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⑪]아테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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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축구공 하나가 2002 월드컵을 통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꿈과 감동을 안겨 주었던 그 순간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당시 나도 한번 그 자리에 서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어디까지나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생각했다. 나는 1세가 되던 해에 경기로 인하여 시력을 상실하여 시각의 장애를 갖게 되었다. 비록 시각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답답한 실내 공간보다는 밖에 나가 운동하며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시각장애우들 보다는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되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2001년 친구의 권유로 ‘소리를 차는 사람들’이라는 시각장애우 축구 동우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가입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과연 축구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내 자신이 시각장애우이면서도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비록 공에서 소리가 나고 양쪽 벽을 친 상태에서 한다고는 하지만, 빠르게 구르는 공을 발로 차고 뛰며 쫓아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을 차다보면 부딪혀 다치는 것은 물론, 서로의 다리를 걷어차는 경우가 많았다. 전용 경기장이 건립되기 전에는 돼지 저금통에 돌을 넣어 축구를 했던 것이 고작이었기에,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우 전용 축구장은 1999년 송파에 처음 건립되었다. 당시 우리의 수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였다. 세계대회에 2차례 출전을 하였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외국에서는 이미 2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경기장 또한 다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훈련과 지원을 받고 있어 우리와의 수준 차이는 상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매주 1회 이상 모여서 연습을 하고, 국내외 경기를 하며 차츰 실력을 쌓아 나갔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인 동우회였기에 모두들 사비를 털어 경기도 이천, 안양, 인천 등의 먼 곳을 돌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이렇게 땀 흘린 결과 우리는 이번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 출전 티켓을 아시아 대표로 획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 4월 국내 선발전을 거쳐 뽑힌 우리나라 시각장애우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3개월여 간의 합숙 훈련을 받고 있다. 시각장애우 축구는 필드 플레이어 4명과 골키퍼 1명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한다. 골키퍼는 시각장애우가 아닌 비장애우가 보며, 일반 풋살 축구장 규모의 경기장에서 시합을 한다.
장애우들에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그나마 마음껏 공을 차며 뛸 수 있다는 것은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비록 연습 도중 부딪혀 피가 나고 이빨이 부러지며 다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 나가며 자신과의 힘든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투지가 불타오른다. 그만큼 축구는 나를 비롯한 우리 선수들에게 있어 스포츠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장애우 선수들은 일반 선수들처럼 많은 지원과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현재의 장애를 생각하며 좌절하기보다는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별다른 지원이 없는 가운데에도 이번 올림픽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선수도 있고, 아파도 도핑(경기 전 약물검사)에 걸릴까봐 약도 먹지 못한 채 묵묵히 땀을 쏟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합숙 훈련 도중 급성 장염에 걸려 응급실에 간적이 있었다. 그동안 흘린 시간과 땀 또한 우리 팀을 생각하며 도핑 때문에 약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음날 오후 훈련에 참가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하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정말 간절했다. 그러나 지금 무너지면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단체 경기의 특성상 한 선수라도 낙오되면 그 순간부터 팀워크는 흐트러져버린다. 그래서 한 선수라도 낙오되지 않게 하기 위해 코치 선생님과 동료 선수들이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팀원 모두는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훈련에 임하고 있다.
장애우 스포츠에 대해 ‘그들만의 잔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 대표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번 대회에 출전을 한다. 또한 꿈도 있다. 그러기에 35~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도, 주변의 소음으로 공소리를 듣지 못하는 환경적 악조건과 훈련 장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에 임해왔다.
오는 9월 18일. 아테네에서 우리는 첫 상대인 브라질과 경기를 가진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 참가한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아르헨티나를 모두 이겨서, 선수라면 누구나 지니고 싶어 하는, 금메달의 꿈을 이룰 것이다. 또한 이번 아테네 올림픽으로 작은 밀알이 되어 장애우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하고자하는 노력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었듯이 우리 장애우들도 모든 일에 열정과 인내를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이번 아테네 올림픽을 통하여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우 행사들이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잔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날을 위해 화이팅을 외치며 공을 차고 달릴 것이다. 이 순간에도 아니 앞으로도 열심히, 묵묵히 뛸 것이다.
글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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