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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십육 번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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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십육 번 고객님~ 백팔십육 번 고객님!”
 
대화보다는 지연반향어(이전에 들었던 단어 또는 특정 문장을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유사한 또는 특정 상황에서 혼자서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를 주로 발화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나를 백팔십육 번 고객님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로 숫자만 바뀌었지 나를 ‘고객님’이라고 자주 지칭했다. 아마도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낮에 아이를 데리고 은행에 자주 가는 것 같았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내 아이는 자폐성 장애가 중한 편이라 매달 160시간 이상의 활동지원 시간이 주어진다. 하루에 6~7시간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학교에 다녀와서 치료실 한두 곳을 다녀온다 하더라도 서너 시간 이상은 활동지원사와 단둘이 보내야 한다. 휴직을 했을 때는 활동지원사를 쓰지 않고 내가 직접 아이를 봤다. 치료실에 다녀오는 것뿐 아니라 아이의 발달을 돕기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은 참 많다. 옷 입기, 세 수하기, 이 닦기, 식기 사용하기 등 여러 가지 자조활동 연습, 한글과 수 가르치기, 치료실에서 배운 언어를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지역사회 시설 이용, 신체활동 등 무수히 많은 활동을 하며 아이의 발달을 도왔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부터는 일을 하는 동안 아이를 볼 수가 없으니 나 대신 누군가 내가 하던 일을 해주어야 했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활동지원사가 대신해주기를 바랐다. 단순히 치료실에 가는 이동지원 이외에도 일상생활 속 자조활동과 신체활동, 간단한 한글 학습 등은 지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 하루에 지원받은 6~7시간을 채울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인 나나 가능한 일이었다. 센터에서 연결해 주는 활동지원사들은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 지원사가 되기 위해 일주일간의 교육과 실습을 받는다고 하지만 장애 전반이나 지원제도에 대한 교육이지 자신이 맡을 장애인의 장애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아이와 함께했던 활동의 일부를 부탁하자 대부분의 지원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곤란함을 표했다. 그들의 부담도 이해가 되었다. 거의 최저시급에 가까운 대가를 받고 소통이 힘든 자폐성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활동지원사가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부담스러워해서 처음에는 무리하게 치료 시간을 늘렸다. 아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활동지원사는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 이리저리 이동지원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닌 활동지원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결정이어서 고민이 많았다. 아이는 치료받느라 지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고민 끝에 치료를 줄이니 활동지원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아이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미리 준비하고 안내해 봤지만 아이가 호락호락 지원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이 아이를 관찰하고 그에 맞는 중재가 필요한데, 사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활동지원사가 자폐성 장애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지식과 중재 방법을 알아야 수월하게 아이를 대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차에 태워 동네를 수십 바퀴 돌며 드라이브를 하거나 집에서 혼자 놀도록 방치하는 등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지원사가 아이를 데리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그나마 양반인 셈이었다.
 
내 주변의 비슷한 또래의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똑같은 고민이었다.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를 받는 지원사에게 활동의 강도가 높은 일을 부탁할 수도, 아이를 위해 발달장애에 대한 공부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활동지원사 대부분은 50~60대 여성이어서 건장한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지원받기를 포기했다. 조건에 맞는 활동지 원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차라리 내가 사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친인척이 없는 나는 그래서 7년간 휴직을 했고, 복직할 즈음 사직을 오래 고민했다.
 
결국 내가 직접 활동지원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이의 상태와 원하는 조건을 상세히 써서 공고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맥을 총동원해 사람을 구했다. 지역 카페와 SNS도 이용했다. 그렇게 해서 몇 명의 지원자와 직접 면담을 하고 우리의 상황과 여건에 잘 맞는 사람을 찾아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도록 했다. 교육 후에는 내가 직접 비용을 부담해서 추가로 발달장애인의 이해에 관한 교육을 받도록 했고, 관련 서적을 구입해 지원사가 읽도록 한 후 아이에게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아이와 단순히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 단기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매일 잠깐이라도 아이와의 활동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추가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내가 부담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한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아이는 지난 3년 동안 발달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나는 아이 성장의 일등공신이 활동지원사라고 생각한다. 지난 3년은 선생님에게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직업인으로서 지식과 경험이 쌓여가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우리 아이에게도 부모 외에 자신과 함께 살아갈 사람을 만난 귀한 시간이 되었다. 부모인 나에게도 아이의 장애로 인해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쌓아갈 수 있는 든든한 시간이 되었다.
 
그 의미 있는 시간이 내가 운이 좋아서 훌륭한 활동지원사를 찾았기 때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부모가 활동지원사를 구한다면 일주일간의 짧은 교육만 받고 발달장애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채로 배정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직접 비용을 들여 발달장애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은 활동지원사 교육기관 또는 지원센터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되려면 적어도 수많은 장애 중 지원사가 만나게 될 이용인의 장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학령기에 있는 장애인의 경우는 신체활동이나 가사지원 외에도 장애 정도에 따라 학습지원이나 치료적 지원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 이수현 ⊙ 사진 제공. 이수현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최대한 지원하고 당사자가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돕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함을 목적으로 한다(보건복지부). 이와 같은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동지원 및 신체활동 지원을 넘어 좀 더 전문적인 지원이 가능한 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지원사의 교육부터 달라야 한다. 신체장애인과 전혀 다른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을 위한 인력에는 그에 맞는 다른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결국 ‘백팔십육 번 고객님’이 된 나는 활동지원사에게 아이를 맡기면서도 마음이 늘 불편했다. 아이가 여기저기 목적 없이 끌려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고, 힘들어하는 지원사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자신이 아이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회의가 든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은 먼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활동지원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며 힘들어하고, 이용인 가정은 제대로 된 지원을 못 받아서 힘들고. 이 악순환의 굴레를 어떻게 바꿔갈 수 있을까? 심사 후 이용 시간을 결정하고 그에 따른 활동지원사를 배치해 주는 단순한 시스템으로는 실질적 지원이 불가능하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을 진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장애와 여건에 맞는 촘촘한 제도가 절실하다. 장애인의 부모인 나는 너무나 절박한 필요에 의해 직접 나서서 지원사를 찾고 교육시켰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일은 진정한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작성자글. 이수현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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