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술
인권 / 장애계 비틀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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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지난 2025년 9월, 장애인 연극단체가 서울연극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자 했으나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후 서울연극협회장으로 선출된 당시 심사위원 ㄱ씨는 장애인이 참여한 작품에 대해 ‘전문연극이 아니다’라며 ‘좋은 일은 회원이 되시고 나서 하시라’는 말을 하여 논란을 키웠다. 서울연극협회에는 1년에 4회 이상 ‘전문 연극’에 참여하는 연출가, 배우가 가입할 수 있으며, 시민연극과 학생극 등은 협회 규정상 전문 연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ㄱ씨는 이 규정을 근거로 장애인 배우가 참여한 작품은 전문 연극이 아니며, 장애인이 오래 활동을 하고 예술활동증명 제도로도 ‘전문 연극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정받지 못한 예술활동증명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예술을 업으로 하여 활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이다. 예술을 하는 대부분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아직도 비정규직에 머물며 장애인 배우와 다를 바 없는데 전문 연극인은 어떻게 인정받고 있는가.
2025년 청룡영화상 축하공연에서 ‘비비드 라라 러브(VIVID LALA LOVE)’ 무대를 함께 꾸며 큰 주목을 받은 배우가 있다. 저신장 장애인 김유남 배우는 댄서들의 중앙에 위치한 돋보이는 역할을 맡아 고무적이었다. 악뮤(AKMU) 멤버 이찬혁이 선택한 배우 김유남은 예술적 교류를 이어온 파트너 관계다.
그동안 장애인 배우는 특정 역할에 국한되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할로 장애를 표현하여 그나마 장애인 배우로서 설 자리를 잃었다. 오페라에서는 성량과 음색, 감정 표현에 따라 성악가를 분류하여 배역을 정한다. 배우도 성격과 역할에 따라 멜로배우, 로코배우, 희극배우, 악역배우 등으로 구분한다. 장애인 배우는 어디에 해당될까? 장애인 역할을 하는 배우가 경추 장애인의 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휠체어를 탄 하지 절단 장애인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창작뮤지컬 프로듀서와 합창 지휘 경력을 말하면 으레 장애인 극단과 장애인합창단 활동으로 알고 있지만 음악 비전공자인 필자가 비장애인과 뮤지컬 기획과 제작(프로듀서)하고 아마추어 합창단과 기독교 성가대에서 지휘를 하였다.
1980년 말 신촌에 있는 소극장 연우무대에 올려진 탄광촌이야기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관람하였다. 맨 뒷 좌석에 앉아 연극을 보고 있는데 조용히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가 김민기였다. 목발을 좌석 바닥에 두었는데 목발을 본 김민기가 옆에 앉더니 음료 한잔을 건넸다. 이내 곧 무대 뒤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통제불능의 가슴을 쥐어야 했다. 뒷것 김민기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15년이 흘렀다. 김민기를 만난 감동은 나를 뮤지컬 프로듀서로 만들었다. 호기롭게 영국 출신의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등 제작)가 되겠다고 전통음악하는 친구와 창작뮤지컬 제작을 시작했다. 50여 명의 배우와 스태프 중에 유일한 장애인인 필자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연습실을 오르내렸다. 기획에서 결정된 기획안과 시놉시스를 가지고 연출, 각본, 음악, 조명, 무대, 미술, 의상, 안무, 분장, 촬영, 마케팅, 회계, 재무 등 업무 분장이 결정되었다. 각본과 음악, 안무, 촬영감독은 외부에서 섭외하였다. 나머지는 내부 스태프가 담당하기로 했다. 공연 일정이 확정되자 매일 저녁에 모여 연습하는 배우를 위한 지원 업무로 바쁜 중에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술과 관련된 무대, 조명, 홍보는 내 몫이었다. 사진작가와 홍보 이미지를 촬영한 후 포스터, 리플릿을 디자인하고 인쇄에 들어간다. 스태프와 대학로 곳곳에 포스터를 부착한다. 티켓 예매가 순조롭지 않자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다니며 지인들에게 티켓 강매를 하였다. 그동안 힘든 과정을 함께 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객석이 가득찬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충남 예산에서 무대에 사용할 대나무, 장승 등을 싣고 왔다. 공연 수익은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선에서 티켓이 판매돼 다음 공연 일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연 전날이 되었다. 리허설 전에 무대와 조명 세팅이 마무리 돼야 한다. 무대미술과 조명미술 작업은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계단과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계약된 대관 시간 안에 리허설까지 끝내려면 기어서라도 올라가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한다. 마치 <파리의 노트르담>의 콰지모도처럼.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장애인 콰지모도(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는 판사 프롤로의 명령에 의해 종탑에서 절대 나갈 수 없는 신세로 살아간다. 사육제(절제의 시간인 사순절 전에 마음껏 즐기는 축제)를 맞아 탈출한 콰지모도는 유일하게 친절을 베푼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만나 비극적인 사랑으로 감동을 준다. <파리의 노트르담>에는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진실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메시지가 있다.
한낱 그래픽디자이너에 불과한 필자가 뮤지컬 3편을 기획하고 제작했다. 배우들의 노래 연습과 안무, 연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했다. 5년여 시간 동안 홍보물 제작부터 무대미술 부매니저, 조명미술 지원을 하면서 프로듀서에 이르렀다. 필자는 스스로 근본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런 일을 좋아한다. 근본없는 사람이 만든 창작뮤지컬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 '못'은 '점'이 되고 '실'은 '선'의 역할을 하는 스트링아트(String Art)
그냥 예술, 스트링아트
스트링아트(String Art)는 나무판에 박은 못과 못 사이를 실(String, 絃)을 연결하여 기하학적 무늬나 그림을 만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선을 사용하는 예술영역인 스트링아트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직선을 그어주면 그 직선들의 접점이 모여서 곡선을 이루어내는 원리를 활용한다. 쉬운 DIY 공예로 분류되니 이게 예술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예술이다. 일상에서 직선으로 곡선을 만드는 원리를 이용한 예술작품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스트링아트는 하나의 실이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끝없이 이어지는 기하학의 향연으로 다각형이 원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결국 둥근 원이 되기 위해 수없이 직진을 해야 한다.
피아노는 보통 타현악기로 불린다. 사실 구조와 원리를 따지면 현악기에 가깝다.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면 현이 진동해 소리가 나므로 현악기로 볼 수 있다. 현악기에서 음을 내는 현(絃)과 현악기들을 한데 묶어서 부를 때 스트링이라고 부른다. 현악기는 직선이지만 곡선의 속성을 가진 다정함이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포근하게 감싸는 역할은 수많은 직선들이 맡고 있다.

▲ 건반을 누르면 내부의 해머가 현을 두드려 현의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피아노
장애를 뺀 예술 인프라가 우선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5.1%로 약 20명 중 한 명이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발간한 ‘2024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주로 활동하는 예술분야는 미술과 음악 분야가 53.4%를 차지했다. 지난 3년간 작품 발표 및 참여 횟수가 평균 16.8회로 나타났고, 3회 미만은 41.4%에 달했다. 문화예술 활동 수입으로 평균 909만 5천 원으로 월 76만 원 수준이다. 문화예술 활동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 부족’이 43.6%(2021년 10.8%)로 2021년 조사보다 증가해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보고서는 열악한 지표만 부각되고 변화하는 장애예술 현장과 장애예술 정책의 부재 등 고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냈다.
장애예술은 무장애공연, 조력자가 필요한 예술활동, 작가 중심의 활동으로 제한받고 있다. 모든 예술에서 배우 김유남, 화가 정은혜 씨처럼 유명한 장애인일 수는 없다. 장애예술 일자리는 문화예술 맞춤형 일자리 명목으로 주 20시간, 월 130만원 수준의 미술과 음악 등 문화예술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스포츠활동을 통한 장애인 일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장애예술을 최저임금에 묶고 장애인은 정부보조금으로 예술을 한다.
장애예술은 장애를 뺀 예술이 필요하다. 필자가 처음 디자인을 시작하였을 때 회사의 선배는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쇄 전반의 프로세스를 익히도록 했다.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 갈 수 있는 실크인쇄소, 옹색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인쇄 후가공 전문가들과 만나면서 하나의 책이 기획부터 디자인, 인쇄, 제본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기획부터 공연 후 정리까지 다양한 예술 활동가들이 필요했다. 사소한 업무라도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으며, 배우들도 스태프의 도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예술에서 다양한 직군의 활동가를 배출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무대감독, 발달장애인 조명감독, 시각장애인 음악감독, 저신장 장애인 안무가 등 무대에 오르는 배우만이 아닌 장애예술의 생태계를 가꿀 예술가들.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장애예술가들이 배출되고 있다. 모두 개인의 역량으로 이룬 업적들이 눈부시다. 그러나 모래처럼 쉽게 부서지는 성과 같다. 지속적인 공연과 전시, 예술활동이 제한적이다. 국가지원금으로 운영하는 문화예술 기관은 장애예술 활성화를 위해 재정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각 분야의 스태프를 육성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들이 성장하여 장애예술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연결자가 된다. 기획자는 장애를 사랑해야 장애인을 무대에 올릴 기획을 한다. 연출가는 장애인의 연기를 생각하고 분석하고 구현한다. 보호자와 장애인활동지원사부터 시작하자. 장애예술의 활동 파트너로서 전시와 공연 기획자가 되고 마케팅 전문가가 된다. 누군가는 못이 되고 누군가는 실이 돼야 한다. 못이 없는 곳에 실로만 엮을 수는 없다. 하나로 연결된 우리의 인생이 바로 예술이다. 그래서 서로 다정해야 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평철 그래픽디자이너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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