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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로 웃긴다!” 그 당당함과 당연함에 대하여, 다큐멘터리 <우린 아스퍼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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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아스퍼거인>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나는 유머감각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재밌는 이야기도 내가 전하면, 다큐가 되고 주변이 갑자기 싸해진다. 글도 그렇다. 유머가 넘쳐나는 유연한 글을 쓰고 싶은데, 쓰고 나서 읽어보면 늘 딱딱하고 경직된 재미없는 글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말에서도, 글에서도 유머가 툭툭 튀어나오는 사람들이다. 다큐멘터리 <우린 아스퍼거인>의 ‘노아’, ‘뉴 마이클’, ‘이튼’, ‘잭’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린 아스퍼거인>. 이 네 사람이 코미디공연을 하기 위해 만든 팀의 이름이면서 이 공연의 전체 타이틀 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팀원인 ‘노아’, ‘뉴 마이클’, ‘이튼’, ‘잭’이 가진 장애(‘아스퍼거 증후군’), 이들의 여러 가지 정체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은 함께 코미디극을 쓰고 공연기획과 연출, 연기를 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에서 만났으며 서로의 유머감각을 알아차리고, 서로가 서로의 유머를 좋아하게 되면서 친구가 됐다. 유머를 좋아하고 유머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남을 웃기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향해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네 명의 친구들이 각자의 길을 가기 전에 ‘우린 아스퍼거인’ 팀으로써,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이야기, 자신들의 장애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고, 코미디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보여준다. 특히 자신의 장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짐작이나 추측에 의한 부연설명이나 극적인 전개나 연출 없이, 장애를 진단받고 수용하고 인정하게 된 과정과 자신의 장애를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모습, 자신들의 장애를 보는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저 카메라가 따라가고 담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중되고 이 이야기들은 결국 장애에 대한 다른 시선을 제안하는 단서들이 된다.
 
가령, ‘뉴 마이클’은 자신의 실제 뇌 사진을 보여주며 “의학적 또는 정신적으로 널리 퍼진 증상의 좋은 점은 돈을 받고 많은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죠.”라고 담담히 말한다. ‘노아’는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바지에 똥 싸는 게 멋진 일이라면 이 사람은 최고의 ‘쿨남’이다. 참고로 바지에 똥 싸는 건 멋진 일이다.”며 유머를 던진다. 카메라는 이들의 담담하고 장난끼 어린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나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렇지, 어떤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어리석고 손해인 것은 없지. 장애라는 틀을 짜놓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세상을 비트는 ‘노아’의 유머가, 예민하지만 자존감 넘치는 초긍정남 ‘뉴 마이클’의 위트는 천부적이지 않나.
 
이 팀의 리더 ‘노아’는 당당하게 ‘우리들은 우리를 웃기는 걸 한다.’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장애를 가지고 공연한다. 이 얼마나 당연하고도 당당한 발상인가? 2년 전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들의 이 당당함과 당연시하는 이 말이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장애를 가지고 공연한다.’는 말이, ‘장애는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소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공연 중에, ‘이튼’의 에피소드가 잊히지 않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진다. ‘이튼’은 기차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으며 기차 시간표를 줄줄 욀 만큼 기차를 좋아한다. 이런 ‘이튼’이 결국 기차와 결혼을 해 기자회견을 연다는 설정이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잭이 “왜 기차랑 결혼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를 떳떳하게 해주고 싶었소.”라는 ‘이튼’의 대답에,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공연장을 메운다. “자녀 계획에 대한 생각은 해보셨나요?”라고 묻자, ‘이튼’은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시간을 잘 지키는 엄마를 닮고, 항상 처지는 아빠를 닮지 않길 바랄 뿐이요.”라고 대답한다. 객석에서는 더 큰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성생활은 어떠십니까?”라고 묻자, ‘이튼’은 “다른 사람들과 같을 겁니다.”라고 답한다.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더크게 웃는다. 관객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정서가 다른 나도 웃었다.
 
이 장면에서 공연 홍보를 위한 인터뷰 중에 ‘노아’가 했던 말이 겹쳐졌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도전은 이 쇼를 멋지게 만들어서 자리가 차게 하는 거죠. 그리고 진짜 웃음이요. 또, 코미디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을 높이는 거죠.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이 주는 메시지예요.” 이날‘우린 아스퍼거인’ 팀은 웃음과 메시지 모두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이 공연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우린 아스퍼거인>을 다시 보면서 며칠 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 각각의 어법과 성향을 소재로 하는 코미디를 보며 오랜만에 진짜 크게 웃었던 게 떠올랐다. 한 끗이 다른 그 리얼함과 디테일에 감탄했다. 연기하는 코미디언들의 고향을 되짚어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엇보다 웃음의 의도와 메시지가 서로의 다름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을 내포하고 있어 편하게 공감하며 웃었다. 자기가 가진 다른 것에서, 아는 만큼, 경험한 것만큼, 생각하는 것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을 유머(재능)에 실어, 말하고 전하고 이행한 것이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코미디언이 ‘자신의 장애로 웃긴다?’는 다른 것인가? 우리네 현실에서는 ‘감히’라는 표현을 쓸 만큼, 상상 자체가 안 될 것이다. ‘장애로 울린다.’면 또 모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장애라는 외피의 틀을 가지고 보고 판단하고 치부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세상과 사람들에게 ‘장애보다 사람을 먼저 보라’, 아니 이보다는 ‘장애라는 다름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 당연한 것을 거부하고 혐오하며 배제의이유로 드는 세상과 당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어우러지고 즐기는 등 모든 것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노아’의 말처럼 이들이 가진 장애를 알고 인정하면 장애로 웃기는 이들의 코미디를 정말 한껏 웃으며 즐길 수 있다.
 
‘우린 아스퍼거인’ 팀이 자신들의 장애로 웃긴다는 것의 가치를 당당하게 말하고 이를 당연시하며 즐기는 관객들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로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연주와 연기를 하는 것, 그리고 글을 쓰고, 장애를 연구하는 것에서 ‘장애’가 그저 하나의 소재나 학문으로 또 재능이나 전문성으로 인식되고, 이런 욕구와 행위, 생각의 가치가 존중될 때 세상과 당신의 삶 모두, 지금의 몇 배는 더 풍요로워지고 편리해지며 안전해진다. 이 당연함을 터부시해 온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문화뿐 아니라, 사회 또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인지.
 
P.S. ‘노아’, ‘뉴 마이클’, ‘이튼’, ‘잭’에게 당신들의 유머 감각을, 그리고 정말 재밌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딱딱하고 건조한 문장들로 옮겨 미안하다 전한다. 내가 유머가 부족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다.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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