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say thank you? 우리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존재인가? > 칼럼


And say thank you? 우리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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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미국 부대통령이 자국의 전쟁 원조에 대해 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느냐 윽박지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맥락이 무엇이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은 한 나라의 대표에게 옷도 제대로 챙겨 입고 오지 않았다고 미국 정치인여러 명이 둘러싸며 결국에는 문밖으로 내쫓았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에게 충성하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똑똑히, 적나라하게 보여준 모습이었다. 국가 권력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손쉽게 다를 수 있는지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근대화 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장애인 당사자 어느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하고 한 번 이상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한마디, 한 장면이었다. 우리들 누구라도 스스로 그리 말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지경이었다. 내가 동래 미술학원을 들어갈 때도,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도,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심지어 대학을 합격하고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앞에 붙은 대자보를 통해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어찌 장애인 따위가 감히 감사할 줄 모르고 고맙다는 말도 붙이지 아니하고 너를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받아주고 도와주었는데 대들거나 따지고 드는 것이냐.”
 
결국 미술학원 원장실 한 귀퉁이에서 다른 아이들과는 따로 그림을 그리고 초등학교 소풍도 빈번하게 빠져야 했으며 중고등학교 체육 수업 한번 제대로 통합 체육 수업으로 참여하지 못했으며 학문의 전당 캠퍼스에는 오줌통을 들고 다니며 강의를 들어야 했건만 꼭 어느 누군가는 이 말을 꼭 내 귀가에 듣게 하고야 만다.
 
‘And say thank you?’
 
우리를 소록도에 보내서 생체실험을 하지 않고 강제 불임으로 낙태시키지 않았으니 고마워하라는 것인가? 우리에게 취학 통지서라도 보내고 외딴 특수학교에서 전기 충격기를 써가며 교육하지 않았으니 마음속 깊이 고마워하라는 뜻인가? 대학의 권위와 떨어뜨리고 겉보기가 좋지 않다며 입학 원서를 반려하지 아니하고 별도의 정원으로 캠퍼스 문턱이라도 넘게 해주었으니 그저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뜻인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헌법적 권한과 지위를 가진 것으로 존중하려고, 아니 존중해 주는 척이라도 하려고 많은 변화와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유독 크게 바뀌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학교, 교육 현장, 교육 관료들이다. 헌법이 만들고 50년 가까이 지난 90년대 들어서고 나서야 교육계는 장애인 학생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의무교육대상자로 겨우 인정하였고 그사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인권교육이 의무화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마다 장애인 학생의 인권침해와 차별사례를 두세 건씩 권고한다.
 
그러나 2025년 올해도 ‘장애인 학생이 왜 우리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학교장이 여전히 당당하게 그 어떠한 비난과 처벌도 받지 않고 학교 현장에 존재한다. 아니, 이런 제국주의 우생학적인 바리케이드는 오히려 위선적으로 교묘해지고 더 높아졌다. 최근 방과 후 승마교실 오려는 장애인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추가 비용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요구한 학교 사례처럼,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도 장애인 학생 학부모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체험학습 동행이나 등•하교 동행을 강요한다. 그러면서 똑같은 대사를 마치 음원 재생하듯 무한 반복한다. 장애인 학생인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비장애인 학생들의 역차별이라고 말하며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허가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고 감사한 줄 알라고 요구한다.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가 아니라 그 어떤 존재이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고맙고 소중한 인구 소멸의 이 시대에도 장애인 학생은 여전히 자기 동네 학교에서 “당신은 왜 굳이 우리 학교에 오려고 하는가”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아야 하는가? 장애로 등록되지 않는 학생은 아무리 교육하기 어려워도, 아무리 행동 제어가 어려워도 그런 질문과 비난을 공개적으로 받지 아니한다. 디지털 수업 교재를 교과서로 쓰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코딩하며 학급당 인원수가 20명도 채 밑도는 교실이 속출하는 이 시대에도 유독 장애인 학생에게만큼은 가혹하리만큼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시대의 풍경과 질문을 여전히 학교는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장애인 학생에게 수능과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또는 장애인 학생의 부모에게 무슨 음식을 먹어서 장애인 학생을 임신했느냐는 차별 혐오 발언을 하는 교육 사회 구성원을 교육 공동체는 제대로 징계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OECD 어느 국가든 장애인 학생에 대한 차별은 빈번히 일어나고 만연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일정 정도 그런 혐오와 차별의식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정 노력과 기본적인 수치심과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UN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가이며 인권 이사국이었던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 공무원의 수준이 장애인 학생은 특수학교나 가야 하지 않느냐라고 교무회의 시간에 발언할 수 있는지 아연실색할 뿐이다. 더 심각한 그런 장애인 학생의 혐오나 차별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조직 문화이다. 심한 장애를 가진 특수학교로 보내 버리면 그 학교의 동료 교사들은 괜찮은가? 장애인 학생이 증가하니 지역의 다른 학교 두어 개를 폐교하고 특수학교 한 개에다가 교육 예산을 몰아 주자고 하면 과연 찬성할 것인가?
 
지난 서울시교육청이 작년 5∼7월 서울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 총 2천 405명을 대상으로 2023년 2학기와 2024년 1학기의 학교생활 내 인권침해 경험을 조사해 26일 공개한 결과 장애 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2023년 2학기와 2024년 1학기 중 학교에서 따돌림을 경험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26일 나왔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따돌림 이외에도 언어폭력(8.6%), 신체폭력(5.7%), 강요·괴롭힘(3.3%), 사이버폭력(2.2%), 금품갈취(1.8%), 성폭력(1.2%) 등의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직접 멈추라고 말한 학생은 25.5%였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경우도 14.4%에 달했다.
 
본인이 직접 말하기 전까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할 때까지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그런 혐오와 차별을 막고 장애인 학생들을 편들어 주는 교육 공동체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던 것인가? 근대교육이 시작되고 지난 세기 동안 우리나라 교육 당국이나 수장들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장애인 학생의 교육차별이나 배제에 대해, 그 위헌적 범죄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다. 지난 서이초 사건 등에서 교사들의 억울한 죽음과 과도한 업무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울분을 토하며 거리로 집결했던가?
 
그런데 얼마 전 인천의 특수교사의 죽음에 대해서 왜 많은 일반 교사들은 함께 그만큼 분노하지 아니한가? 그게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때문이 아니라 교육청과 관리자의 지원 미비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상급자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여전히 진상조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지난 2월 특수교육 여건 개선과 관련하여 인천시교육청은 크게 홍보를 하였으나 모든 지원 인력은 책임성을 묻기 어려운 자원 활동으로 돌리고 있어 장애인 학생과 그 부모들은 또다시 궂은 장애인 학생을 맡아준 유급 자원 활동가에게 감사해야 하고 불법과 탈법으로 불러드린 지역 사회의 활동지원사 선생님의 근거 없는 통합 교육지원을 고마워 해야 한다.
 
국민과 시민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고 운영되고 유지되는 것이 입헌 민주주의 법치 국가의 원칙일 텐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애인 학생에게도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장애인 학생의 전문적인 국가 공무원의 교육 노동을 언제까지나 헌신이나 사랑 따위로 포장한다면 한국 사회의 교육계의 장애인 학생에 대한 국가의 차별 폭력과 방임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국가주의이고 파시즘이며 전체주의인 것이다.
작성자글.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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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라일락님의 댓글

라일락 작성일

딱히 놀랍지도 않은 것이 장애인 스스로도 공공기관, 공무원에 장애전형 있으면 그것에 감사해 해야지, 면접에서 차별을 준다고 따지면 되겠냐는 주장을 하는데요 뭐 ㅋㅋㅋ 장애인 스스로 나는 차별이 있어도 만족한다는 타성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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