한 다름을 가진 사람들과 이슈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를 대변하고 전달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미디어, 이 중에서도 대중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방송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현상과 결과에만 집중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과거의 전달 방식에서, 시청자가 조금 더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고 ‘왜’와 ‘어떻게’, ‘무엇’을 고민하게 하도록 이성적 공감을 건드려 주는 전달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작성자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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