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나오게 하라, 그리고 사랑하게 하라 > 칼럼


세상으로 나오게 하라, 그리고 사랑하게 하라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 <다운 포 러브(Down for love)>, <니얼굴은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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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 포 러브(DOwn for Love) 포스터 ©Netflix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배제할 수 없는 콘텐츠 제작 환경에서 상업성은 늘 기획의 기본이자 미디어 공익적 기능의 딜레마가 된다. 종전의 커플매칭 콘텐츠들이 물질적 조건, 개인의 능력을 앞세우는 이유이기도 하고 빨리 식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 대중들은 출연자들의 외모, 학력, 직업 등 그들의 스펙에 관심 쏠리고 흥미로웠겠지만, 이것이 족쇄가 되어 점점 잘난 사람 경연대회처럼 누가 잘났나만 뽐내다 끝나버리는 콘텐츠로 변질되어 뒷맛이 씁쓸하고 피곤해진다. 볼거리들로 넘쳐나는 시대에, 대중의 채널은 빠르게 돌아가기 마련이고, 이에 가장 민감한 OTT 채널들, 이 중에서도 ‘넷플릭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실험적인 포맷과 다양한 출연자 등 기존 커플매칭 콘텐츠들과 차별화된 콘텐츠들이 공개하면서 대중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는 다양성이 상업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 만큼 대중의 가치지향은 물론이고, 대중의 'Need'와 ‘Want'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어 반갑다.
 
사랑하고 연애하며 결혼하는 것의 필요조건은?
사랑의 감정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관계를 형성하려면 우선 만나야 한다. ‘넷플릭스’에서 2022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25년 시즌 3까지 공개한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 이어, 2023년에 공개한 <다운 포 러브>는 발달장애(자폐스펙트럼과 다운증후군)를 가진 청년들의 커플매칭 콘텐츠다.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에게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갖게 하는, 가족과는 다른 관계를 경험하며, 사랑할 상대를 찾도록 연결해 주는 콘텐츠다. <다운 포 러브>는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들이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등장한다. 아쉬웠던 것은 출연자를 백인 청년들에, 말을 잘 하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성장한 청년들로만 구성했다는 것이다. 상업성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한 섭외로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식이 낫다는 뉴질랜드에서도 인종, 가정, 소통 등 개인의 조건들이 장애인의 삶의 질과 사회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로도 읽혀 씁쓸했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의 장애인식, 그들이 가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개인의 선택 자유와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장애유무와 별개로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 당연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체를 아우른다. 그래서인지 출연자들이 내 짝을 찾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연애하고 싶다고, 안고 키스하고 싶다고, “저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끌리는 것 같아요.”를 당당하게 말하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묻는 그들에게 반사적으로 “Yes!”라고 대답하게 된다.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망설임 없이 말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인정에서 나온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회, 가족의 힘이다. 지역사회에서 모든 출연자가 사회활동을 하며 나의 삶을 살아간다. 직장을 다니거나 화장품 사업을 한다. 운동선수, 모델, 배우,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청년들이다. 우리나라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들은 어떠한가. 갈 곳이 없어서 대부분 집에 있거나 시설로 보내지는 게 대부분의 현실인데, 사랑, 연애, 데이트, 결혼을 저토록 당당하고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특별한 경우라고 치부되고, 꿈에 머물게 하는 사회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저 당연함은 개인의 의지에 앞서 그 사회와 부모, 가족, 이웃들의 장애인식,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나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정책과 제도, 이에 따른 지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동료지원가는 글 ‘나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싶다’에서, “저는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섹스도 하고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에게 성적 욕구가 있고, 성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척할까요. 왜 우리 발달장애인들의 성적 욕구는 항상 나쁘게만 이야기될까요.”라고 썼다. 장애인의 사랑, 연애, 결혼, 성적 욕구에 색안경을 쓰고 혐오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다운 포 러브>에서 첫눈에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스킨십 진도가 빨랐던 커플의 부모들이 마주 앉아 “피임약을 사둬야 할까요?”라며 웃던 장면에서 잠시 멈추고 자막을 한참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유튜브 <니얼굴_은혜씨> 에서 “다운증후군 3급이 아니라 유명한 연예인이잖아.” 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캐리커처 작가이자 배우 정은혜 씨가 5월의 신부가 됐다. 정은혜 작가는 그동안 ‘니얼굴’을 테마로 인물(6천여 명) 캐리커처를 그려왔으며, 그녀의 드라마 데뷔작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영희를 연기하며 배우로서도 주목받았다. 코로나 이후 유튜브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은혜씨는 ‘유쾌한 은혜 씨’, ‘당당하고 당찬 은 ‘솔직한 은혜 씨’, ‘쿨한 은혜 씨’, ‘돌직구 은혜 씨’, ‘자존감 높은 은혜 씨’, ‘긍정의 아이콘 은혜 씨’, ‘사랑스러운 은혜 씨’의 모습으로 예술적 재능과 끼,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발산하며 24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인플루언서다.
 
△ 정은혜 작가의 유튜브 채널
 
최근 그녀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며, 연인 조영남 작가(지적장애)와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이들은 사내 커플의 애정 표현과 자신들만의 데이트 코스를 공개한다. 일하다가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하고, 손을 잡거나 수시로 포옹하며, 심지어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키스를 하는 등 오로지 감정에 충실한 직진 커플의 애정행각은 직장동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빼빼로 데이에 둘이 빼빼로를 물고 있는 모습, 점심으로 싸 온 도시락을 놔두고 “우린 데이트할 거예요.”라며 둘이 손잡고 나가서 외식하고 카페도 들른다. 영상 속 은혜 씨와 영남 씨의 꽁냥꽁냥, 알콩달콩한 모습에 팬들은 ‘국민 염장 커플’이라 부르며, 환대와 지지를 보낸다.
 
이들의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은 (장애에 갇힌 사고로 무능과 무성애, 무용의 존재라는 인식이 만연해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의식조차도 없는 우리 사회에서) 오롯이 둘의 마음에 사랑의 감정이 싹터서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와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기쁜 일이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귀한 커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이런 일상, 삶, 행복, 감정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특별한 경우이거나 그저 꿈으로 끝나버리게 만드는 사회라서 슬펐다.
 
△ 조영남 작가가 프로포즈를 하고 있다.(출처. 니얼굴_은혜씨)
 
정은혜 작가 역시 한때는 갈 곳이 없어서, 자신을 보는 세상의 시선과 차별들 때문에 집에만 있었던 날들이 있었고, 시선 강박증과 조현병 ‘내가 왜 태어났을까?’ 원망하며 불행하고 절망에 빠져 지낸 시절이 유튜브 영상들 속에 고스란히 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환대받는 사랑스럽고 행복의 아이콘이 된 지금, 은혜 작가의 모습에 대중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과거 은혜 작가의 고립과 절망스러운 삶이 과연 은혜 작가 개인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무엇이 은혜 작가를 변화켰는지를 대중은 생각하게 될까? 은혜 작가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통합, 정책적 지원, 문화적수용의 결합이며, 결국 사회가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다.
 
정은혜 작가와 조영남 작가는 물론이고 <다운 포 러브>의 출연자들까지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짝을 찾고,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며, 데이트를 하고 싶다. 내 짝의 손을 잡고 안아주며 키스하고 싶다”고.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고 이 욕망은 당연하다”고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와라, 그래야 세상 속에서 당신이 원하는 사랑, 연애, 결혼이, 당신다운 삶이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이 되고 현실이 되는 길을 내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덧붙인다. ‘지역사회로 나오게 하라, 그리고 사랑하게 하라.’ 이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이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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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정은혜 작가와 조영남 작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사회에서 당신들의 결합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랑과 성적 욕구, 노동과 자립의 주체로서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시키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로의 씨앗을 뿌린 일을 해낸 것이라 전하고 싶습니다. 결혼식에서 한 “그림 그릴 때는 스킨십을 하지 않고 그림만 열심히 그리고, 당신이 아플 때 죽을 끓여 간호하겠다”는 은혜씨와 “아내가 잠에서 깨지 않을 때 굿모닝 키스로 깨우며, 음식물 쓰레기를 잘 버려주고, 아플 때 병원에 꼭 동행하겠다”는 영남씨의 서약에서 ‘사랑은 행동’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글로나마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행복하세요.
 
● 편성권이 곧 권력인 시대는 저물어가고 OTT나 유튜브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누구나 미디어 제작과 편성의 주체가 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가 되었다. 대중과 보다 밀착해 자신을 알리고 개인의 문제가 곧 우리의,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는 미디어정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사자성과 개성을 발산할 수 있는 장애당사자들의 다채로운 채널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고, 이를 위한 지원과 교육도 필요하다.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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