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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함께 걷는 사람, 나는 장애학생과 함께 걷는 교사다.”

함께 하는 사람들

본문

 
5월! 5월이다.
 
바깥 어디든 잠시만 눈을 돌리면 사방천지에 화사한 봄꽃들이 활짝 미모를 뽐내고, 3년여간 코로나로 묶였던 일상이 풀리는 요즘, 모처럼 들뜬 활기와 해방감으로 거리는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자유롭고 활기로 가득 찬 세상 한 켠, ‘장애인에게는 왜 이리도 세상이 유독 냉혹하고 차가운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장애인의 세상은 5월의 화사함과 여전히 거리가 멀고 춥기만 하다.
 
지난 4월 19일 556명의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가족, 당사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진행했고 이를 시작으로 지하철 역사에 천막을 치고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장애인 기본 권리보장 예산 확보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은 출퇴근 시간을 택한 지하철 시위라는 이유로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가며 오체투지를 온몸으로 펼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장애인과 가족들의 모습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몸담은 교육 현장도, 장애인 복지도 조금씩 조금씩 분명히 더 진일보하고 발전해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는 장애인 투쟁 현장을 보면서 과연 내가 달라졌다고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보고 나는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던 것인지 고민이 든다. 그저 내 직장과 자리에 안주해 이만하면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한없는 부끄러움이 올라올 뿐이다.
 
 
장애학생에게 학교는 삶의 질을 보장하는 안전한 해방구
 
나는 초등학교에서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다. 그것도 발령받은 지 어느새 30여 년을 향해가는, 중견 교사 소리 듣는 나이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선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여한 바가 있기는 했을까? 아니면 기여한 것들보다 한 발 뒤로 퇴보했거나 내가 놓치며 살아온 것은 무엇일까? 놓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온 실수는 또 얼마나 많을까? 나름 여러 가지를 계산에 넣어두고 이리저리 경우의 수를 돌려가며 되돌아보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속 시원하게 잘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지금 나의 모습이고, 어쩌면 이러한 내 모습은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게다가 지난 3년여 동안 우리가 맞닥뜨린 코로나 상황은 장애인 가정에 더 가혹했다. 가장 우려하고 염려했던 걱정을 현실에서 뉴스 기사로 듣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장애학생의 가족들이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대부분의 복지 관련 기관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 따라 오롯이 집안에서 주 양육자인 부모와 온종일 갇히다시피 지내야 하는 가정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중에서 힘듦을 참지 못하고 비관해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부모의 뉴스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코로나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에 학교란 단순히 공부하고 수업받는 학습의 공간이 아닌, 삶 그 자체인 생존권의 보장 여부가 달린 제일 중요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단순히 아이들의 수업과 학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삶을 보장하는 공간임을, 가정의 안전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안전한 해방구였음을 코로나 상황에서 우린 비로소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장애학생과 가족에게 교육권이란 단순히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학습하는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의미였음을, 어쩌면 생존권과도 동격의 의미임을 알게 해 준 코로나! 그렇게 코로나로 말미암아 불평등과 차별은 더 선명해졌다.
 
 
아프고 미안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꿈꾸고 소망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코로나가 종료된 이후 교육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그리고 코로나와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온다면 이를 대비해 미래 교육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에 우리는 또 어떤 답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이 하필이면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 학교의 흔한 풍경은 아이들이 예전 선생님이나 지금 담임선생님께 감사 카드와 편지를 전달하느라, 또는 깜짝 이벤트를 벌이느라 교실마다 노랫소리나 환호가 들리기도 한다. 일반학급을 맡은 교사들은 이맘때쯤이면 상급학교에 진학한 옛 제자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 방문하는 제자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예전 우리 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상념에 빠진다. 찾아오는 제자가 없다는 슬픔이 아닌, 우리 제자들이 어디에서건 건강하게 자신의 안위라도 잘 챙기며 살고 있을지, 그 가족들은 삶이 좀 가벼워졌을지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음이 복잡한 상태로 지낸다.
 
처음 교사 발령을 받고 신규교사로 갔던 첫 학교에서의 내 모습, 그리고 그때와 비교해 지금의 내 모습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삶이 예전 그 시절의 장애학생의 삶과 달라진 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특수학교 하나 더 짓기 위해 장애학생 부모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현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500여 명이 넘는 부모들이 동시에 삭발하는 현실에서 물으나 마나 답이 보인다. 헤어진 이후에 만난 적 없는 내 반 아이들의 현재 삶도 보인다. 주변에 온통 혐오와 차별의 언어, 그리고 가시 돋친 날카로운 시선과 말들은 여전히 시시때때로 그들을 아프게 때릴 테고, 그 아픔들을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어른으로, 교사로, 참으로 미안하고 아프다. 그러니 우리 특수교사에게 스승의 날이란,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보람을 느끼는 날이 아닌, 성인이 되었을 제자들에게 미안스러워서 마음으로 용서를 비는 그런 날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오늘도 꿈꾸고 소망한다.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의 꿈을…. 나의 삶이 나아지는 만큼 우리 반 아이들의 삶도 같이 나아지기를…. 장애가 있든 없든 무엇이든지 꿈꿀 수 있는 사회, 더는 부모가 나서서 삭발하지 않아도 되고, 장애인 당사자가 기본권 보장을 외치며 온몸으로 바닥을 기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꿈꾸고, 꿈꾸는 대로 도전하고, 도전해서 꿈을 이루는 그런 사회,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그런 자유를 누리는 사회!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소망이어야만 하는가?
 
더 많은 꿈과 소망이 모여 더는 함께 죽지 않고 함께 꿈을 펼치는 사회를 그려본다.
작성자글. 박현주/특수교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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