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치밀하게 사회의 장애통념을 깨려한 드라마가 있었는가 > 현재 칼럼


이토록 치밀하게 사회의 장애통념을 깨려한 드라마가 있었는가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본문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공식 포스터(사진출처. MBC 홈페이지) 
 
방송 전,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Black Out (이하 <백설공주>로 표기함)>은 방송가나 언론, 모두 우려가 컸다. 범죄스릴러물은 언젠가부터 지상파 주말극으로는 선호하지 않게 된 장르였고, 경쟁작인 드라마 <굿 파트너>는 이미 중반을 넘어서며 대중의 관심과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대 쪽에 섰다. 원작 소설이 워낙 흥미로웠고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골격으로 한 드라마 대본을 보고 10년 만에 연출 복귀를 결심한 변영주 감독의 안목을 믿었다. 우리의 정서와 사회상에서 그의 또 다른 해석이 뒷받침되어 한국적 범죄 스릴러물로 재탄생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백설공주>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두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고정우(변요한)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10년 후 출소한 그가 기억나지 않는 그날, 그 시각, 그 장소를 역추적하며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진실만을 밝히기 위해 견디고 버티며 포기하지 않는 고정우와, 진실을 끝까지 쫓는 경찰 노상철(고준)을 중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공권력만이 결국은 성찰하지 않는 피의자들을 단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 ‘현수오(이가섭)’ 중심에서 사건의 진실과 진범들이 밝혀지는 과정이 조금 더 의미 있고 흥미로웠다.
 
영화 <화차>에서도, 드라마 <백설공주>에서도 변영주 감독은 거짓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의식과 행동으로 거짓. 조작, 은폐하려는 사건의 진실을 유일하게 알리려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는 역할을 ‘현수오’라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에게 맡겼다. 원작을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자칫 기존의 범죄 스릴러물들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의 전형(사건의 목격자이지만 장애로 인해 무시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 비밀을 간직만 하는 인물, 혹은 영화 <증인>에서처럼 기억력, 시각, 청각이 슈퍼히어로 급의 초능력을 가져 증인으로 최적화된 인물로 현실과 거리감이 있거나 장애의 편견과 왜곡하는 인물)을 따를 수 있어서 우려되기도 했다.
 
10년 전 그날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각 수오는 사건 현장인 정우네 창고에 있었다. 두 살인사건을 모두 목격한 수오는 10년 동안 자신이 목격한 사건의 잔상을 그리며 지낸다. 정우가 출소하자 수오의 그림들이 한 점, 한 점 공개되면서 진범들이 드러나고 그들을 위협한다. 이를 묘사하는 원작의 행간에서 읽혔던 우리 사회의 장애통념들이, 드라마에서 더 명료하고 치밀하게 재현된다.
 
“니가 뭘 알긋나~”
수오에게 신민수(이우제) 엄마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이다. 이 말에 담긴 무시, 비하, 무례의 시선은 현실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마주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극 속에서 마을 사람들에게도, 현구탁서장(권해효)에게도 수오는 그저 마음이 아파서, 지적장애가 있어서 판단력과 분별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자신의 생각도, 의지도, 판단과 결정도 할 수 없는, 보호받아야만 하는 그런 사람, 그래 줬으면, 그랬어야 하는 사람이다.
 
10년 전 수오는 결정적인 목격자였지만,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고 진술자격을 박탈해 수오의 진술서만 누락시킨 것을 드라마는 몇 차례 언급한다. 정우가 전과자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산 세월의 인과관계에는 현수오의 진술이 무시된 조사 관행도 있음을 인식시키는 구성으로, 수오의 그림이 공개될 때마다 사건의 퍼즐이 맞춰진다. 진범은 물론 살해동기, 살해도구, 은폐의 조력자들, 그리고 이 모두를 조작하고 지시한 주범까지도 그림에 담긴 것이다. 이 과정 모두가 수오의 생각과 행동, 의지에 의한 것임을, 진실을 말하고 알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음을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결국은 수오가 지난 10년간 끌어안고 견디며 버텨 지켜낸 것들은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현구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지적장애가 있다고, 언어 장애가 있다고, 민수 엄마처럼 “니가 뭘 알긋나.”라며 무시하고 배제하며 하대해 오던 시선에, 아주 조금은 다른 잔상들이 맺히지 않았을까?
 
“수오씨를 내가 만나야 하는데, 정신병원에 있어서…"
하설의 폰에 저장된 수오의 그림을 보면서 최덕미(고보결)를 발견한 경찰 노상철이 한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뉴스 기사로만 접했던 정신병원 감금, 그것도 가족에 의한 정신병원 감금 사건들이 떠올랐다. 이 전 장면들에서 현구탁은 수오의 그림들이 발견되자 그 즉시 불태워 버리며, 수오를 정신과 주치의 박형식 원장의 병원에 입원시킨다. 수오는 저항할 틈 없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이들 몰래 사건의 잔상들을 병실 곳곳에 그리기 시작한다. 침대 시트에도, 서랍장에도 박형식이 박다은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는 장면이며, 경찰 복장을 한 아버지 현구탁 서장의 모습까지 그린다.
 
수오가 처한 상황과 행동, 의지를 보면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는 심신미약자의 분류 기준이 무엇이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가족의 동의만으로 정신병원이나 보호시설에 입원 또는 위탁이 허용되는 보호자 중심, 분리 중심의 우리나라 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묻는 듯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 수오는 누가 돌봐주니.”
현구탁의 이 말에 수오의 쌍둥이 형인 건오는 자수를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아들을 잃고도 멈추지 못하는 현구탁의 권력욕을 보면서 시청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말이 지닌 자기 편의적이고 가증스러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결국 현구탁은 교도소에 수감된다. 혼자가 된 수오는 보호시설이 아닌 정우네 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게 일도 돕고 자기 밥의 콩을 골라내 정우 밥에 놓으며 그렇게 익숙한 사람들과 더불어 평온하고 안전한 일상을 산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거라는 듯이.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정우, 건오의 말을 떠올린다. “정우야~ 너 때문에 우린 버텨. 수오가 단지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 때문에 남들한테 무시당하거나 모르는 사람들한테 맞을 때, 그럴 때마다 불안해하면서 도망치려는 비겁한 나를 발견 해, 그럴 때마다 정우 네가 옆에 있어 줘서 버티고 있어.”
 
건오의 이 말이 내겐 왜 이렇게 짙은 여운을 남겼을까? 그래. 아무리 이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믿어주지 않더라도, 또 다르다고 이상하다고 무시하고 혐오하더라도, 나를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딱 한 사람, 내 편이 있다면, 견디고 버티며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변영주 감독이 이 사회에, 사람들에게 수오캐릭터에 입혀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으리라.
 
드라마나 영화 비평 글을 쓰다 보면 종종 감독의,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달까? ‘세상이 향해야 할 방향, 최후까지 지켜야 할 태도와 가치를 이토록 치밀하게 정성을 들여 시청자에게 보여주면서 느끼도록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싶은 작품이 있다. <백설공주>가 그런 작품이었다. 그래서 조금만 수오를 집중해서 본 시청자라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회통념(불편한, 아픈, 부족한, 모자란, 할 수 없는 등)으로 인해 가족의, 사회의 짐처럼 여겨지는 인식이, 실상은 이 사회가 책임과 의무를 회피해서라고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잘못된 인식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변영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사이다보다는 고구마라고 말했다. 사이다처럼 한방에 뻥 뚫리는 통쾌함이 아니라, 답답함과 꺼끌꺼끌함에 목이 메고, 끌을 보지 않는 한 통쾌함을 맛볼 수 없는 장르라는 것이다. 장르에 대한 그의 해석에 공감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예영실 의원, 현구탁 서장과 같은 사이다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고구마들, 약자들이 연대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버텨 해결하는 문제들이 훨씬 많았음을 새삼 상기시켰다.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자폐청년 현수오, 누명 쓴 고정우,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전과자에게 약혼자를 잃은 경찰 노상철 같은 고구마들의 연대와 견딤, 버팀으로 밝혀졌듯이.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