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짜리 일자리, 4시간 인생
장애계 비틀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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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초록이 찬란한 봄이다. 정말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였다. 실직 후 취미생활과 여행, 휴식을 만끽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구직사이트에 방문해 찾게 되는 일자리는 4시간짜리 일자리 뿐이다. 그것도 재택으로 근무하는 업무 보조 수준의 일이 가장 많다. 재택근무가 편하다면 편할 텐데 사회적 관계에 집중하며 살아온 나는 사회적 단절이 두렵다. 찬란한 봄날에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장애인 노동의 가치는 사회적 관계
나는 아침에 일어나 어엿한 직장인으로 외모를 꾸민다. 출근하는 길이 지옥철이라는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휠체어 전용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이 공간은 서 있는 승객들 사이에 공동화처럼 비어 보이니 승객들이 뒤에서 들어가라고 밀어붙인다. 내 주위에 있는 승객들은 밀지 말라고 짜증을 내어도 뒤에선 알 수가 없다. 힘겨운 출근 전쟁을 치루고 직장에 도착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렀으니 커피 한 잔으로 차분히 일을 시작하자.
출퇴근 혼잡시간에 휠체어로 지하철을 타면 살아있다는 생각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장애인 인식개선 운동에 소극적인 나는 출퇴근 전쟁만으로 투쟁과 운동을 감당한 선동가 같은 벅찬 기분이다. 노트북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수트에 빨간 넥타이까지 갖춘 나를 바라보는 ‘집에나 가만 있을 것이지’라는 시선이 있겠지만 성숙한 시민의식과 혐오하지 않는 안정된 사회를 믿는다. 출퇴근 혼잡시간에 전쟁같은 승하차 경쟁을 치루는 숙명으로 노동하는 오늘은 직장 동료와 함께 일로 감동하고 커피 한 잔이 주는 스트레스 해소로 내일이 계획된다.
장애인의 노동도 숭고한 가치가 있다. 장애인인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역할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삶을 이끌어주고 가족의 생계도 책임진다. 성장을 해야 가능성이 생긴다고 한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노동을 통해 역량이 커지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로 발전해야 삶의 가능성이 생긴다.

장애인 탈시설로 시작한 장애인 기업이 다시 직업시설로
몇 년 전 호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호주의 한 장애인권운동가는 우리가 방문한 장애인기업 팩포스(Packforce)가 악마같은 기업이라 소개해 놀랐다. 팩포스는 독일의 유명 문구인 스태들러 연필을 중증장애인이 상품을 포장하는 제조기업이다. 1961년 뇌병변 중증장애인 부모들이 설립한 이 기업은 자녀들을 보호하고 장애인 시설에서 벗어나 직업인의 삶을 영위하도록 설립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부모들이 사망하자 점차 자녀들을 보호할 가족이 없게 되었다. 호주는 국가가 장애인을 보호하기에 형제나 친척이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홀로 된 고령의 장애인은 직장 동료와의 관계만 남아 직장동료들과 그룹홈으로 모여 살게 된다. 장애인기업 팩포스가 비판받는 이유는 부모들이 오래 전 탈시설을 위해 꿈꾸던 생산 공동체가 그룹홈으로 모여 살면서 시설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장애는 사회가 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실패할 때만 비극이 된다”
- 주디 휴먼, 2023년 3월 8일 세상을 떠난 미국 장애운동가
관리없는 장애인 직장운동부로 성행하는 장애인 고용
전국의 공공체육시설마다 장애인 직장운동부가 성행한다. 기업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한다. 장애인 직장운동부는 기업이 제공하는 일터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장애인이 노동하지 않고 체육활동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면서 안전한 고용 관리와 직업능력 개발, 고용 안정과 평등 증진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독일의 장애인 고용 정책은 장애인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끊임없이 찾아 국가와 지역사회, 기업이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임금의 격차가 적고 다양한 고용 관리로 노동자의 역량을 키운다. 또한 퇴근 후의 삶은 통합 장애인 스포츠 활동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고 클럽이 중심되는 체육활동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국가들은 노동적 가치를 동등한 기회로 삼는다. 장애인에게 국가와 지역사회가 노력하여 기업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애인 일자리는 만족도도 높아 일상의 계획이 가능하다.
우리의 장애인 직장운동부는 장애인을 고용한은 기업이 ESG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이용한다. 공공체육시설에는 기업이 직접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며 장애인 일자리 브로커기업이 파견한 매니저가 출퇴근 관리 생활체조 수준 등 간단한 업무만을 수행한다. 중증 지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주를 이루는 장애인 직장운동부는 또 하나의 장애인시설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공체육시설이 장애인시설로 변모
지난 5월 4일 서울특별시장애인탁구대회가 열렸다. 3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대규모 장애인 전문체육대회이다. 24개 종목을 겨루는데 그 중 발달장애인이 참여하는 2개 종목은 10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참여 현황은 2019년까지 30명 미만의 선수가 참여하였으나, 코로나 펜데믹 이후 2022년 75명, 2023년 62명, 2024년 88명으로 급증하더니 올해는 100명으로 늘었다. 이는 4시간짜리 장애인 직장운동부 고용의 효과다. 몇 년 전까지 직업재활시설 등에 근무하는 발달장애인은 30만원 내외로 급여를 받았으나 최저 임금이 적용된 4시간 근무로 100여 만원을 받게 된 것이다. 공공체육시설에 모인 장애인은 사회복지사가 없는 안전과 재활의 보장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체육훈련 프로그램의 부족과 장애인활동지원사와 목적없는 4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장애인이 모여 있는 그곳이 시설이다.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은 유리천장이 되고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이 성행한다. 장애인 고용을 위해 장애인과 기업 간의 고용을 연결하는 장애인 일자리 브로커들이 만든 플랫폼이다. 요즘 직장운동부 플랫폼은 장애인 선수들을 블랙홀처럼 고용제도로 흡수하고 있다. 이 구조에 갇힌 장애인 노동자는 고용한 기업과의 관계가 단절된 공간에서 정당한 권리와 주장을 펼치지 못한다. 하루 4시간 근무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노동(?)은 누군가에게 용돈벌이가 되었으나, 미래를 계획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유리천장이 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으로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기업은 장애인 고용의 부담에서 벗어난다. 이와 같은 구조는 ESG 경영 아래에 있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지속적인 경영을 하겠냐는 비판이다.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은 장애인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복지와 기회, 임금에 대한 차별을 받는다. 최소한의 대우를 받으며 형식적인 고용 관계만을 유지하여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으로 얼룩진 사각지대를 살펴본다. 재택근무가 중심인 플랫폼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사회적 관계는 일상의 만족과 기회를 포착할 가능성, 삶의 만족도가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동료에게서 건강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 협동심, 갈등에 대한 해결 능력 등을 키울 수 있어 장애인 재활도 기대된다. 재택근무나 공공체육시설에서 근무하면 사회적 관계로부터 얻을 기회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는 수급 탈락에 대한 부담으로 더 나은 일자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유리천장이 되어 장애인을 희망으로 고문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진정한 플랫폼은 이 세상에 없다.

△ 두 선분의 길이가 같은 뮐러-라이어 착시 도형
뮐러-라이어 착시(Müller-Lyer Illusion)
두 선분 중 어느 것이 더 길어 보이는가? 두 선분의 길이는 같다. 뮐러-라이어 착시라고 불리는 이 도형은 꼬리표 때문에 서로 다른 크기로 보이는 착시가 나타난다. 최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41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인 근로자의 최저 생계비 20% 수준이다. 그나마 일부 4시간짜리 고용으로 최저 생계비에 60%에 도달했을 뿐이다. 이 60%는 1991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장애인 노동을 평가하는 부담기초액과 같다. 장애인 일자리 브로커 기업은 재택으로, 공공체육시설로 장애인 노동자를 가둔다. 우리는 선분의 길이보다 꼬리표를 더 믿는다. 4시간짜리 장애인의 일자리가 오히려 장애인의 고용을 막는다. 장애인 일자리 브로커 회사들은 싸게 먹히는 고용부담금과 4시간짜리 일자리로 기업을 현혹하는 헛발질을 한다. 우리는 숫자상으로 고용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는 4시간짜리 일자리로 4시간 인생을 살게 되었다.
작성자글. 박평철 그래픽 디자이너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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