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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장애가 있어요?

세상의 중심에 선 장애아동

본문

 
지난 호에서는 임신기간 동안 경험하는 산전진단과 장애의 관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호를 통해서는 산전진단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장애아이가 영유아기에 경험하는 발달 단계의 과정에서 자신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장애영유아와 비장애영유아가 함께 지역사회에서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형성되어 있는지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양육 및 돌봄을 부모에게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함께 키우겠다는 기조 아래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공적인 영역과 민간영역에서 돌봄 및 자녀양육 프로그램의 제공이 증가하였고, 자녀를 출산한 부모들은 이르면 3~4개월 즈음부터 자녀와 함께 가까운 육아지원기관이나 문화센터를 방문해 베이비마사지, 오감발달 프로그램, 신체활동 프로그램 등에 참여합니다.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자녀와의 스킨십을 통해 애착을 형성하며 자녀가 성장해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출생 시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거나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영아는 부모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문화센터보다는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낮병동을 방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신체발달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료적인 처치를 받거나 재활에 참여합니다. 비장애영아가 부모-자녀 간의 애착을 형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장애영아는 병원에서의 재활을 통해 더디더라도 목을 가누고, 분유나 이유식을 원만하게 삼키며, 뒤집기, 배밀이 등의 신체발달이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부모-자녀 간에 애착을 형성하고 발달에 적합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재활을 위한 시간으로 내어주게 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장애영아는 발달에 적합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기보다는 하루 일과를 병원 방문과 재활치료로 바쁘게 보내게 됩니다. 병원에 방문하여 의료적인 처치를 받고 재활에 참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서 의료적인 처치와 재활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장애영아가 지내는 병원 환경과 치료실 환경이 비장애영아가 지내는 일상과 유사하게 마련되어 있는지, 영아가 움직이고 싶을 때 언제든 안전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이 제공되고 있는지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영아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는 부모님들은 병원의 환경이 장애영아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치료실 자체가 환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치료 자체를 안 하는 것도 많고 어떤 데는 잠깐만 한다던가…. 아이들이 아주 아기여서 12개월 24개월 전에….”
(장애아동 부모 A)
 
“이때가 돌 갓 지난 아기였어요. 이런 아이, 아직 서지도 못하는데 벽에 기대면 설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이렇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전기 붙이고 있는 거 보이시죠. 이렇게 치료를 맞지도 않는 자전거, 맞지도 않는 승마기기를 아이들한테 해서 이걸 필수로 해야 돼….”
(장애아동 부모 B)
 
 
이제 자녀가 조금 더 자라서 우리나라 나이로 4~5세 정도가 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보육 및 교육기관에 가게 됩니다. 대부분의 비장애영유아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이용하거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차량을 이용해 기관을 이용하게 됩니다. 장애영유아는 지역에 장애 통합 또는 장애전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알아보고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장애영유아가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장애전문 또는 통합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이 시기에 적절한 보육·교육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장애영유아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발간한 「2021년 장애통계연보」에 의하면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장애영유아는 72%라고 응답했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장애영유아는 93.3%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아동의 인구와 장애아동의 인구 모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체 아동인구는 2010년 10,156,455명에서 2020년 7,710,946명으로 줄어들었고 장애아동의 인구도 2010년 80,075명에서 2020년 75,482명으로 소폭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전체 아동 인구수에서 장애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0.79%에서 2020년 0.98%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장애영유아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오는 모습, 부모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지역에 장애영유아가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인 걸까요? 아니면 놀이터에 나와서 놀 때 장애영유아가 이용할 수 있는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의 시설물이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수 없거나 장애영유아가 사용하기 적합한 놀이기구가 없기 때문인 걸까요? 분명 지역에 장애영유아가 살고 있음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장애영유아를 마주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장애영유아가 지역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장애영유아가 활동할 수 있는 사회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장애영유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4~5살 정도가 되면 영유아들은 자신과 같은 성별의 부모와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자신과 부모의 신체적인 공통점, 그리고 다른 성별의 부모와 자신의 다른 점을 구분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애영유아는 같은 성별의 부모에게도, 다른 성별의 부모에게도 없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를 전조작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시기에는 현저한 지적발달을 보이며 언어적인 발달로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장애영유아에게도 이러한 발달은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언어표현을 하는 장애영유아도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장애영유아가 주변의 어른에게 “나는 왜 장애가 있어요?” 내지는 “나는 왜 달라요?”라고 물을 때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거나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애영유아가 질문을 하고, 어른들이 설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상황에 대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아이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만 (치료센터를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재활하는 것 등) 강조하게 된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장애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장애영유아가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어른들이 얼버무리거나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영유아에게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대화를 회피하지 않고,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런 말들이 주는 불안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시몬느 소스는 언어가 불완전하고, 지적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수행능력이 부족해도 장애아동의 정서반응은 비장애아동의 정서반응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가 만났던 장애아동 중에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해서 명확한 대화를 하고 난 뒤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단어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애영유아가 지역에서 잘 자라나게 하려면 지역주민들의 인식도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4학년, 2학년인 아들들과 한 발 뛰기를 하며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해 가끔 동네 골목대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얼음땡, 한 발 뛰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를 하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그날도 다른 여느 날처럼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저와 같은 라인에 살고 있는 7살 아이가 너무나 반갑게 저를 이모라고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가까이 와서는 천천히 그리고 어눌한 말투로 “지금 무슨 놀이 하는 거예요? 나도 같이 할래”라며 놀이에 흥미를 보이길래 흔쾌히 같이 놀자며 함께 놀았습니다. 저를 반갑게 불러준 7살짜리 아이는 발달지연으로 5살까지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5살 연말에 상을 잡고 섰다고 합니다. 그 후로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 현재는 조금 불안정하긴 하나 스스로 걷고 의사표현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7살짜리 아이와 함께 대화하며 놀이를 시작하는 동안 주변에 있던 다른 부모의 아이들의 시선이 저와 7살짜리 아이에게 집중이 되었고, 그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우리의 놀이가 끝날 때까지 숨죽여 지켜보는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놀이를 잘 마치고 다음에 또 만나서 놀자며 아쉽게 인사하고 돌아서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장애영유아도 지역에서 누구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고, 대화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영유아와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만 같았습니다.
 
앞으로는 장애영유아도 영유아 시기에 지역에서 가까운 문화센터도 가고 가까운 교육기관도 이용하고, 장애를 가진 친구와도 놀고 장애를 가지지 않은 친구와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물리적인 사회환경이 마련되고 주민들의 인식 수준이 향상되길 기대합니다.
작성자글. 원영미/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수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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