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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마음으로

느림보 엄마의 성장 일기

본문

↑ 서희와 서호가 함께 손 잡고 있는 모습
 
서희는 만 세 살 무렵에 장애등록을 위해 서울대에서 발달검사를 받았다. 몇 주를 기다려 검사결과를 듣고, 얼굴이 눈물 콧물로 뒤덮인 채로 장애등록에필요한 의무기록들을 원무과에서 받았더랬다. 병원에서 별별 사람 다 봤을 텐데도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서류를 건네주던 원무과 직원분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무렵의 나는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창피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길 가다가도 울고 소리도 지르고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죽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죽기에는 사랑스러운 것, 지키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만 힘든 이 순간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어느 날인가 서희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면허가 없었음) ‘이대로나 혼자 내리면 어떻게 될까. 내려서 그대로 도망치고 싶다.’라고 무심결에 생각했었다. 그렇게 서희가 없는 내 삶을 생각하니 그때부터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아 나는 서희가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어떻게든 이 아이와 같이 살아나가야겠다는 결심을 부지불식간에 했다.
 
그즈음 남편과 같이 서희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다가 실수로 턱에 걸려 유모차가 뒤로 넘어간 일이 있었다. 서희는 뒤통수를 시멘트 바닥에 부딪혔다. 놀래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는데, 서희가 집에 오자마자 분수토를 했다. 결혼 전에 나는 간호사로 일했는데, 외상 등으로 뇌가 부어서 뇌내 압력이 상승하면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놀라서 서희를 차에 태워 응급실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서희가 머리를 다쳐서 죽으면 어떡하지... 서희가 내 삶에서 없어지면 어떡하지...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서희가 없으면 나는 살 수가 없는데 바보같이 서희의 장애를 원망하고, 서희를 원망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성당도 오랫동안 안 나간 나이롱 신자이면서 기도만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하느님 우리 서희를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살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서 서희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제발...
 
↑ 바람개비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서희
 
다행히 서희는 뇌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구토는 장염 초기라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서희를 버스에 혼자 두고 내리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죽을 것만 같았던 느낌, 그리고 서희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의 공포. 이 두 가지 상황을 겪고 나서 나란 사람에게 서희는 그냥 눈앞에 건강하게 살아만 있으면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무엇을 잘 하고 못하고, 장애가 있고 없고는 내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그냥 서희는 그 자체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로는, 대보름에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 때에도 서희의 장애가 없어지게 해 달라거나 무언가를 잘 하게 해달라고 빌어 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 가족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를 빌고 있다.
 
그래서 장애 아이를 둘이나 키우면서도 밝은 표정의 나를 보고 의아해하거나 미심쩍은 눈초리로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 있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웃는다.
 
자식이 눈앞에서 팔딱팔딱 건강하게 살아있으면 부모는 즐거운 것이지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물어보면 저랑 똑같이 대답할걸요. 뭘 잘해서 좋은 게 아니에요. 당연한 것을 물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편견과 혐오가 가득한 시선을 마주할 때, 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조합 일이힘에 부칠 때 사는 게 힘들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서희를 데리고 응급실을 달려가던 그 절박한 마음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걱정이, 내가 느끼는 마음의 부침이다 별거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냥 다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잘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면서 살겠다고 기도했던 그때의 그 마음을 지키면서 사는 스스로가 너무너무 기특하다고 셀프칭찬도 한번 해 본다. 그러고 나면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다시 펴지고, 오늘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다시 얻는다.
 
소감
1년 동안 <함께걸음>에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은 늘 분주하여 멈춰서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보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작은 쉼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독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읽고 <함께걸음>에 담긴 많은 목소리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정화 자갈자갈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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