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국사회로 가는 개혁, 장애인권 거버넌스 논의부터 시작해야 > 칼럼


새로운 한국사회로 가는 개혁, 장애인권 거버넌스 논의부터 시작해야

장애청년의 목소리

본문

▲김민석 국무총리(왼쪽), 황준환 자문위원(오른쪽) (사진제공. 국무총리비서실)
 
겨울밤 계엄으로 촉발된, 시대정신이 명확한 대선에서 무려 ‘소년공 출신 장애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DJ에 이어 민주화 이래 2번째 장애인 대통령이다. ‘빛의 혁명’ 속에서 시민사회의 힘을 국정 동력의 한 축으로 삼는 이재명 정부에서는 사회대개혁을 모토로 내걸며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제2의 인수위원회’ 성격의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출범했다. 장애인 대통령의 시대와 사회대개혁의 정부미션, 복지의 프레이밍에 갇혀 장애 의제가 숨 쉬지 못했던 지난 시대와 현격히 다른 장애 의제가 태동할 기회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국민주권정부 50인 사회대개혁위원 중 장애계를 대표하는 유일하게 장애당사자 위원으로서 필자의 이름이 있다. 사회대개혁위원회는 국민주권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대통령령에 근거해 각 부처에게 이행계획을 요구할 수 있는 자문위원회 이상의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한정된 시간 내에 장애계의 어떤 의제를 국민주권정부의 결정 의제로 진입시킬 것이냐를 가장 무거운 짐으로 이해한다. 가령 진보적 장애인단체에서는 이번 기회에 탈시설 의제의 전면화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고, 기성 장애인단체에서는 복지정책과 국가장애 인위원회 설치 숙원 달성 여부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각양각색의 요구가 백가쟁명의 단체로부터 제기되는 것에는 최근 몇 년간 장애계가 공통으로 인식한 장애 의제의 ‘위기’에 대한 나름의 처방이란 이유가 있으므로 더욱 무겁다. 한국사회의 더욱 강화된 백래시로 장애 의제에 대한 호응이 예전만 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도 사실이고, ‘시혜적 복지’라는 차원에서 당사자의 참여도 없이 내걸었던 각종 제도는 이제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장애주류화’라는 전환적 논리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논의 등이 추진되었지만 공언만 되었을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겨우 실현되는 장애 의제란 여전히 시혜적 복지 의제의 틀에 갇혀있다. 물론 생존권이 달린 대다수 장애인의 삶을 고려한다면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예산을 얼마나 늘렸냐느니’, ‘대상자를 얼마나 확대했냐느니’, ‘시설의 무얼 개선했냐는 것’에서 전진하지 못한 채로, 장애 인권 의제가 백래시의 흐름 속에서 ‘당사자도 동의하지 않은 시혜성’을 준거로 집중포화를 맞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교착은 근본적 문제다. 특히나 장외에서 장애 의제가 논의되며, 장애당사자들이 그 희박한 기회를 안고자 경쟁하는 방식으로 논의되도록 유도하는 비장애인 중심의 논리가 국가정책 거버넌스를 지배하고 있는 이상, 4년 전의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차가운 복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장애계에서 가장 국민주권정부에 요구해야 할 사회대개혁 방향성이 ‘개혁정책으로서 몇가지 하겠습니다’에 기대를 거는 것보다 결국 기존의 왜곡된 결정구조를 혁파할 당사자 중심 거버넌스로의 전환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장애계가 지향할 성과가 ‘예산’이나 ‘시설’이니 ‘법률’이니 등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게 주도할 수있는 정책결정권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직접 장애계가 책임과 역할을 동시에 지는 키플레이어의 롤을 도맡아 탈시설이든, 복지정책이든 함께 합의점을 찾아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예견된 복지의 구조조정,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백래시의 흐름 등 장애인 정책의 추진 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장애당사자의 당사자성을 제도 안에서 발굴해야만 장애 의제가 최소한의 생존 동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대개혁위원회 국민보고대회 단체사진(26.03.11)
 
가장 먼저 보편적 참정권부터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이 ‘장애시민’으로 존중받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거버넌스의 시작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는 자리에서 진행된 3월 10일 국민보고대회에서, 사회대개혁위원회는 장애시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선거방송 수어통역, 쉬운 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 도입, 기표소 접근성 보장, 발달장애인 투표보조인 조력 보장 등의 실행 과제를 요구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대안이며 정부 관계부처의 반응 역시 미진하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러나 최소한 사회대개혁의 의제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장애인도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책무를 다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범장애시민사회 협의 테이블 구성을 통한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 구축으로 이어가야한다. 이는 미온적인 참정권 과제 협의를 위한 대정부 압박부터 시작하여 앞으로의 장애 의제를 이끌 범장애계 연대체를 위한 논의까지 이뤄져야 한다. 장애시민의 주권자 권리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숙의 공론의 형식으로 장애시민 및 연대시민과 함께하는 프로세스를 통하여 장애정책 주류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전적인 조율과 작업 체계를 사회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특히 정부뿐만이 아니라, 국회와 제정당을 포괄하여 장애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긴밀한 협의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적으로는 ‘국가장애인권회의’ 설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논의되었던 국가장애인위원회는 소수 장애인단체가 과두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의 조직으로서 여전히 시설과 단체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구조적 결함과 잠재적 한계를 품고 있다. 이 구조로는 탈시설, 장애인권비서관 도입 등 외부 논리에 취약한 각종 주요 구조적 장애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하다. 시설 밖의 장애인, 단체와 조직 외의 장애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회의 형식의 개방적 기구로서 장애여성, 장애청년, 장애가족, 장애연대자 등의 장애 의제에서 소외되었던 대상을 강하게 끌어안고 다양한 연대자를 확보하여 국가정책에 강하게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야만 흔들리고 있는 ‘장애정책의 뿌리’를 지켜낸다는 원칙적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다.
 
장애 거버넌스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시험대와 다름이 없다. 단순 ‘소수정책’으로만 규정하고 시혜적 조치에만 만족한다면 결국 범장애계가 이번 정부에 요구하는 시대정신인 사회대개혁 속 장애의제 실현도 이전에 반복되었던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가장 취약한 시민집단으로서의 장애시민이 제대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간 장애계가 때로는 장외투쟁으로 눈초리 속에 얻어냈던, 때로는 한 두 명의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으로만 할 수 있었던, 수모의 시간도 우리의 힘으로 보상받을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적기는 아직 정부가 국정동력의 왼쪽 날개로서 시민사회와의 연대 및 사회대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정부를 설계하기 위한 개조 작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DJ 이래 몇십 년 만에 돌아온 장애인 대통령 시대’, 그리고 시민사회 참여 확대라는 국정 기조속에서 사회대개혁위원회라는 장애인 정책의 창구가 열렸다. 그 문이 과연 언제 닫힐지도 모르는 지금 시점에서, 앞으로 더욱 가시밭길이 예고된 장애 의제의 터를 살아갈 중증 청년장애인 당사자 위원으로서 장애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되짚어본다. 어쨌든 시민권을 얻게 된다면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무어라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에 대해서 범장애계에 손을 뻗어 연대해 주실 것을 이 글을 통해 제안한다. 더는 우리가 곳간에서 쌀 꾸러미 달라며 주저앉는 존재가 아닌, 우리가 밭의 주인이 되고, 방앗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미래 장애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기 위하여. 
 
작성자글. 황준환 사회대개혁위원회 자문위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