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20>, 창작 표현의 자유, 그 명분과 존중의 선을 넘어버리다 > 현재 칼럼


영화 <F20>, 창작 표현의 자유, 그 명분과 존중의 선을 넘어버리다

장애 코드로 문화 읽기

본문

 
 
 
미디어 속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
영화 <범죄도시 2>. 동네 마켓에서 환의를 입은 한 남자가 인질들을 가두고 경찰과 대치한다. 이 남자는 주인공 ‘마석도(마동석)’에 의해 제압당하며, 주변 사람들은 이 남자를 향해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또라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 남자를 제압할 때, 뿜어져 나오는 주인공 ‘마석도’의 파워풀함은 영화 초반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 위험성이 내포된 존재로 묘사한 사실, 이 장면에 담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관객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정신병원을 탈출한 것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복장과 상황에 이어진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주변인들의 대사로, 우리 사회에 견고하게 드리워진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정서, 즉 예측 불가능하고 이유 없는 과격함과 난폭함이 내재된 존재라는 멍에가 다시금 여가 없이 노출된 것이다. 이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이며 장애에 대한, 인권에 대한 차별적 표현임이 분명한데,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외에 이를 인지한 관객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이뿐인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방송, 신문, 유튜브, SNS 등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폄훼, 혐오를 조장하는 무분별한 영상이나 내용들, 용어 등은 또 얼마나 남발되며 대중들의 눈과 귀, 사고를 잠식해 버리는 가? 한 예로 뉴스 프로그램의 사건, 사고 보도에서 화재나 인질 등 사건이 일어나면 “용의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나요?”라는 기자들의 질문은 관용어처럼 따라붙는다. 사건 브리핑에 나온 경찰 대부분은 친절하게도 “네.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조현병’, ‘정신병력’이란 단어들을 앞세운 제목을 뽑아 마치 기정사실화 하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대중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책임감 없는 기사들을 범람하게 하며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어떠한가? 영화 <범죄도시 2>의 정신장애 캐릭터에 담긴 인식의 문제는 늘 따라붙는 수순이다. 이는 정신장애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 없이 편견에서 비롯된 이미지의 정형화가 가져온 문제들이기도 하다(최근 개봉한 영화 <비상 선언>의 류진석을 비롯한 오래된 영화지만 <추격자>의 영민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미저리>의 애니 윌킨스,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 드 라지 등 정신장애 캐릭터는 주로 스릴러나 추 리극, 범죄물에서 등장하며, 대부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다). 문제는 이런 이미지들을 영화나 드라마, 기사들에서 읽고 보는 대중들의 무의식뿐만 아니라 의식의 세계에까지 잠식해 버리며,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더 강화한다는 것에 있다. 이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를 넘어서 사회에서 분리되어야 할 존재, 심지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 여기는 무서운 정서에 깊이 관여해오고 있기도 해 정말 위험하다.
 
영화 <F20>, 대중문화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
지난해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장애계와 시민 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던 영화 <F20>은 그동안 미디어 속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왜곡된 모습이 편향적으로 농축되어 있었다. 이런 장면과 내용들이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로 인해 일상은 물론 사회에서 어떤 시선과 차별을 마주해야 하는지 한 번만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대중문화의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의 무게를 의식했더라면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장면과 대사, 상황, 설정들이 이어졌고, 기획 의도와 다른 메시지들이 전달되었다.
 
영화의 제목이 왜 <F20>이었을까?
‘F20’은 정신장애에 대한 국제 질병분류코드 중 조현병 코드다. 의학용어는 개인정보로 인식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할 용어라 한다. 이 용어를 제목으로 썼다? 우리나라처럼 보험가입 시에도 F코드가 하나라도 있으면 가입이 어려울 만큼,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노골 적인 나라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조현병을 정신분열, 심지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범주에서 인식하는 나라의 공영방송에서 말이다. 이유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우려가 앞섰던 이유였다.
 
‘조현병’에 대한 제작진의 인식
영화는 줄곧 아들이 조현병이 있다는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아들이 조현병으로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충격에 빠진 애란의 두려움, 이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친구 경화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점점 더 불안을 넘어 스산한 광기마저 느껴진다. 아들의 조현병이 심해질까, 또 마을 사람들에게 들킬까 극도로 친구 경화를 피하고 경계하는 초기의 상황과 모습은 스릴러물이라는 점과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고 차별이 노골적인 한국 사회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고 공감 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잔혹하게 살해된 고양이 사체가 발견된 이후부터 가 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마을 사람들은 조현병이 있는 유찬을 의심한다. 애란은 아들 도훈을 의심하지만 증거나 정황 없이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받는 유찬을 변호하지 않음으로써 도훈을 지키려 한다. 이웃들은 조현병을 마치 역병처럼, 집값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간주한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이 박힌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들을 이야기해 주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연출과 대사들로만 나열된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에필로그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훼손된 고양이 시체를 두고 주민 중 한 사람이 “그 사람들이 지금은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생기지?”라고 말하자, “누가 알아~ 또 누가 미쳤는지, 아님 미쳐가는 건지….”라고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한 다. 조현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혐오, 폄훼를 보여주자 작정한 듯 쏟아내지만, 이를 사회문제로, 우리의 인식 문제로 환기시켜주는 누군가의 등장이나 대사, 상황들이 전혀 전개되지 않는다. 제작진이 애란의 “미친 게 죄다”라는 대사에 동의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더 심각한 것은 결국 애란 역시 조현병 환자가 되고, 친구 경화를 살해했으며 아들 도훈도 살해할뻔 했다는 결말로 치닫는 전개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조현병에 대해 제작진이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이처럼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은 생각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고 묻고 싶었다.
 
 
▲ 영화 <F20> 스틸(KBS 제공)
 
 
조현병을 긴장과 갈등의 소재로만 소비한 무례한 영화
나는 이 영화가 조현병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계층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으로 본다. 영화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웃, 변집사와 초코엄마, 그렇지 않은 이웃, 정원을 등장시키고, 이 사이에 서울대생 아들을 둔 애란을 세운다. 변집사와 초코엄마, 그리고 정원까지 도 서울대생인 도훈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인다. 서울대생 아들을 두어서 임대아파트에서도 또 다른 신분을 유지하는 애란, 줄곧 도훈의 조현병이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구도는 조현병에 대한 혐오와 따돌림, 멸시와 차별이 문제라는 시선보다 용인과 이해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경화가 이사를 오면서 조현병의 증상이 약한 도훈의 가족과 증상이 심한 유찬의 가족 사이에 또 하나의 계급 구도가 형성된다. 게다가 도훈과 유찬은 애란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할 때만 음침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불쑥 튀어나왔다가 아무런 행동이나 말없이 사라진다. 또, 궁지에 몰린 애란의 정신이 피폐해지는 과정을 조현병 증상인 환청과 환각으로 묘사하는 부분에까지 이르면, 조현병에 대해 이 영화가 가진 태도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계층의 충돌을, 스릴러물로 풀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현병을 왜곡하는 무례한 묘사들을 활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봄직하지 않나? 결국 제목 <F20>은 상업적 맥락, 관심 끌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 어린 시선을, 영화의 장면 장면이 품은 메시지에서 증명했다.
 
 
놓쳐버린 가장 중요한 것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연출되지 않은 중요한 장면들이 있다. 조현병의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편견과 맞서는 것이다. 물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 차별로 가득한 세상과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전달하고 싶었겠지만, 어설픈 지식과 인식이 의도와는 정반대의 모습과 상황들이 전개되고 연출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도 최소한 조현병이 위험한 병이 아니라, 약물치료가 동반된다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완치까지도 가능하다는 사실만은 전달했어야 했고, 얼마든지 지역사회에서 비정신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보여줬어야 했다. 이 장면들이 이 영화에 쏟아졌던 비판의 면죄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책임감 없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줄 가치가 있을까?
그동안 방송, 영화, 공연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왜곡과 비하, 폄훼로 인해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확산시킨 것에 대해,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비롯한 장애단체들의 비판은 물론, 방송이나 극장 상영 중지나 금지를 촉구하며, 제작진의 사과와 해당 장면의 삭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시의성 있는 적극적인 대응을 해왔다. 그 결과, <F20>에 대해서는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장애계의 요구였던, 영화 상영 중단과 방송 보류,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은 들을 수 있었으나, ‘wavve'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중단 요청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2> 역시 영화 상영 즉각 중지뿐만이 아니라, 문제 장면 삭제, 제작진의 사과 및 면담을 요구했지만, 제작사 측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이해를 부탁한다”고만 답할 뿐, 요구들에 대해 어떤 조치도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예술이나 영화, 미디어 콘텐츠 등 문화 예술 창작물의 문제나 요구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규탄하지만, 거의 창작자들의 편을 들어주며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에는 늘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창작에서의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때문이다. 물론 창작과 언론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할 가치이지만, ‘책임지지 않는 표현, 책임을 망각해버린 표현까지 자유를 존중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개중에는 책임이 창작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표현은 책임을 지는 한 자유’라는 문장을 어느 글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시대적 소명 차원에서 영화나 방송, 유튜브, SNS 등 대중문화를 이끄는 창작가나 언론인들이 곱씹어보아야 할 문장이 아닐까?
 
2018년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 결과, 응답자의 60%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험한 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이런 인식은 방송, 영화 등 미디어와 언론의 기사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장애, 특히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대중매체와 언론의 창작의 자유,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존중이 가끔 존중이 아니라 이 문제가 계속 재생산되고 반복되도록 방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임.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제시한 ‘정신장애보도, 미디어 가이드라인 2.0’을 소개해 본다.
1. 인격장애와 정신질환을 묶어서 보도하지 않는다.
2. 정신질환과 범죄와의 인과관계를 팩트체크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3. 정신장애에 관한 정확한 의학적 용어와 사실을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확인하고 해당 내용에 따라 당사자나 단체의 의견을 반영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4. 보도제목에 정신장애에 대한 공포, 불안, 혐오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지 않는다.
5. 보도내용에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이미지, 영상, 음향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성자글. 백수정/대중문화 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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