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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어디에 버리지?

박 기자의 함께걸음-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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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숙사나 원룸촌에서는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기숙사에 살 때 매일 청소원이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못해 넘쳐서 바닥에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쓰레기들을 치우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자취를 할 때는 기숙사처럼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는 곳에 버리지 않고 특정한 곳에 버렸어요.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 그 곳은 ‘전봇대 밑’입니다. 자취했던 원룸에서 나와 10걸음 정도만 걸으면 전봇대가 하나 있는데, 그 전봇대 밑에는 항상 많은 쓰레기가 있거든요.
 
원룸촌에 사는 대학생들이 대부분 그곳에 쓰레기를 버렸고,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보면 그곳이 깔끔하게 비워져 있어서 매일매일 쓰레기차가 와서 수거해 가는 걸로 이해했어요.
 
그렇게 ‘학습된’ 쓰레기 버리는 방식이 모든 지역에 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처음에 서울에 와서 살면서도 저는 당연히 대학생 때처럼 쓰레기를 버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건물을 나와서 왼쪽으로 몇 보만 걸으면 전봇대가 하나 나오고, 그곳을 몇 번 지나면서 쓰레기가 모여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전봇대 밑’에 쓰레기를 버렸지요.
 
하루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그 전봇대 쪽으로 갔는데,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서 다음날 쓰레기차가 올 거라는 걸 감안해보더라도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 정말 깔끔한 사람들인가 생각하면서 ‘오늘은 내가 1등으로 쓰레기를 버렸구나’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우리집 건물 입구에 ‘계도문’이 걸렸습니다.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이 지정된 곳이 아닌 장소에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민원이 계속 접수되었다고, 쓰레기를 지정된 요일과 지정된 장소에 버리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도문에는 쓰레기를 무슨 요일에, 몇 시 이후에 버려야 하는지 적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계도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서 신고대상이 다름아닌 저라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지만,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요일과 시간, 그리고 장소까지 다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는 화, 목, 일요일 저녁 7시 이후에 버려야 되는데, 제가 전봇대 밑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갔던 요일은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는 요일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거긴 우리집 주민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집 건물 입구 바로 앞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인데, 꼭 ‘전봇대 밑’이 아니어도 그냥 건물 입구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지정할 수 있는 거란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쓰레기 버리는 요령을 알게 되어서 지정된 요일과 시간에 성실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특히 정보접근에 취약할 수 있는 장애인이 새로운 집에 입주를 할 경우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같은 ‘규칙’을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생 때 매일매일 같은 장소에, 아무런 시간 제한없이 쓰레기를 버리며 학습된 게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젠 새로운 지역으로 가게 되면 그 지역에서 어떤 규칙이나 지침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도 과태료를 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런 부분에 대해 장애인도 제대로 ‘알 권리’가 앞으로 충분히 보장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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