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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어가는 회복, 일본의 정신장애 당사자 연구

정신장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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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 연구 워크샵 진행 현장 모습
 
‘정신장애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 ‘치료’, ‘입원’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 단어들은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이 어떠한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여기에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에 대한 정신병력과 관련한 자극적인 뉴스와 기사들의 제목이 크게 일조했지만, 사실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기원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장애의 원인에 대해 초자연적인 것, 악령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부터 정신장애인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바라보던 시각은 정신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하기 급급했다. 이후 정신장애에 대한 의료적 관점이 등장하였고, 초점은 정신장애의 원인 규명과 증상의 제거에 맞춰졌다. 정신장애인은 ‘치료의 대상’이 되었고, 그 치료의 방법은 약물 복용을 통한 증상의 억제, 입원을 통한 사회로부터의 격리, 수용이었다.
 
장애를 바라보는 접근 방식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이상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변화가 아닌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꾀하여야 한다’는 시각으로 발전해 온 것처럼, 정신장애 영역에서 또한 기존의 의료적 관점이 아닌,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관점의 전환을 도모한 접근이 등장했는데, 바로 일본 우라카와 지역의 ‘베델의 집(ベテルの家)’에서 시작된 ‘당사자 연구’이다. 지난 3월, 일본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에서 개최된 한·일 공동 당사자연구 워크샵을 통해 당사자 연구에 대해 보다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증상이 아닌 ‘고생’
의료적 관점에서 사용하는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증상’이라는 용어는 당사자 연구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증상’이라는 말 대신, 이를 ‘고생’이라 명명한다. 증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으로 인해 당사자에게 발생하는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당사자 연구를 통해 본인이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이나 증상의 명칭이 아닌, 자신이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해 새롭게 ‘자기병명’을 짓는다. 진단과 치료의 대상이라는 관점 하에, 당사자는 그저 수동적인 ‘환자’로 존재하게 된다. 질병을 가진 환자, 약물을 복용하고 입원해야 하는 환자라는 시선은 당사자가 생생하게 경험하는 고생을 빼앗고, 그들의 언어를 가두어 버린다. 당사자 연구의 ‘자기병명 짓기’를 통해 당사자는 비로소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고을 되찾아나간다. 더 나아가, 당사자의 고생은 그가 가진 자원으로 자리매김한다. 더 이상 당사자의 고생은 숨겨야 하거나 억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연구에서의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서 바라보기
당사자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증상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의료적 관점에서의 당사자의 증상은 문제, 교정해야 할 대상이었고, 따라서 정신장애 당사자 또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킨다. 정신장애인을 범죄자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당사자 연구에서는 정신장애 증상과 ‘나’는 별개로 인식한다. 워크샵에 참여하며 인상깊었던 경험 중 하나는, 당사자와 사회복지사와의 시나리오 역할극을 통해 당사자 연구를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나리오 속의 당사자는 조현병을 가지고 있으며, 명령성 환청으로 인해 도벽을 반복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흔히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법한 상황이지만, 이 대화에서는 도벽을 하는 당사자를 범죄자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도벽이라는 문제를 당사자와 분리하고, 문제행동을 하게 만드는 환청에 대해 질문하여 환청과 도벽의 관계에 대해 함께 알아나가는 대화를 실천한다. 도벽을 하라고 지시하는 환청의 존재를 인정하고, 환청 씨(캐릭터를 가진 손님으로써 명명)와의 대화를 요청하여 도벽을 지시하는 이유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청 씨가 도벽을 지시하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었음을 발견한다.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여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문제행동’으로 여겨지던 고생의 원인을 발견하였고, 회복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증상의 제거가 아닌 ‘증상과 함께’
당사자 연구에서 당사자 연구에서는 ‘증상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고생을 인정하고, 고생과 함께 잘 생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당사자 연구를 통해 함께 고민한다. 가령 정신장애 당사자가 경험하는 ‘환청’에 대해, 환청을 없애기보다는 환청에 집중해 보고, 그 환청이 어떤 캐릭터인지 탐구해 본다. 그리고 그 환청이 생활을 해나감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한다면, 환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환청과 함께 잘 살아가 볼 수 있도록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장애를 바라볼 때 장애 자체가 문제가 아닌, 사회를 문제로 바라보고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의료적 관점에서 집중했던 ‘치료’에서 벗어남을 통해 일상으로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당사자 연구는 몸소 실현해 오고 있었다. 당사자의 고생을 치료해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고생(증상)과 함께 어떻게 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는 것이다.
 
△ 당사자연구 판서
 
치료의 대상이 아닌 ‘회복을 주도하는 나’
당사자 연구가 가져다주는 선물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자기 이해’이다. ‘고생을 겪는 당사자’인 내가 고생에 대해 직접 연구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어떤 환경이 나의 고생을 더 심화시키는지, 어떨 때 이 고생이 좀 괜찮아지는지.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본인의 고생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당사자는 더 이상 당장의 증상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 고생과 함께 살아가나는 방법을 획득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 본인의 어려움에 대해 탐색하고, 이를 타인과 나누고 대처 방법을 찾아보는 경험은 당사자 본인이 ‘회복의 주체’라는 점을 체감하게 만든다. 진단을 받고 치료가 필요한 수동적인 환자였던 당사자는 그 역할에서 벗어나 나의 고생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가고, 비로소 회복을 주도하는 ‘나’로서 거듭나게 된다.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
당사자 연구는 비단 정신장애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이미 일본에서는 당사자 연구가 아동, 약물중독 여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사자 연구가 가지는 ‘증상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특징은 어떤 영역에서든지 적용 가능하게 만드는 만능열쇠인 셈이다.
 
이를테면 아동의 당사자 연구는 ‘학교가 가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등의 주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본은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수가 많은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당사자 아동이 주체가 되어 본인의 생활 속의 고생에 대해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중독을 경험한 여성들의 경우, 금단증상과 함께 일상을 잘 살아나가기 위한 당사자 연구가 이루어진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당사자가 경험하는 또 다른 고생인 ‘생리’도 당사자 연구의 자원으로 활용된다. ‘중독 당사자가 생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생리를 할 때 패닉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고생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다.
 
증상의 제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진 당사자연구는 ‘삶으로의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목소리를 가둬두기 급급했던 기존의 치료적 접근에서 이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키우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회복을 만들어 나가는 접근 방법이 더 널리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승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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