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소수자를 만드는가: 구조와 규범, 정상성을 넘어 > 칼럼


무엇이 소수자를 만드는가: 구조와 규범, 정상성을 넘어

짓밟혀도 피어나는 존재들의 정치 / 장애청년의 목소리

본문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 데도 민들레처럼..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1)
 
나는 소망한다. 모든 소수자들이 무수한 발길에 짓밟혀도,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존엄과 가능성 그리고 희망의 노란 꽃을 피울 수 있기를.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장애인이 된 지 1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그 격들은 나에게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희귀난치성 질환,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장애인, 그리고 청년. 다중의 소수자성의 교차로에 서 있는 장애 청년으로서, 무엇이 소수자, 장애인을 만드는가에 대하여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조망해 보고자 한다.
 
규범과 정상성
장애 청년들은 흔히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되곤 한다. ‘비정상’이라는 개념은 ‘정상’을 전제함으로써만 성립한다. 즉, 정상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을 비정상으로 정의하기에 유효한 개념인 것이다. 비정상과 정상을 정의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기준이며 그것이 바로 규범이다. 규범은 우리 생활세계와 체계 여러 곳에서 작동하는 사회문화적 기준, 관념, 원리 등을 의미하고 성 역할, 공간 접근성, 미디어 등 여러 영역에서 현현된다.
 
이러한 규범은 사회 주류 집단의 경험과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건강한 비장애인-유산계급-시스젠더2)-헤테로섹슈얼-남성을 주축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렇기에, 다수의 규범은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들의 삶과 가치를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상정해 왔다. 따라서 규범은 태생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함축한다.
 
규범은 사회적 질서 유지, 공동체의 효율성 등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규범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규범은 부당한 배제와 판단의 기제로 쉽게 전환된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불의한 규범이다. 불의한 규범은 외견상 정의롭고 현대 이성과 합리성의 산물처럼 보이나 그 이면에는 비장애중심주의,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주의 등 차별적 이데올로기가 은폐되어 있다. 이런 규범은 대게 1차 사회화의 과정에서부터 언어3), 호칭, 행동 등의 양태로 자연스럽게 답습하게 되기에 잠재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곧 우리가 세계와 사회현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부정의한 규범일지라도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 십상이며, 세대를 거듭하며 재생산된다. 물론 일부는 사회의 변동에 따라 소멸하거나 안티테제와의 긴장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며 새로운 규범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불의한 규범은 현존하며 현실의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한 채 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함으로 주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한다. “어떠한 가치 x도 그것과 무관한 가치 y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4)” 그러나 규범은 일상의 여러 지점에서 x와 전혀 무관함에도 x라는 가치를 속단하는 기준(y)으로 기능하며 장애인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이런 소외는 단일 범주에 국한되지 않으며 섹슈얼리티, 계급 등 다양한 소수자성과 교차하여 더욱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규범과 정상성 그리고 장애 청년
장애 청년은 늘 규범과 정상성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념, 설계가 어떻게 장애 청년에게 작용하는가를 살펴본 뒤 교차성의 차원에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젊은 사람이 왜 병에 걸려? 그거 관리 안 해서 그래”
 
내부기관 장애인이자 질환자인 나는 이러한 말을 종종 듣는다. 여기에는 ‘젊은 사람은 당연히 건강하다’, ‘건강관리만 잘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통념이 작동한다. 그러나 젊다고 해서 질병이 비켜 가는 것은 아니며, 내가 가지고 있는 질환은 애초에 건강관리로 예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유형이다. 더욱이 질환을 관리해 오고 치료해 오던 과정에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병과 장애의 원인은 ‘관리 부족’으로 단정된다. 다시 말해, 자기관리와 질환,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 혹은 상관관계가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이 병에 걸린 것은 자기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규범적 통념이 작동하면서 병과 장애의 원인이 개인의 과실로 환원되는 것이다.
 
‘학교 앞에 술집이 이렇게도 많은데 왜 갈 곳이 없냐’
대학 생활의 꽃이라면 단연 술자리를 비롯한 친교 활동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곤 한다. 나는 성균관대학교의 장애인권단체에 오랫동안 몸담아왔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가 모든 장애학생이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맛있는 식사 공간을 찾는 일이었다. 청년 장애인 역시 카페, 음식점, 술집에 가며 대학가의 다양한 핫플레이스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학교 주변의 많은 핫플레이스 가운데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장애 대학생 역시 또래와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혹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크립스페이스(Crip Space)5)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건물 설계가 ‘계단을 오르는 데 문제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은 드물다. 비장애인 중심의 설계 기준이 장애청년을 막는 장벽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너도 연애에 관심이 있었어...?”
청년들의 흔한 고민 중 하나는 연애일 것이다. 장애 청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종종 무성적 혹은 로맨틱 지향이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물론 실제로 장애인이면서 무성애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술한 통념은 섹슈얼리티를 장애 여부로만 판단하는 것으로 연애에 관심이 있는 청년 장애인이 부딪히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있기에 더욱 속이 씁쓸한 부분이다. 또한, 연애에 있어 성적인 접촉이 필수적이라는 관념 역시 비장애중심적-유성애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 사례이다. 척수 등 신경계 손상으로 성적 접촉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무성애 스펙트럼 안에 있는 장애 청년도 존재한다. 이는 장애와 섹슈얼리티가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 청년은 연애 혹은 이와 관련된 담론장에서도 신체적 손상, 질병을 넘어선 심리적 장벽을 마주하는 것이다. 결국,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비장애인의 신체 혹은 성적인 접촉이라는 무관한 기준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장애 해방이란?
결국 소수자로서의 장애인은 태어나기도 하지만 불의한 규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애는 단순히 개인의 신체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부정의한 규범과 정상성의 경계에서 자신을 부단히 증명해야 하는 삶의 형태이다. 소위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장애 청년으로서 ‘장애 해방’은 당연시되는 규범을 넘어 장애인이 한 인간이자 존재로서 자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내가 나인 것이 약점이 아닌 사회6)”의 실현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인권을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주류집단과 규범과의 충돌은 물론 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흔히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동소이하기에 결국에는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이겨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대와 사랑이야말로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 살아온 이유, 살아가는 이유 모두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그리고 걸어갈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동료 시민들과 부모님, 사회에 대한 나의 사랑,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사랑과 지지 그리고 연대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망한다, 모든 소수자가 존엄과 가능성 그리고 희망의 노란 꽃을 피울 수 있길. 그러므로 나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강하게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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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다지. “민들레처럼.” 2집 - 사람세상, 서울음반, 1994.
2) 성정체성(gender identity)와 생물학적 성별(sex)가 일치하는 사람.
3) 가령,‘반팔’이나 ‘벙어리장갑’이라는 단어는 장애차별적 표현이며, 아버지 쪽 친척을 친가라고 하고 어머니 쪽 친척을 외가라고 하는 표현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은폐하고 있다.
4) 마이클 왈쪄, 『정의와 다원적 평등』, 정원섭 외 옮김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9) 일부 변형
5) 장애인이 비장애중심주의의 규범과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해 의도 적으로 구축한 물리적, 사회적, 디지털 공간
6) 이언희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
작성자글. 조명섭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 제2사무차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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