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배하는 세상의 키 플레이어 발달장애인 데이터 라벨러
인권 / AI와 장애
본문
1. 튜링에서 미중 패권경쟁까지: 기술의 진화와 소수자 배제
지금 온 세상의 화두는 인공지능 기술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현대 인공지능(AI)의 개념적 초석은 1950년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발표한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튜링은 해당 논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금의 인공지능 개념을 구체화하였고(Turing, 1950), 이는 1956년 다트머스 회의를 통해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McCarthy et al., 2006). 이후 수십 년간 기호 처리(Symbolic Processing) 수준에 머물렀던 AI 기술은(윤여범·박미애, 2020), 2010년대에 이르러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가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딥러닝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면서 현재의 열풍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진보의 본질은 따뜻하지 않다. 지금의 4차 산업혁명에는 과거의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권력의 논리’가 존재한다. 튜링의 컴퓨터 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U보트의 암호 해독이라는 군사적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태생부터 강자의 도구로 설계된 컴퓨터공학의 산출물이다. 오늘날에도 AI는 국가 간 패권 전쟁의 무기로 우선 사용되거나 거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발달하고 있다. 최근의 미·이란 전쟁이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군사 패권 경쟁에서 우리는 쉽게 이 전체주의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다수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결과가 표준으로 제시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소수자를 배제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는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사회 시스템에서 ‘소거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존재론적 배제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다(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2025). 이러한 첨단기술의 파괴적 속성은 과거 힘없고 죄 없는 사람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폭압적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국가폭력의 논리가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진다.
2. 기술의 재탄생: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살리는 역설적 통찰이 통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감동적이고 역설적인 통찰을 제시하였다. 필자는 패권주의적이고 다수자의 논리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에서 사회적 소수 약자의 삶을 지원하는 도구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다수자 사회가 만들어 낸다면, 한강 작가의 통찰을 인공지능 분야에서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쟁 승리와 경제적 지배의 수단으로 발전하는 ‘죽은 기술’의 범람 속에서, 다수자 사회에 결코 포함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발견할 때 차가운 기술의 본질은 비로소 ‘산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을 얻는다.
인공지능 세상의 핵심 부품은 데이터다. 데이터의 개념 설정에 오류가 있거나, ‘데이터 붕괴(Data Collapse)’와 ‘데이터 표류(Data Drift)’가 누적되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스템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하며, 이를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ing)이라 한다. 데이터 라벨링은 초기의 인간 수작업에서 자동화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나, 최종 단계에서는 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에게 유용한 데이터로 완성된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정교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자폐 성향을 가진 인재 중 상당수는 비장애인이 지루해하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탁월한 패턴 인식 능력을 발휘한다. 여기에서 데이터 라벨러라는 자폐성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 설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AI 기술 시대에 발달장애인의 새로운 직무가 창출되고 이들이 인공지능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직업을 제공하면 당사자들의 독립성과 사회 접근성을 증진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으며(권정민·이영선, 2020), 나아가 장애인의 사회적 자본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이재환, 2025).
3. 수혜자를 넘어 플레이어로: 신경 다양성 (Neurodiversity)의 가치
현재 AI 기반 보조기기 또는 행동 중재 도구의 설계는 시각, 청각, 지체,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성을 향상하기 위한 시혜적·수혜적 기술을 목표로 주로 연구되고 있다(남성희·박재현, 2024).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이 인공지능 기술 생태계의 능동적이고 필수적인 ‘키 플레이어’로서 참여할 수 있는 모델에 주목해야 하며 이미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런 직무에서 장애는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결점이 아니라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는 원천이 된다(
백종환, 2024). 데이터 라벨러 직무 중 비장애인이 수행하기 어려운 분야에는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을 기반으로 한 자폐 특성이 오히려 강력한 ‘스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자폐성 발달장애인은 기술의 단순 수혜자를 넘어 기술 고도화를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있다.
4.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사회경제적 다중 시너지 직무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자폐성 발달장애인은 4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을 위한 직무 시스템의 구체적인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 라벨러라는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부품을 가공하는 신종 직업군에 이들의 능력을 연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발달장애인에게 지속 가능한 직업을 만들어주는 일은 당사자의 독립은 물론이고, 가족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전체에 다중의 사회적·경제적 시너지를 동시에 구현하는 선도적 모델이 될 것이다.
본래 생명이 없는 죽은 알고리즘에 불과한 인공지능 기술이 다수자 사회를 위해 가치 있게 사용되려면, 역설적이게도 소수자인 발달장애인의 특별한 역량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다수자 사회가 이 직업생태계 조성에 특별한 배려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 권정민, & 이영선. (2020). 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활용 동향. 한국초등교육, 31(3), 187-202.
● 남성희, & 박재현. (2024). 장애인과 첨단기술: AI로의 여행. 한국장애인복지학, 63, 279-300.
● 백종환. (2024). [칼럼] 자폐 성향 인재, AI 시대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 에이블뉴스.
● 윤여범, & 박미애. (2020). 인공지능과 초등영어교육: 챗봇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중심으로. 한국 초등교육, 31(2), 77-90.
● 이재환. (2025). 장애인의 인공지능 서비스 활용이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박사학위논문, 한성대학교]. 한성대학교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2025). 장애와 인공지능 연구: 기회와 위기의 경계에서[심포지움 연구보고서 및 자료집].
● McCarthy, J., Minsky, M. L., Rochester, N., & Shannon, C. E. (2006). A Proposal for the Dartmouth Summer Research Project on Artificial Intelligence, August 31, 1955. AI Magazine, 27(4), 12-14.
● Turing, A. M. (1950).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59(236), 433-460.
작성자글. 박병섭 사회복지학 박사, 사단법인 함께사는세상 대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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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마케팅문의님의 댓글
마케팅문의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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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문의님의 댓글
마케팅문의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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