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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빈국 부룬디 장애인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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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살고 있는 경제수도 부줌부라의 한 마을 모습
 
나는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2013년 1월부터 지역사회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엔지오 텐포원(TEN FOR ONE)의 부룬디 지부장으로 20년 계약을 맺고, 일반적인 국제개발협력 사업보다 더 긴 호흡으로 장기간 사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들을 목표로 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경제수도 부줌부라의 서쪽 끝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지내며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부룬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민 1인당 GDP가 230불 정도인데, 이는 544불인 소말리아보다 적고, 인근 나라인 케냐의 2,269불, 탄자니아 1,349불보다 낮다. 더군다나 바로 옆 나라인 르완다(970불)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치이다.
 
△ 지도상 부룬디 위치 ⓒ Google map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후에 후투족(인구의 85%)과 투치족(인구의 14%) 사이에 약 10년마다 인종학살이 있었다. 벨기에가 식민 통치할 때 두 종족을 분리하여 투치족만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독립 이후에 기득권인 소수족 투치와 비기득권인 다수족 후투 사이에 긴장 관계를 넘어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는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부룬디 내전으로 이어졌는데, 이에 따라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주변 나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현재 내전이 끝난 지 불과 17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두 종족 사이에 갈등은 여전한데, 2015년에는 후투족 정부에 대항하여 투치족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며칠 만에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부룬디의 광물 자원을 노린 서구 국가들에 의해 은크룬지자 대통령이 독재자로 몰리게 되었고, 유럽연합과 유엔은 부룬디에 대해 제재를 2020년까지 가하였다. 제재가 해제된 후에 바로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부룬디의 경제는 여전히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 환율 폭등으로 연료수입이 안돼 주유소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부룬디의 서민들은 보통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아침과 점심은 건너뛰고 밤 9시쯤 저녁 식사를 하고 배가 부른 상태로 잠에 든다.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퀴닌 성분의 말라리아 약이 천 원 정도 하는데 이 약을 살 돈이 없어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누적 말라리아 환자 수가 매년 1/4분기에 이미 부룬디 전체 국민 수만큼 된다고 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가툼바 마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과 맞닿아있다. 부룬디 내전을 피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과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을 피해 부룬디 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이주민 촌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수도 부줌부라에 속해 있지만, 아무도 이곳이 수도의 일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골 마을과 비슷하게 개발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가툼바 마을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일반적인 집 모습
 
이곳 주민들은 흙을 말려 만든 벽돌로 집을 짓는다. 약 10년 전에는 볏짚으로 지붕을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양철 지붕이 대세이긴 하다. 하지만 집 안 모습은 여전한데, 흙바닥에 돗자리 하나 깔고 생활한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아와 집 밖에서 음식을 만들지만, 일 년에 절반을 차지하는 우기 때에는 영락없이 집 내부에서 조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수돗물도 공급이 안 되고 전기는 꿈도 못 꾼다. 장작을 땔 때 나오는 연기와 집 안의 어두컴컴함이 건강한 사람도 며칠 안에 환자로 만들 것 같은데, 현지인들은 이런 환경에서 평생을 지내고 있다.
 
△ 가툼바 마을의 한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는 집 내부 모습
 
부룬디에서 장애인들의 삶은 어떠할까? 비장애인들의 삶도 이렇게 녹록하지 않은데 장애인들을 돌보고 배려하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루 한 끼를 겨우 먹으며 허름한 흙집의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들이 장애인 가족을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을 과연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오랜 내전으로 인해 부룬디에는 후천적 지체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또한 극심한 빈곤과 기아로 인해 임신부의 영양결핍으로 태아와 영아가 장애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가난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시력, 청력 등에 영구적으로 장애가 발생하는 예도 자주 있다.
 
이러한 장애로 인해 이분들이 겪는 어려움이 작지 않겠지만 더 큰 어려움은 바로 비장애인들로부터 받는 편견과 차별이다. 장애를 신으로부터 받는 저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장애인 가족들까지 사회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백색증과 같이 극소수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도를 지나치게 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도 마을마다 존재하는 무당들이 백색증이 있는 사람들을 먹거나 신에게 바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선동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한국의 전래 동화인 <심청전>과 같은 맥락으로,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 샬롬장애인센터에서 진행되는 매월 정기모임 모습
 
텐포원 부룬디지부는 2020년부터 장애인, 한센인, HIV 환자들을 대상으로 매월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다. 탈시설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선진국들의 상황과는 달리, 부룬디에는 여전히 시설화에 대한 요구가 큰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시민의식과 사회적 기반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5년 전에 장애인 분들과 첫 모임을 한 뒤 참석자 한 분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동안 차별과 편견으로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장애가 있는 동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장애인의 관점을 대변하는 설교를 들으니 매우 행복합니다. 앞으로 우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또한, 매월 정기적으로 중증장애인 가정을 방문하여 식량을 전달하고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다. 장애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지 직접 보니 그분들을 위한 시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2022년에 샬롬장애인센터를 열어 경증 장애인 분들이 언제나 와서 편히 쉴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중증장애인 단기 보호 사업을 동 센터에서 시작하여 보다 나은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 센터는 부룬디 유일의 장애인 보호시설이다.
 
△ 장애인 수퍼마켓협동조합의 조합원들과 개업식에 찍은 사진
 
최근에는 장애인 50여 명과 함께 수퍼마켓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2024년 9월에 개업한 수퍼마켓은 ‘구걸 근절’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장애인들이 자립을 꿈꾸며 스스로 조직한 협동조합이다. 없는 살림에 십시일반으로 출자금을 내었기 때문에 현재는 자본금이 적어 생수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다행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상인들이 대량으로 구매해 가고 있어서 작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생활 환경이 열악하긴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곳이다. 희로애락이 있다. 처음에는 낯선 외부인으로 이곳에 왔지만, 어느덧 ‘우리 중 하나’로 인식이 되고 있다.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종종 어려움을 겪고 소진에 빠질 때도 있지만 이곳을 내 고장, 내 삶의 자리라고 생각을 하니 힘이 나곤 한다. 내가 이곳 장애인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큼, 어쩌면 훨씬 더 많이, 그분들이 나한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상호의존을 하며 성장을 하고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한상훈 국제개발협력 NGO 텐포원 대표 및 부룬디 지부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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