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월드컵 즐기기
인권 / 당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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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 번, 월드컵이 시작되면 세상은 조금 달라진다. 거리에는 붉은 티셔츠가 늘어나고, 사람들 인사도 자연스럽게 축구 이야기로 이어진다. 평소 프로야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 역시 그때만큼은 축구에 마음을 빼앗긴다.
시각장애인이라 해서 스포츠를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리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패배에 누구보다 아쉬워한다. 다만 눈으로 경기를 보기보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상상하며 월드컵을 즐길 뿐이다.
귀로 만난 월드컵
내가 처음 월드컵의 감동을 만난 것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나는 열두 살이었다. 우리나라가 강호들을 연이어 꺾으며 4강에 진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믿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라디오 앞에서 숨을 죽인 채 경기를 듣던 내 귀에 지금도 생생한 남아 있는 목소리가 있다.
“슛! 골인! 한국 골인했습니다! 한국의 신연호!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신연호 선수 결승 골이 터지던 순간, 조춘제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높고 떨려 있었다. 그때 나는 어린 아이였다. 화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멘트를 들으면 당시의 함성과 감동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3년 뒤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내가 처음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경기를 경험한 대회였다. 박창선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 첫 골을 터뜨리던 순간, 김종부가 불가리아를 상대로 통렬한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이탈리아와의 예선 3차전 3:2 경기는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월드컵 명승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회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나라 경기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마라도나가 8강 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기록한 ‘신의 손’과 ‘세기의 골’, 그리고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보여 준 축구의 예술은 어린 내게 월드컵이 얼마나 거대한 무대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대회가 아니라, 내가 4년마다 꼭 함께해야 하는 축제가 되었다.
지금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시각장애인들도 TV나 모바일 중계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훨씬 생생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공이 발에 맞는 소리,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외침, 관중의 함성은 경기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특히 승부차기에서는 귀가 더욱 예민해진다. 심판 휘슬이 울리고, 적막이 흐른 뒤 공이 골네트를 흔드는 소리, 골키퍼가 몸을 날려 공을 쳐 내는 소리, 때로는 골대를 강하게 때리는 금속성 울림까지. 그 짧은 몇 초 동안의 소리만으로도 경기장의 긴장감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시각장애인에게 축구는 귀와 상상력이 함께 만들어 내는 스포츠다.
가족과 함께한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만, 내게는 더욱 특별하다. 월드컵이 열리기 한 달 전 결혼했기 때문이다.
신혼의 설렘 속에서 아내와 함께 맥주와 치킨을 준비해 놓고 한국 경기를 응원했다. 폴란드를 꺾으며 월드컵 첫 승을 거두고, 미국과 비기고, 포르투갈을 이기며 16강에 진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이탈리아를 꺾고 스페인마저 승부차기 끝에 이기며 4강에 오르던 순간에는 아내와 함께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가 가장 행복하게 떠올리는 추억 가운데 하나다. 사실 그 무렵 우리 부부도 남들처럼 ‘월드컵 베이비’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마저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다.
20년이 흐른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수능을 마친 아들과 아내, 셋이 함께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을 지켜보았다. 메시와 음바페가 펼친 명승부는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새벽잠도 잊은 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신혼부부였던 우리가 어느새 대학생 아들과 월드컵 결승전을 이야기하는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도 행복했다. 월드컵은 그렇게 우리 가족의 시간을 이어 주는 추억이 되었다.
함성이 우리를 잇던 순간
월드컵의 즐거움은 가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19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회사 동료들과 치킨과 맥주를 준비해 함께 응원했다. 평소에는 각자의 업무로 바쁘게 지내지만, 휘슬이 울리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의 응원단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찬스를 잡았을 때는 함께 환호하고, 위기에서는 함께 탄식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회사에서는 직급도 다르고 맡은 일도 다르지만,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한마음이었다. 축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월드컵이 남긴 가장 재미있는 기억
2002년 6월 22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은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이 열린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회사 동료의 결혼식도 같은 날이었다.
예식장에 모인 하객들은 모두 축하하는 마음으로 왔지만 마음 한편은 이미 광주월드컵경기장에 가 있었다. 예식은 보는 듯 마는 듯했고, 식당에서는 음식보다 경기 상황이 더 큰 관심사였다. 누군가 경기 소식을 전해 줄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운재 골키퍼가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고, 홍명보가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는 순간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결혼식이 끝난 뒤 거리는 축제의 함성이 가득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축하했다. 그날만큼은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응원단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내게 월드컵은 경기 결과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조춘제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 가족과 함께 웃고 환호했던 시간, 동료들과 치킨을 나누며 응원하던 밤, 그리고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었던 순간들. 월드컵은 언제나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로 내 삶에 남아 있다.
앞으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중계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단순히 골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의 움직임과 선수들의 위치, 경기장의 분위기와 긴장감까지 더욱 섬세하게 전달해 준다면 시각장애인들도 월드컵의 감동을 지금보다 훨씬 풍성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또 월드컵이 시작되면 나는 변함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을 것이다. 캐스터의 샤우팅, 관중의 함성, 공이 골네트를 흔드는 소리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경기장을 내 마음속에 펼쳐 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월드컵을 눈으로 기억한다. 나는 귀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나, 가장 뜨겁고 가장 선명한 월드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작성자글. 박의권 사단법인 윌 이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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