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사악함'이 향해 있는 것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 영화 <위키드>
본문
△ 영화 <위키드> 포스터 (사진출처. 유니버셜픽쳐스)
“엘파바와 정말 잘 아나요?”
영화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1900)에서 그저 서쪽마녀, 초록마녀로 불렸다. 그러다가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쓴 소설 <위키드: 서쪽마녀의 삶과 시간들>에서 비로소 ‘엘파바’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그녀의 서사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엘파바를 사악한 서쪽마녀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 소식을 전하러 온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는 시민들의 환대를 받고, 먼치킨랜드는 안도감과 해방감으로 축제 분위기다. 그때 시민들 사이에서 한 소녀가 묻는다. “글린다, 엘파바와 정말 잘 아나요?” 순간, 시민들은 조용해지고 글린다는 머뭇거린다. 화면은 엘파바의 어린 시절 속으로, 그리고 마녀로 불리기까지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엘파바는 먼치킨랜드 영주의 딸로 태어나지만,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조차 버림을 받는다. 곰 유모의 사랑과 지극한 돌봄으로 유년 시절을 보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조롱과 멸시, 따돌림, 혐오, 배제의 명분이 되는 잘못된 세상에서 자신의 본성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웃사이더로, 외톨이로 살게 된다. 그러나 엘파바는 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말하고, 모두가 ‘Yes!'라 할 때조차도 자신이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것에는 서슴없이 ‘No!’라고 말하는 용기 있고 올곧은 여성이 된다. 이 올곧음이, 또 피부색이 다른 여성이어서 겪은 세상의 외면과 혐오가, 오히려 다르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작다 못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감수성이 남들보다는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불평등과 차별로 인한 이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누가, 왜, 그녀를 사악한 마녀라 낙인을 찍었을까?
<위키드>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는, 지금도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동서양을 불문하고 다른 피부색에 대한 혐오가 극심하던 때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는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했고, 혐오와 차별이 늘 함께했다. 게다가 사회는 순종과 조신함을 여성의 최고 미덕으로 여겨 여성의 당당함과 거침없음, 나섬을 눈엣가시로, 걸림돌로 여기며 혐오하던 시대다. 엘파바는 이런 시대에 편견과 차별에 ‘틀렸다’, ‘불평등하다’고 거침없이 말하며 불복종으로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엘파바이기에 세상, 그리고 에메랄드시티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오즈의 마법사에게는 자신의 편이 되지 않는 한 자신을 위협하는 걸림돌이지 않았을까?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그녀에게 소수가 아닌 다수,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 주류로 살게 해 줄 테니 그 능력을 자신들을 위해 쓰라고 회유한다. 절대로 받아들일 리 없는 엘파바는 한순간에 사악한 존재, 마녀의 낙인이 찍혀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녀로 불리던 여성들은 엘파바처럼 똑똑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는 여성이거나, 동네에서 약초를 조금 더 잘 다루던 여성일 뿐이다. 또 약자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편을 들어주던 여성들일 뿐이었다. 마녀 여론몰이는 이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가 남성 우월의 권력욕과 지배욕을 취하여 작동시킨 여성 탄압이고, 때문에 마녀의 역사는 마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여성 수난사라 본다.
사라지고 말을 잃은 동물들
엘파바가 다니는 쉬즈대학교에서 강의하던 동물 교수진 중 유일하게 남은 염소 교수 딜라몬드는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연구하고 차별사례들을 수집하는 등 동물권과 정부의 동물 탄압을 알리는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다. 그런 그는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었고, 강의 도중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잡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 나간다.(원작소설에서는 결국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딜라몬드 교수처럼 정부나 마법사에게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동물들이 반역자로 몰려 잡혀가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동물들은 오즈를 떠나거나 침묵하다가 급기야 말하는 능력까지 잃게 된다.
이뿐인가. 언젠가부터 정부의 동물 탄압에 대해 비판하는 동물들이 일터에서 해고되거나 변호 의뢰가 취소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저 사는 데 급급한 동물들까지도 잡아들여 우리에 가두는 일들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마법사는 이렇게 시민들과 동물들을 분리하고 동물들을 사회구성원에서 배제하는 등의 동물차별 정책을 펼쳐왔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자유를 빼앗긴 생명들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무기력해져 싸울 힘과 의미를 잃어간다. 인간의 감시를 받으며 잠에 들라면 자고, 일하라면 일하고, 먹으라는 대로 먹는 하루하루에 익숙해진다.
그 사이, 오즈의 시민들은 그 옛날 고차방정식을 풀고 철학을 논하며 함께 공부하던 표범과 흑염소 친구들을, 또 함께 일하던 동물동료들을 잃었고 끝내 잊게 되었다. 결국 오즈에서는 더 이상 인간과 동물이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없게 되었고,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일을 하고 먹이가 되며 인간을 즐겁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동물들의 의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명령과 지시에만 따라야 하는 삶을 동물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당연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주술서조차 읽을 줄 모르는 마법사가 마법을 행했을 리는 없다. 오로지 그의 독재와 폭력, 동물차별정책 등 야만적인 통치로 동물의 사회적 위치를 인간 아래로 강등시켜 노예로 삼고 눈, 귀, 입을 막은 것이다. 이 서사에서 시설 중심의 정책들은 물론이고 사회활동의 배제 등 장애차별정책의 현실과 그 안의 갇힌 생명들이 겹쳐 보인 것은 비단 나뿐일까?
“휠체어 위에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겠지.”
△ 영화 <위키드> 속 엘파바와 네사로즈의 모습 (사진출처. 메가박스 홈페이지)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즈는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고, 이 대사에서 느껴지듯 자신의 장애를 가엾게, 불행하게 보는 세상과 남들의 시선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조심스러우며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독립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의지는 약하고 보호받음에 오히려 안도한다.
숨겨진 존재였던 엘파바와는 달리 네사로즈는 아버지의 사랑과 후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서 자존감과 자신감은 글린다를 능가할 만한데, 자신의 장애마저도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밝아 보이지만 모든 말과 행동에서 당당하지 못하며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런 모습은 자신의 장애뿐 아니라, 언니 엘파바가 가진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도 담기는데, 글린다가 골탕 먹이려고 준 모자를 쓰고 무도회에 당당히 등장한 엘파바를 네사로즈는 창피해한다. 친구들의 조롱과 혐오, 무시의 시선 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언니와 시선이 마주칠 때 외면하며 친구들 사이로 숨어버리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엘파바와 딜라몬드의 정형성을 파괴시키면서 그들이 마녀와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공공의 적으로 몰리더라도 지키고 싶었고 마법사가 탐냈던 것이 무엇인지를 비춘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여성 네사로즈의 캐릭터는 정형성을 그대로 고수한다. 이것으로 무엇을 비추려는 것일까? 두 가지로 유추된다. 하나는 단순히 생각해서 제작진이 장애 지체에 초점을 맞춘 원작의 인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수 있고, 또 하나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한 지배와 탄압이 그 당사자의 인식마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비추려는 것일 수 있다.
나는 네사로즈 캐릭터가 엘파바처럼 진보적이고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존감 높은 여성으로 구현되길 기대하지만, 만약 어렵다면 인식의 사회적 지배를 이야기하는 후자의 이야기가 투영된 것이라 기대한다. 이 기대에는 영화가 말하고 전하고자 하는 소수성,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한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파괴하고 소멸시키는지, 또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지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Wicked'’, 그 ‘사악함’이 소수, 약자가 아니라, 다수, 강자를 향해 있기에 그렇다.
-------------------------------------------
PS.
● <위키드 2>에서는 무도회에서 ‘보크’와 춤을 추던 ‘네사로즈’의 춤사위에서 느껴졌던 에너지가 캐릭터의 의식과 태도에서도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 ‘네사로즈’를 연기한 배우 ‘마리사 보디(Marissa Bode)’는 실제로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과 동선의 리얼함은 캐릭터의 개연성뿐만 아니라, 서사의 개연성을 높였다. 특히 무도회에서 보크와 춤을 추는 네사로즈의 춤사위는 왜 장애캐릭터를 장애배우가 연기해야 하는지를 피부적으로 와 닿게 했던 명장면으로 남았다.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