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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갔다가, 별생각 다 하고 온 시간들

TCI 컨트리미션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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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CI 컨트리미션 연수 단체사진
 
글쓴이 소개
지선. 팔자 드센 90년생 백말띠 여자. 5년 차 경력직 정신병자1) . 페미니스트, 캣맘, 퀴어. 21년도 봄에 중등도 우울증, ADHD를 진단, 22년도 당시 속하던 조직에서 약 8개월 병가를 가졌다. 약을 증량하며 몸이 힘들어 24년 3월 햇수로 5년 동안 몸담던 조직에서 퇴사했다. 퇴사 후 개인전 두 번, 쫌쫌따리 알바를 하며 저소득 임금 노동자로 지냈고 지내고 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정신건강 분야에서 전공 실습을 했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구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지만, 정신병자가 되었고 당사자 활동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현재는 ‘펭귄의 날갯짓’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네 고양이들, 사각거리는 이불,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음식을 좋아한다.
 
어쩌다가 아무 생각없이
나는 어쩌다가, 정신장애 당사자 역량 강화를 위한 TCI Country Misson in Korea에 참여하게 되었나? 엄청난 포부나 구체적 목표를 갖고 신청한 것은 아니다. 현재 속한 단체의 온라인 카페에서 홍보 글을 보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지만 일단 신청했다. ‘당사자 역량강화에 관심이 있는 정신장애인 20명’이 대상이었다. 미등록 장애인도 가능, 역량강화에 관심이 있다는 점 모두 충족했다. 진행 장소 위치, 식사제공 모두 마음에 들었다. ‘Global’이라는 키워드도 눈에 띄었다. 다른 국가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일단, 20명이 정원이라니 홍보물을 보자마자 신청했다.
 
‘Global’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해외 초청 활동가들의 국적, 배경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북미 사람이 오겠지? 유럽권 국가에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냥 누가 오는지, 뭐 하는 건지 잘 모르고 신청했다. 하지만 두 명의 인도 활동가와 한 명의 케냐 활동가가 와서 반가웠다.
 
그 이유를 소회 때 나누었다. 보통 사회운동, 복지 정책, 각국 제도, 정책 등을 나누거나 배울 때 주로 북미, 북/서유럽의 소위 ‘제1세계’ 선진국가를 떠올린다. 나만 그런가?
 
△ TCI 컨트리미션 한국 연수 중 조별토의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인도는 거리가 있긴 하지만 아시아권과 사회운동, 정책을 논할 때 잘 언급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활동가가 왔다. 아시아권이라고 할지라도 주로 일본, 대만 정도가 언급되는 것 같다. 만약 초청 연사들의 국적이나 인종적 배경이 북미, 북/서유럽 고학력, 백인이었다면 마음 안에서 한계나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건 너희 나라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그건 당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목소리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마음? 물론 누군가의 국적이나 인종적, 학력 등의 배경이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 혹은 마이크를 뺏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현 사회에서는 너무나 선진국 중심으로 모든 사회운동, 복지, 정책 등이 논의됐다. 무슨 모델을 들여올 때나 참고할 때도 그러하니까.
 
그렇기에 나에게는 초청 활동가들의 출신 국적과 배경이 의미 있었다.
 
사회운동과 복지, 정책 모델 등을 떠올릴 때 생각하지 않는 국가에서, 비백인, 한 명을 제외하고 비남성 활동가가 온 것이 그래서 의미 있었다. 그래서 인도에서 온 카비타, 리차. 케냐에서 온 사무엘의 존재가 여전히 의미 있나 보다.
 
이 내용을 언급하는 것도 혹여 ‘대상화’로 읽힐까 염려된다. 부족한 글솜씨가 주는 오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애 정체성
21년도 봄에 중등도 우울증과 ADHD를 진단받았다. 처음 우울을 진단 받았을 때는 ‘내가 이 정도로 아팠구나’하고 마음이 아팠던 반면, ADHD를 진단 받았을 때는 ‘인생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또 ‘조현병급’ 진단을 받았다고 느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안에 ‘위계’가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서 정신장애, 정신질환 내에서도 ‘위계’가 있으니까 나 역시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편견과 혐오를 내면화했다. 우울은 나만 힘들면 되는 것인데, ADHD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역한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이 쉽지 않았다. 상당히 힘들었다.
 
△ TCI 컨트리미션 한국 연수를 위해 인도와 케냐에서 방문한 TCI-Global 멤버들(왼쪽부터 Samuel, Richa, Kavita)
 
보통 우울,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을 고백하면 나약하다고 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얼마나 힘들겠니’라는 반응을 얻는다. 반면, 조현이나 ADHD, 자폐 등 특정 질환이나 장애는 이런 시선보단 ‘피해야 할 대상’, ‘피곤한 사람’이며 ‘안타깝지만 내 가까이 두고 싶은 대상’은 아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ADHD가 장애로 인정이 되는데, 한국에서 ADHD단독으로 장애 진단은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임금노동 시장에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여 1년 가까이 무급으로 쉬었고, 약을 증량 후 몸이 힘들어 퇴사까지 결정했는데 제도적으로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그저 22년 장기휴직 때 주민센터를 찾아가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1회성으로 받은 것이 전부였다. 50만 원도 한참 안 되는 돈을 받았는데도 두 곳의 주거래 통장 1년치 입출금 내역서, 각종 서류 작성, 상담, 가정방문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구질구질하게 내가 왜 가족한테 도움을 받을 수 없는지, 왜 연을 끊었는지도 호소해야 했다. 담당 사회복지 공무원 두 분은 집에 와서 ‘냉장고가 누구거냐, 세탁기는 누구 것이냐, 음식은 나눠서 먹느냐’고 물었다. 당시 세탁기도 냉장고도 내 것이 아니었지만 설령 내 것이라 하더라도 요즘 세상에 냉장고와 세탁기 없이 어떻게 사나.
 
그러나 권리기반, 심리사회적 장애에서는 협소한 접근, 의학적 모델에서 벗어나, ‘포용(Inclusion)’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라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권리’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공권, 사권, 사회권이 있다.” 자신을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증명하고, 자신이 처한 장애, 질환, 경제적 상황을 증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사회가 보편적 복지,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복지가 이루어진다면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전복이 일어나 노동환경도, 근무환경도 완전히 변화하고 최소한의 노동시간만으로도 생활임금이 보장된다면 장애인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장애전형 일자리를 필요로 할까 말이다.
 
△ TCI 컨트리미션 한국 연수 중 조별토의를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이 워크숍에서 시간 관계상,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인해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내가 ‘장애’라는 언어까지 빼앗거나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다.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어 외로운 것은 사실이다. 장애등록을 받고자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도 없고, 방치해서 더 나빠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그 어딘가도 아닌 상태에서,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도, 국가 제도 안에서 지원 받는 상황도 아니어서 난감하다. 이 난감함의 간극을 줄이고 채워나가는 것은 현재 운동(MOVEMENT)과 친구, 이웃들의 돌봄의 연대이다.
 
똑똑똑, 저기요! 문 열어주세요!
11월 5일 수요일 2일차. 이 날 활동 중 하나는 문을 통과하는 활동이었다. 정신보건(의료모델)문(Mental Helth Door), 사회적 모델 문(Development Door), 인권 모델 문(Human Rights Door) 세 가지 문을 통과했다. 정신 보건 모델은 문이 아주 좁았고, 사회적 모델 문은 허리를 뒤로 꺾거나 숙이고 지나야 했으며, 인권 모델 문은 몸을 웅크리지 않고도 지나갈 수 있었다. 현재 있는 모델을 몸을 움직이며 시각화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정신보건 모델 문이 좁았지만, 이 정신보건 모델 문이 생긴 것,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도 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과거보다 깨졌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아프면 가야 하는 곳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델 역시 앞선 활동가들, 관련 전문가들의 싸움과 고민이 있었기에 만들어졌고. 인권 모델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문이 낡고, 부서지거나 녹슬지 않으려면 어떤 모델이든 끊임없이 건강한 방식으로 감시하고 문을 수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문고리도 녹슬고, 문고리가 빠지거나 습기에 의해 문의 뒤틀리는 것처럼. 이 문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리가 필요할 것이다.
 
문 역시 누구나 지나가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 장애인, 몸이 아주아주 큰 사람, 움직임이 느린 노인, 임산부, 다리가 부러진 사람, 혼자 문 앞까지 가기 어려운 사람등- 문 까지 접근할 수 있는 것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나열한 것
 
언어에 대한 고민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을 ‘심리사회적 장애’로 지칭하는 것은 현재로서 진보적이고 투쟁적이다. 언어가 주는 정치성과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언어의 변화와 동시에 시민적 의식도 변화해야 한다. 과거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던 것이 ‘조현병(조현정동장애)’으로 바뀌었지만 바뀐 용어 그대로 욕으로 사용된다. ‘조현이냐?’나, 경계선지능을 비하하며 ‘능지 박살났다’, ‘저 정도면 경계선 아니냐~’, 정신질환, 정신장애에 대해 ‘패션 정병’ 등의 말로 비꼬고 욕으로 사용한다. ‘심리사회적 장애’도 희화화나 조롱과 욕의 언어로 사용되지 않기 위해 혹은 욕으로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영향이 없으려면 내/외부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모니터링, 대화가 필요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추후 다시 이 자리가 마련된다면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 여성, 퀴어, HIV/AIDS, 성노동자/성매매, 이주민, 난민 정신질환자가 겪는 특수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는 단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없는 자원도 있지만 반면 가진 자원도 천차만별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소수자(약자성으로 이루어지는)가 겪는 상황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페미는 정신병이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트젠은 정신병이다.’, ‘캣맘은 정신병이다’와 같이 무엇을 낙인찍고, 어떤 대상과 정신질환을 엮어 다중혐오 하는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신질환, 정신장애인 당사자 안에서의 다양한 정체성, 교차하는 정체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00은 정신병이 아니에요~”라고 할 것이 아니라 페 미니스트이면서, 퀴어이면서, 성노동자이면서, 난민이면서, 이주민이면서 동시에 정신질환, 정신장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아플 권리, 아픔을 드러낼 권리가 작동하려면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 내년 혹은 내후년에는 어디에서 TCI가 진행될까? 올해에는 한국에서 진행되었으니 다음엔 다른 곳에서 진행되려나? 짐도 가볍게, 마음도 가볍게 다음 TCI 참여를 기대해 본다. 여권 만료일이 한참 남았다. 여권이 어디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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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복적 의미, 투쟁적 의미에서 '정신병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작성자글. 지선 / 사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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