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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에서의 3년을 돌아보며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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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HCR 의 Disability Inclusion Champions 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 캠프 현장 파트너 기관 방문 교육
 
방글라데시로 떠나던 날의 기억
 
나는 3년 2개월 동안 UNHCR 방글라데시 지역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처음 발령 소식을 받았을 때는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장애통합지역기반보호관(Disability Inclusion CommunityBased Protection Officer)’이라는 직책은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난민촌이 밀집해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장애 포괄적 지원이라는 과제가 과연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과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내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연 어디까지 열려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국제기구와 국내기관에서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는 해도, 장애라는 주제는 항상 어려웠고,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분야였는데,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다른 나라에서, 심지어 난민을 대상으로 ‘장애통합’이라는 주제를 실무 차원에서 풀어낸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기도 했다.
 
장애를 ‘발견’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현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놀랐던 점은 장애를 가진 난민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유엔난민기구의 공식 집계상으로는 전체 난민 중 0.8% 만이 장애인구로 보고되고 있었는데, 이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말하는 전 세계 인구의 16%를 장애인구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났고, 또한 실제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과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이 수치는 20%를 넘는 타 난민촌 장애 데이터와 비교해도 현실과 괴리가 너무나 커 보였다. 장애인이 적어서가 아니라, 식별 체계와 인식 부족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장애 혹은 장애인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들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각 섹터(교육, 의료, 난민등록, 식량 지원 등)의 현장 파트너들과 협업해, 누락된 사례를 찾고 이들을 지원체계 안으로 포함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첫 단계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지원 프로세스를 ‘장애 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예컨대, 난민등록절차에 장애가 있는지를 ‘제대로 된 방식과 태도로’ 묻고, 그 정보를 누가 어떻게 취합·관리할 것인가부터 논의해야 했다.
 
△ 로힝야 난민 자원봉사자들 대상 장애통합적 인도적 지원 워크숍 진행
 
인식의 벽과 제도적 어려움
 
난민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다. 많은 경우, 가족 중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고 했고, 대다수의 난민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기구와 단체 직원들 또한 장애인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만 간주했다. 심지어 장애 당사자마저도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한 채 보호나 시혜의 대상으로만 머무르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엔과 국제기구 종사자 및 파트너 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보다 장애포괄적인 인도적 지원이 될 수 있는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 1,500명 이상에게 연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난민캠프 내 지역 커뮤니티의 지도자, 종교 단체, 여성·청소년 그룹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직접 찾아가서, 장애라는 개념과 함께 ‘자립’과 ‘사회참여’가 왜 중요한지를 꾸준히 이야기했다.
 
장애당사자가 포함된 로힝야 난민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해 현장에서 장애인 가정에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고, 난민들의 요청을 적극 반영해 공용시설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확대·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자원이 늘 풍족한 것은 아니었고, 보안문제나 현지 규정으로 인해 마음대로 건물을 개·보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잦아서 혼자 자다가도 분을 못 이겨 이불을 몇 번이나 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기초적인 인식 개선과 네트워크 형성에 성공했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을 단위로 구성된 ‘장애인 자조모임’에서 몇 달간 지속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그 결과로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과도 어울리고, 조금이지만 의미 있는 ‘소득’이 발생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난민들이 ‘우리도 이런 것을 해낼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얻게 된 순간은 내게도 큰 보람이었다.
 
의미 있는 작은 변화들
 
장애통합 보호 체계를 완전히 구축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변화들도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어, 교육 지원 프로그램에서 난독증이나 시청각 장애가 있는 아동들에게 교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점자자료나 음성자료를 일부라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그중 하나다. 또 보건 분야에서는 유엔(UN) 내 여러 부서와 HI와 같은 전문 NGO와 협력해,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인을 위한 물리치료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할 수 있었다.
 
△ 세계장애인의 날 기념. 현장에서 당사자 및 주민분들과 게임에 참여했다.
 
UNHCR에서는 2026년까지 장애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이 만들어졌으며, 이 전략에 포함된 지표 하나하나를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최대한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물론 예산과 전문인력 문제가 따라오지 못해 전면 도입까지는 어려웠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
 
이런 노력의 성과는 숫자로만 환산하기 어렵다. 다만 현장에서 마주한 장애 당사자들과 보호자들의 표정 변화나 자립에 대한 의지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이 헛되지 않다’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배웠나?
그리고 다음 걸음
 
3년 2개월의 근무가 끝나갈 무렵, 나는 내가 설렘과 두려움으로 한 발씩 내디뎠던 길이 결국 ‘함께 가는 길’이었음을 깨달았다.
 
현장의 전문가, 난민 커뮤니티, 국제기구·정부 파트너 등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 포괄적 지원이라는 공통 과제를 향해 조금씩 방향을 맞춰가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통합’이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아가, 장애라는 이슈는 단순히 한 부서 또는 한 기관의 몫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함께 고민하고 책임질 영역이라는 점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분쟁 상황에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여성·아동·고령자·의료취약자 등 복합적인 취약성을 지닌 집단이 많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이다.
 
△ 장애아동 대상 재활 프로그램 모니터링 모습(왼쪽) / 장애통계 관련 워크숍 모습(오른쪽)
 
맺으며
 
방글라데시에서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아니, 여러 면에서 아주 어려웠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성격인 내가, 현장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기구 안과 밖에서 때로는 싸움꾼이 되어야 했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여전한 무관심에 상처받는 일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이 정도면 됐지’라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난민과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캠프를 벗어나는 차 안에서 몰래 눈물을 닦은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장애포괄적 지역기반 보호’가무엇인지를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깨닫게 해준 값진 과정이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모든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결국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방글라데시 현장에서 일궈낸 여러 도전과 변화를 ‘우리 모두가 함께 써나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그 길 위에서 만난 경험과 깨달음이, 혹시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용기와 영감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광희 장애통합 전문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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