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키를 아십니까
인권 / 당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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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리키 5.0 과 윈도우7의 화상키보드 : 네이버 블로그
클리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화상키보드 프로그램이다. 스마트폰에서 문자를 입력할 때 쓰는 그런 것 말이다. 나처럼 두 손으로 직접 키보드 버튼을 눌러 문자를 타이핑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접근성 보조 기술이다.
십대 후반이 되면서 점점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나는 오른손을 마우스 위에서 키보드 위로 들어서 옮기는 일이 버거워졌다. 게임을 하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 채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이 됐다. 나는 점점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멀리하게 됐다.
윈도우에 내장된 화상키보드로는 정말로 타이핑만이 가능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한글 지원도 안 돼서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키보드를 베개처럼 품고 살지 않은 사람은 알파벳뿐인 그것으로 가벼운 인사 한 마디 적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클리키가 탄생한 배경이 이것이었단다. 우주항공 전공자인 누군가가 우리나라 화상키보드 유저들의 니즈를 알게 되고는 독학으로 50일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의 프로그램 되시겠다. 클리키는 키보드 레이아웃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고 단축키를 버튼 하나에 할당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 완성 기능을 제공했다. 내 오랜 습작기의 상당 부분은 클리키와 함께였다.
자의는 결코 아닌데 인생에서 게임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덩달아 게임용 컴퓨터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가면서 나는 애플의 아이맥과 그것의 운영체제에 대해 알고 큰 결심을 했다. 15년을 넘게 쓴 윈도우를 버리고 맥으로 갈아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오직 화상키보드였다. 맥의 운영체제에 내장된 화상키보드는 윈도우의 것과는 비교가 불가할 만큼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지금도 윈도우의 화상키보드는 맥의 화상키보드와 감히 나란히 있을
수 없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자면 단편소설 한 편 분량도 충분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자동 완성이다. 맥의 화상키보드는 한국어 자동 완성을 지원한다. 그런 내가 아주 최근에 맥을 처분하고 다시 윈도우로 넘어갔다. 가장 큰 이유는 맥의 화상키보드를 누를 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이 다시 내 인생에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맥에서 돌아가지 않는 캐주얼 게임을 윈도우 미니 PC로 즐기던 나는 언젠가부터 윈도우 전용 접근성 프로그램의 존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시도해 보며 다시 게임의 세계를 확장해가던 중이었다. 그 두 가지 방향의 흐름이 맞물리게 되면서 나는 수년 만에 다시 플랫폼을 전환하게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윈도우에서 글을 쓸 때마다 아쉬움이 있었던 나는 아주 오랜만에 클리키를 검색해봤다. 제작자와의 짧았던 소통도 어렴풋이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아주오래된 인터넷 카페글과 낯선 자료실 링크들이 날 반기고 있었다.
'클리키 윈도우 10에서 실행하는 법'
'클리키 압축 파일 자료실에 있어요'
'클리키 블로그는 폐쇄됐네요’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야 제작자가 코딩의 ㅋ 자도 모르다가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알파벳으로만 된 화상키보드를 쓰면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 알고 50일 동안 독학해서 한글로 된 화상키보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는 2002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 제작자는 그때 서른둘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비장애인 청년이 난데없이 책을 펴들고 화상키보드를 만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블로그를 폐쇄한 사십 대의 그를, 그리고 더는 업데이트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이곳저곳 퍼나르며 맞지 않는 시스템에서 구동할 방법을 찾아 헤매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내가 AI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특별히 주목한 분야는 프로그래밍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오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초에 나는 채팅창에 대고 이런 얘기를 했다. “표정 인식해서 마우스 클릭하게 해줘.” 내가 원하는 건 시종일관 같았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컴퓨터를 좀 더 쉽게 사용하는 것. AI는 수백 줄의 코드를 써주고 나는 그것을 터미널에 붙여넣는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나는 채팅창을 끄고 일기에 적는다. 바이브 코딩이란 다 사기라고.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상황이 달라졌다.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코딩용 AI 서비스를 제공하던 엔트로픽에서 일반 소비자에게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채팅창에 지나지 않았던 앱은 프로그래밍 언어 편집기가 되었다. 이제는 AI가 코드를 직접 실행하고 오류가 발생하면 수정해서 다시 실행했다. 될 때까지.
나도 달라졌다. 맨땅에 헤딩을 반복하다 보면 뭐라도 배우기 마련이다. 내가 당장 사용할 만한 기능 한두 개를 구현해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앱’이라고 할 만한 뭔가가 껍질을 깨고 정체를 드러냈다. 안드로이드 폰에서 표정 인식으로 액션을 수행하는 미믹이지, 맥의 PopClip을 윈도우용으로 구현한 오비탈 등 깃허브라는 코드 공유 플랫폼에 내가 만든,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주문한 프로그램들이 업로드됐다.
알트키(AltKey) v0.9.0
그리고 알트키(AltKey).
우연히 다시 윈도우를 쓰게 됐고, 옛날부터 나만의 화상키보드를 만들어보고 싶어했고, 바이브 코딩이 게임만큼 재밌어서 알트키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알트키의 목적은 명확했다. 한국어 자동 완성 기능이 있고, 복사 붙여넣기 등 단축키를 설정할 수 있고, 키보드 레이아웃도 커스터마이징 가능하고. 딱 맥의 손쉬운 사용 키보드다. 내가 AI한테 처음 요청한 사항도 그것이었다. 맥의 손쉬운 사용 키보드를 윈도우용으로 구현할 것.
알트키를 만드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직접 만들어 쓰다 보니 당장 문제가 생겼다. 윈도우에서는 한/영 상태가 프로그램마다 별도로 작동한다. 그래서 나의 화상키보드가 자동완성한 ‘안녕’이 실제로는 ‘dkssud’으로 입력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였다. 나는 이 문제로 고심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윈도우 터치형 화상키보드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있었다.
한/영 키가 두 개였다. 하나는 윈도우의 한/영 상태를 바꾸고, 다른 하나는 화상키보드 자체의 표시 언어를 바꿨다. 그리고 이 터치형 화상키보드는 윈도우의 한/영 상태와 무관하게 자체 상태의 언어를 입력시켰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우두둑하고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알트키가 윈도우 언어 상태를 알 필요 없이 그냥 글자를 붙여넣어 버리면 될 텐데. 그럼 ‘dkssud’하지 못한 입력은 피할 수 있을 터였다. AI는 훨씬 간단한 해법을 알려줬다. 유니코드를 직접 보내는 것. 윈도우의 언어상태가 영어일 때 ‘안녕’이라는 단어를 복사해서 붙여넣어도 ‘dkssud’이 아니라 ‘안녕’이 입력되는 것처럼 작동하면 됐다.
현재 알트키는 기본적인 뼈대는 거의 자리를 잡은 걸로 보인다. 최소한 내가 이걸로 에세이를 쓰면서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정도다. 단순할 수 없다면 갈 데까지 가보자. 기본적인 기능은 최소한의 설정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알트키는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 바람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최의택 작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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