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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한 줌의 무게, 우리가 청원을 한 이유와 수입금지 조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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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금지 청원을 한 이유
오늘 점심은 채소를 구워서 먹었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하면서 또 한 번 생각합니다. “이 소금은 깨끗할까?” 단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침해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생산한 것을 쓰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생산하기 위해서 소량이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코발트 같은 희귀 광물의 채굴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이 아동 강제노동을 사용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만드는 데 작지만(小) 없어서는 안 되는 희귀 광물(金)인 소금 채굴 과정에서도 한국 식품 대기업들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강제노동에 연루되어 있습니다(놀랍게도 소금은 2008년 3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 개정 전까지 식품이 아니라 광물이었습니다). 소금을 먹을 때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을 소비하면서 강제노동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법센터 어필, 법무법인 원곡이 함께 미국 관세국경청에 제기한 수입금지 청원은 무엇보다 이러한 책임 있는 소비를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2025년 4월 2일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 기업인 태평 염전에 대해 미국 관세국경청은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이라고 불리는 수입금지 조치는 미국 관세법 제307조에 따른 것으로 태평염전의 소금 생산 과정에 강제노동이 존재한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인도보류명령이고 OECD 국가의 기업 중에는 20년 전 일본 비디오 게임 생산 기업이 대한 조치 이후 두 번째입니다.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진 날부터 태평염전 소금은 미국 내 유통망에 들어갈 수가 없고 태평염전이 위 수입금지 조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급망에서 발생한 강제노동을 시정했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수입금지 조치가 나온 이후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굳이 미국에까지 청원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염전에서의 강제노동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압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피상적이고 관성적인 대응으로 인해 염전에서의 강제노동은 근절되기는커녕 같은 패턴으로 계속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신안 염전의 노예 노동이 알려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지만 2021년 박○○ 님의 탈출로 그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대응 실패는 단순히 관행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것으로 강제노동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발달장애인인 피해자 자립을 위한 시스템이 없으며, 강제노동에 연루된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청원을 제기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도 염전 강제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었습니다.
 
수입금지 조치 이후의 정부의 부적절한 반응
수입금지 조치가 나온 직후인 4월 7일 해수부 등 중앙정부와 전라남도와 신안군 등이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 보도자료를 요약하면 2021년 발생한 일은 태평염전이 아닌 그 임차인이 저지른 임금체불이지 강제노동이 아니고 2021년 이후에는 실태조사와 자동화·기계화 도입으로 염전에서의 인권침해가 사라졌다고 하면서 총력을 다해 신속하게 태평염전을 지원해 인도보류명령의 취소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그동안 정부가 염전 강제노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강제노동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준한 ILO 강제노동 협약 제29호는 강제노동을 처벌의 위협 하에 강요받거나 자발적이지 않은 노동이라고 간단히 정의를 하고 있는데요. ILO는 이러한 정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강제노동 지표를 내놓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취약성의 남용, 기만, 협박과 폭력, 이동의 자유 제한, 신분증의 압수, 열악한 근로와 생활 조건, 장시간의 노동, 임금 유보와 공제, 채무로 인한 예속 등입니다. 그런데 태평염전의 공급망에서 발행한 인권 침해는 임금 유보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강제노동 지표에 거의 다 해당됩니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강제노동을 시킨 것은 태평염전이 아닌 임차인이기 때문에 기업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이나 ‘다국적 기업에 관한 OECD 가이드라인’ 등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 규범은 기업이 인권 침해를 ‘야기’한 경우뿐 아니라 ‘기여’하거나 ‘직접 연결’ 된 경우에도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공급망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면 공급망에서도 인권 실사 이행을 통해 인권을 존중해야하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평염전의 공급망인 임차인의 염전에서 발생한 강제노동에 대해서도 태평염전은 책임을 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나아가 2021년 이후에는 염전에서의 인권침해가 사라졌다는 정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닙니다. 2022~2023년 사이에 전라남도는 염전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그 실태조사는 염주와 노동자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등 한계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충격적일 정도로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49.3%가 유료직업 소개소를 통해서 염전으로 유입되었는데, 그렇게 유입된 노동자 중에서 61.8%가 선불금 공제를 경험하였고, 그중에 8.8%는 소개받은 내용과 실제 업무 형태가 달랐습니다. 20.3%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사본을 교부받지 못했고, 13%는 근로계약서를 작성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65.2%는 급여명세서를 받지 못했으며, 평균적으로 새벽 5시부터 밤 20시까지 일하여 1일 평균 14.5시간 노동을 하였고, 일주일에 평균 6.5일 노동하고, 한 달 중 평균 휴일 수는 1.8일에 불과했습니다. 11.6%는 임금은 연 단위로 받았으며, 월 평균 임금은 2,121,287원으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원래 받아야 하는 월급의 약 2/3에 불과했습니다. 박○○님이 염전 노예가 사라졌다는 2014년부터 7년 동안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탈출했으니 정부가 인권침해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2021년 이후에도 강제노동 피해자는 여전히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부가 피해자가 아닌 기업을 총력을 다해 신속하게 지원하겠다고 한 부분입니다. 2021년 강제노동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은 고사하고 체불된 임금도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천일염 생산 과정을 자동화·기계화하였다고 자랑을 하고 있지만, 이는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완전히 방향이 잘못된 정책입니다. 사람들은 발달장애라는 취약성에 더해 가족과의 단절,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한 문맹, 신용 불량 상태와 장기간의 실업 경험 등 다층적인 취약성 때문에 염전에서 강제노동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기계를 가지고 염전에서 발달장애인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권 침해를 당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염전에서 내쫓긴 피해자들은 다층적인 취약성 때문에 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수입금지 조치의 의미
정부의 위와 같은 부적절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입금지 조치는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업들의 각성입니다.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공급망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수출하는 것이 실제로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특히 강제노동 수입금지 제도는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있고 2024년에는 EU 차원에서도 관련 규범을 만들었습니다. 정부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일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강제노동을 처벌하고 강제노동에 연루된 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법무부와 해수부와 노동부 등 각 부처는 수입금지 조치가 나온 이후에 강제노동에 취약한 자신의 관할 영역에 대한 관리 감독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입금지 조치는 시민들이 책임 있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강제노동으로 생산되었다는 의심이 드는 상품을 아마존이나 H mart와 같은 웹 사이트에서 확인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진정을 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글.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선임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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