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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걷는 길

시민을 옹호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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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옹호활동가 양성교육을 이수하고 짝꿍 매칭만이 남아 있었다. 장애 당사자들과 무작위로사전 미팅을 했던 터라 그중에서 최종적으로 누가 나의 짝이 될까 기대와 긴장감이 들었다. 매칭된 짝꿍과 사전 만남의 날, 조심스러운 마음이 커졌던 게 생각난다. 어머니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짝꿍에게서 경계하는 마음이 많이 느껴져 기대됐던 마음보다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 나갔다. 스물여섯 아가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초조해졌다.
 
어머니와 조율한 날짜에 맞춰 나갔던 6월 22일 첫 만남의 날. 본격적인 여름이 목전에 있어 햇볕이 뜨겁고 습도가 높았지만, 짝꿍의 기분은 맑아 보였다.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으러 짝꿍 집 근처 맥도날드로 갔다. 에어컨 바람에 열을 식히며 키오스크에서 짝꿍에게 주도권을 주고 각자 먹을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어머니와는 간단히 인사 나누고 헤어지고 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 짝꿍을 바라보다가 인증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렌즈에 눈을 잘 맞추도록 안내하고 짝꿍이 잘 나올 때까지 연속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러 차례 만에 성공해서 이번에는 각자 먹고 있던 음료로 짠! 하며 찍어 보자고 설명했다. 대답은 자신 있게 알겠다고 했지만, 건배는 0.01초 정도로 하는 둥 하고 바로 마셔, 나만 컵을 내민 장면이 찍히게 되어 웃음이 나왔다. 배가 차 보이지는 않았는데 감자튀김을 조금 남기길래 물어보니 아빠에게 갖다 드린다 했다. 효심이랄까, 그 행동을 보자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하며 짝꿍이 애용하는 다이소로 갔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며 종이를 사기 위함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입술 발라야 해”하고는 곧장 화장품 판매대에 섰다. 비치돼 있는 거울도 보지 않고 새빨간 립스틱을 마구 바르는 걸 보니 어리둥절했다. 예쁜 걸 좋아하는 마음은 같은 거구나 생각도 들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그날 하루 짝꿍에게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좋아요’였는데, 사전 만남 때 들었던 걱정과 달리 친근하고 적극적으로 임해서 한결 안심되었다. 하지만 습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열의보다 체력이 금방 지치는 걸 보고 걱정되고 난감하기도 했다. 갑자기 너무 힘들어해서 가까운 은행에 들어가 쉬었는데 그사이 아버지께 전화 걸어 “힘들다고 빨리 데리러 오라”고도 했다. 다음 만남에는 짝꿍의 열정대로 다 맞춰주기보다 조금 느긋하게 해야겠다 다짐도 했다.
 
무더위가 물러서면 만나자고 해야지 때를 보고 있었는데 짝꿍이 다니고 있는 복지관 푸르메아카데미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자기가 좋아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는’ 하루였던 것 같은데 나를 지목해준 것에 뭉클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렸다. 만나서는 보고싶었다고 꼬옥 안아 줬는데 짝꿍도 보고 싶었다고 화답해주었다. 9월 21일 수요일. 그러고 보니 짝꿍은 늘 수요일의 여인이었다.
 
 
짝꿍 집 앞에서 복지관 선생님과 짝꿍, 나 이렇게 셋이 만나 근처의 작은 카페로 이동했다. 적어온 계획서를 꺼내 보며 복지관 선생님과 오늘 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와 선생님이 요청한 음료를 메모하고 준비해 온 자신의 명함도 꺼내 보였다. 계산대에 가서 사장님께 세 명의 메뉴를 하나씩 말하고 복지관 선생님이 건네준 카드로 직접 결제도 했다. 명함도 툭 건네던데 복지관 선생님이 옆에 서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짝꿍이 이 가게를 좋아하는 이유는 빵이랑 쿠키가 맛있어서라고 한다.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쿠키를 먹으니 이해가 됐다. 집이랑 가까워 엄마랑 자주 온다고도 했다. 이후에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코인노래방으로 이동했다. 동요 메들리를 하고 ‘어머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손뼉도 쳐 줬다. 그 노래를 같이 부르자며 또 누르길래 어색하지만 따라 불렀다. 복지관 선생님이 짝꿍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디테일을 배울 수 있어 참 좋았다. 진작 이런 만남이 선행되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은 10월 19일이었다. 짝꿍 집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와 만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오랜만이에요!”라며 말하고 곧장 내 손도 먼저 잡았다. 9월에 만나고 그렇게 오래간만인가 싶었는데 짝꿍 입에서 나온 그 말이 퍽 신선하게 다가왔다. “○○ 씨 사진 찍어줄게요.” 하면 바로 눈을 맞추고 브이하며 포즈를 취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있던 가게에 짱구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고는 멈추더니 자기가 좋아한다며 브이하며 적극적으로 촬영 요청도 했다. 그날 들른 상점들에서 내가 내어준 카드로 결제도 잘하고 시크한 목소리로 “영수증 주세요.” 하는 것도 보니 괜히 흐뭇했다. 계속 결제하고 싶어 해서 그날 갔던 상점만 모두 네 곳이다. 계산하는 것에 부쩍 자신감이 붙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걷다 보니 가로수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막 물들기 시작한 예쁜 잎과 짝꿍을 찍어주고 싶어 나무 앞에 서보라고 했더니 브이하며 바로 호응해줬다.
 
 
그리고 11월 9일. 우리는 롯데월드로 갔다. 매칭된 처음부터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었는데, 그래서인지 여느 만남 때보다 많이 들떠 보였다. 범퍼카랑 회전목마처럼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 3개 정도 타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있었는데 짝꿍은 회전목마도 무섭다며 거부했다. 운전하고 싶다고 범퍼카만 타기를 원했고 그럼 범퍼카를 한두 번 더 타도 좋다고 안내했는데 거절했다. 범퍼카를 타기 위해 40분 넘게 줄을 섰는 데 탈 때, 직원이 복지카드가 있으면 장애인은 매직패스처럼 줄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다고 했다. 매표 직원이 진작 안내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타고 싶은 마음 하나로 사람들 틈에서 힘들게 버틴 짝꿍을 생각하니 안쓰럽고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도 핸들을 빙글빙글 돌리며 마냥 즐거워한 짝꿍을 생각하고만족하기로 했다. 짝꿍을 더 예쁘게 사진 찍어주려다, 산 아이스크림을 내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그리곤 자기 카드 있다며 있다 사주겠다고 말하길래 “정말이에요? 진짜요?” 의아해하며 농담으로 넘겼다. 다니는 곳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다 사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자기 카드로 사겠다며 카드를 가리켰을 때, 그것이 처음부터 신용카드가 아니라 복지카드였음을 알게 되었을 땐 우스웠지만 거룩하기도 했다.
 
이날 짝꿍은 만난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많이 놀자고, 저녁때 집에 가자고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리고 내가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도 계속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들뜬 마음만큼 불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았다. 안심시키는 말을 여러 번 해줘도 그치지 못하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동안 짝꿍을 만나면서 한 번도 느끼지못했던 감정이었는데 무력감이 들고 힘든 마음이 올라왔다. 어떻게도 안심되지 않는 짝꿍의 마음이, 내가 더 도울 수 없는 선인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한창 물들었던 단풍도 거의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초여름에서 겨울을 앞둔 지금까지 계절도 흘렀다. 그리고 짝꿍의 시간도 한층 깊어진 것 같다. 이 계절들이 거듭되면 짝꿍 인생의 시간도 더 깊고 멋있어질 거라 믿는다.
 
더불어 나 역시 타인을 보는 깊이가 더 자라난 걸 느낀다. 둘이라고, 여럿이라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여럿이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시민옹호활동을 통해 장애당사자의 어려움을 세밀하게 체험하게 되었고, 그 어머니의 노고와 많은 선생님의 수고까지 아울러 공감하게 되었다. 여럿이라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혼자보다는 훨씬 힘이 줄어들고 모인 힘들이 더 큰 힘이 되는 순간도 느꼈다. 그러기에 함께 걷는 것이 조금 덜 외롭고 힘도 커질 거라 믿는다. 느리더라도, 그 호흡에 맞춰 함께 걸었던, 이 발걸음이 더 소중한 이유이다. 지금, 이 순간 찰나의 걸음이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더 값진 시간으로 다가온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해연/ 옹심이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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