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결정하는 예산, 복지예산운동이 중요한 이유 > 칼럼


권리를 결정하는 예산, 복지예산운동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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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없이 권리 없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며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을 탄다.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는 그들의 짧은 문장 안에는 시민사회단체가 왜 이 무렵 예산 확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지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역시 복지예산의 확충을 요구하는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창립 초기 ‘국민 기본선 확보 운동’과 함께 이루어진 ‘복지예산 GDP 5% 확보운동’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매년 빠짐없이 복지 예산에 대한 의견 발표, 기자회견, 토론회, 청원, 집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복지예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추동하고 이를 통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보건복지 예산이 실질적으로 증액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빈곤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부의 획기적 대책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복지예산의 확충을 촉구했다. 구체적인 예산 분석 작업을 통해 부분적 증액이란 성과를 얻어낸 참여연대는 2000년부터는 복지부 대응 시기, 예산처 대응 시기, 당 대응 시기, 국회 대응 시기 등 4단계의 접근 대상별 시기 구분을 전제로 단계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대응을 전개하였다.
 
2001년에는 국회법 제123조의 규정에 따라 예산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예산안에 대한 의견청원은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여러 정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확보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여연대는 ‘시민이 바라는 복지예산’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시민합의회의 성격의 운동방식이었는데 보건복지부의 부처조직과 대응하는 ‘시민보건복지부’를 구성하여 12개의 국과 그 책임자로 전문가를 배치해 주부, 학생, 회사원 등 시민 패널들과 격의 없는 토론과 심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시민이 합의한 12대 분야 16개 우선 사업’을 결정하고, 이에 소요되는 예산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대선정국에서 복지예산에 대한 적극적 공약 개발을 유도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각 당에 사회복지예산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참여연대는 매년 정부의 보건복지분야 예산을 분석·평가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한국 사회에 있어 복지예산의 중요성과 그 확충의 당위성을 꾸준히 제기한 것이다. 이는 정부 예산 수립에 있어 궁극적인 주체는 ‘시민’이고, 시민이 납세의 의무를 지님과 함께 정부의 예산집행을 통해 혜택을 입을 ‘권리’를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참여연대의 예산 운동은 예산 심의가 한창인 요즘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의 심사 경과를 보고 받고,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소관의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심사 후 표결했다. 이날 보건복지위원회는 총 3조 5,977억 4,800만 원을 증액하고, 319억 3,100만 원을 감액하였으며 부대의견 85건을 첨부해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2026년도 보건복지예산안을 분석하고 평가해 이를 보고서로 발표하고,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돌봄과 의료에 있어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기 이전, 각 부처에서 예산을 마련하는 시점에 참여연대서 우리 사회의 지속성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인 돌봄과 관련해 정책과 예산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는 돌봄의 공공성이 취약하고 국가의 실질적 책임이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 예산이 정부가 발표하는 다양한 계획에 조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인요양시설의 확충이나 초등 돌봄 시설의 증소 및 시설보강 예산 등이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공공인프라 확충 예산의 축소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점, 돌봄이 누구나 언제든지 필요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는 보편적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소득 기준을 적용해 돌봄의 대상자를 제한하는 선별적 접근을 유지하는 문제, 예산이 선 배정된 상태에서 이에 맞추어 대상자 규모가 결정되는 ‘예산 종속적 서비스 대상자 확정’ 방식으로 인해 돌봄서비스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 그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노인돌봄, 아동·청소년 돌봄, 영유아 돌봄, 장애인 돌봄, 돌봄 의료의 다섯 분야를 중심으로 요구안을 구체화한 돌봄 예산·정책 요구안을 정부에 전달하고, 2026년도 예산 수립 시 적극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의 첫 보건복지예산안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안은 한마디로 복지 전반의 질적 개선이나 구조적 전환으로 도약하지 못한 미완의 예산안이라고 할 수 있다. 2026년 보건복지부의 총지출 예산은 137조 6,580억 원으로 정부 총지출 예산의 20.4%를 차지한다. 2025년 대비 9.7%가 증가했는데 이는 법령에 따라 강제되거나 정책 대상 규모의 변화로 증가한 자연증가분이 대부분으로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증명의 정치’를 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번 보건복지부 예산의 경우 장애연금,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 관련 예산과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공공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산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감액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공공성, 즉 사회복지에서의 국가 역할을 억제한 윤석열 정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예산 편성이다. 또한 보건분야의 산업육성형 연구개발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사회서비스에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점은 산업화를 명분으로 보건복지서비스의 시장화를 확대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더불어,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등 일부 예산을 특별회계로 이전하는 재정 책임의 구조적 이동은 지자체의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부담 완화책에 불과하며,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력 격차에 따른 주민 삶의 질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2026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전년 대비 9.7% 증가했는데 이는 기준중위소득 인상과 기준중위소득 변동에 따른 급여액 증가에 따른 것이다. 간주부양제도의 폐지, 청년 단독가구 생계급여 분리 지급을 위한 모의 적용 등 일부 긍정적인 제도 개선이 포함되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와 기준중위소득 현실화가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표방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소극적인 예산 편성이다.
 
보육 예산의 경우 단계적 무상교육·보육실현 사업 신설, 영유아 보육료 지원 증액, 시간제 보육지원 확대 등 유보통합의 취지를 일부 반영하여 전년 대비 9.2% 증가하였다. 그러나 서비스 공공성 확보에 필수적인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었고, 대부분의 보육 관련 사업들이 지방정부의 과도한 재정적 책임을 요구하는 국고보조 사업 형태로 남아있어 공보육·교육에 기반한 균등한 교육·돌봄 기회 제공이라는 정책적 목적 달성은 힘들어 보인다.
 
아동·청소년 복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22.7% 증가했는데 아동수당 지급 연령 확대, 신규 시설 확충, 종사자 처우 개선 등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 예산편성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종사자 처우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인프라 확대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현 정부의 지역사회 돌봄 기조에 따른 아동의 탈시설화 예산도 확충될 필요가 있다.
 
노인복지 예산의 경우 전년 대비 6.8% 증액하였으나 이는 기초연금 증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각한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보장성 강화, 재정적 위기가 닥쳐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가책임, 노년층으로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의 일자리 등의 문제는 외면한 채, 노인복지 부문 예산안을 일반회계에서 지역균형 발전 특별회계로 이전하면서 중앙정부 책임을 지방으로 전가하려는 소극적인 태도 역시 확인된다.
 
보건복지부 소관 장애인 정책 예산은 전년 대비 9.0% 증액했다. 과거 소득지원 중심에서 바우처 중심의 서비스 예산으로 전환되는 추세 아래 2026년 예산안에서는 장애인활동지원예산이 총지출의 47.4%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장애수당과 장애인연금 예산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사실상 삭감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서비스 관련 예산 증가분 역시 급여량 확대보다는 지원단가 조정 및 자연증가분에 가까워 새 정부의 장애인 빈곤 완화 및 탈시설화 등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보건복지부 서비스 전달체계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38.7% 증가했으나,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의 전국 확대라는 단일 요인에 기인한 착시 효과에 가깝다. 그마저도 돌봄권 강화를 위한 실질적 정책과 재정 확보가 부족하고, 부처별 사업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국민의 돌봄에 대한 권리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서비스원 예산 역시 인프라를 확충보다는 ‘서비스 고도화’와 품질 관리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어 설립 취지인 공공돌봄 확대와는 방향이 다르다. 돌봄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처우 개선,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 공공 돌봄체계 복원을 위한 근본적 재정 개편이 시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 부문 예산은 전년 대비 3.7% 증액에 그쳤다.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예산은 제한적으로 확대되거나 실질적으로 감액되었고, 건강보험 국고 지원은 여전히 법정 기준에 미달하였으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오히려 축소되는 반면, 바이오헬스·디지털헬스 R&D 예산이 32.8%라는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즉, 대형병원 지원, 산업육성형 연구개발이 강조되고 공공의료 인력 및 인프라 확충, 건강보험 지원 등이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이는 정부가 표방한 공공성 강화보다 ‘산업·기술’ 중심의 ‘성장 논리’에 우선 순위가 치우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지난 30년 가까이 예산 운동을 어떻게 전개해 왔는지를 돌아보고, 예산 운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짚어보았다. 또한, 참여연대가 지난 5월 제안한 돌봄정책·예산 요구안과 이재명 정부의 첫 보건복지예산안 분석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보건복지정책들의 흐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내년도 정부 보건복지예산안은 시민혁명과 탄핵 이후 등장한 새 정부의 예산이라고 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주요 국정 과제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 반영은 미흡하고, 자연증가분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복지 확충의 의지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산은 숫자를 통해 정부 정책의 방향과 실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공공성’이 사라지고 ‘성장 논리’가 우선되는 이번 예산안을 보며 예산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작성자글.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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