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⑫]“장애는 제가 처한 상황이지, 저의 장애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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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리사랍니다. 7년이라는 시간을 주방에서 보낸 베테랑이죠.
한여름에는 천장이 뚫어질 정도로 가마솥 열기가 대단해서 오히려 더위가 무색할 정도죠. 하지만 저는 그 뜨거운 더위도 잊을만큼 가마솥 열기에 익숙했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그 날 따라 유난히 몸이 무겁고 기운이 없으며 가슴도 답답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여느 일상과 같이 보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통증이 찾아왔는데, 어느 곳이 어떻게 아픈지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일단 몸에 힘이 없어 서 있는 게 힘들었는데, 마치 노인 분이 근력이 없어 계단을 무서워하는 힘든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죠. 예전부터 신장이 안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신장질환을 단순히 몸이 붓고 소변도 안나오는 그런 흔한 증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죠. 당시 저는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느껴서 금연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제 신장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결과를 살펴보는 의사의 표정은 제 기대와는 사뭇 다른, 걱정어린 표정이었습니다. 의사는 혈액형을 다시 확인하며 내게 형제가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투석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빨리. 저는 그 날 바로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투석’이라… 그 말조차 전 난생 처음 들었죠. 겁이 더럭 나더라고요. 투석실에 가보니 사람들이 누워서 팔에 주사기를 꽂고 있었습니다. 한눈에도 편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죠.
투석을 마친 후, 잠깐의 교육을 받고 집에 가는데 자꾸만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가판대에 들러 담배와 라이터를 샀죠.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2개월간의 금연을 뒤로 한 채, 담배를 물었습니다.
그해 여름이 막바지에 이룰 무렵, 저는 배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 한창 우울했습니다. 배에 달려있는 관도 낯설었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만 하는 투석의 과정이 너무 싫었습니다. 한달 동안 받은 교육으로 이젠 혼자서 ‘투석’이란 놈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퇴원을 하던 날, 식구들과 점심을 먹는데 자꾸 숟가락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어진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밥상에는 신장환자들이 조심해야할 음식들만 제 눈 앞에 있더군요. 하는 수 없이 밥과 싱거운 음식 한 두 개로만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 약을 정리해보니 먹어야 할 약의 갯수도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약들은 앞으로 제가 평생을 먹어야 할 약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중엔 주사기도 있었죠. 하루에 4번씩 하는 투석… 한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0분 남짓이만, 저는 이제 주사를 직접 제 몸에 놔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신장장애를 갖게 된 후 저는 겨울이 더 좋아졌습니다. 왜냐하면 겨울은 샤워를 자주 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씻을 때 물과 접촉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감염의 위험성이 높아져 아무래도 샤워를 할 때는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요. 샤워 후 소독도 필수랍니다.
요즘 저는 이렇게 생활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직 결혼도 안했고 한참 일할 나이인데 투석 때문에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 제자신이 한심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요리에 관한 일들이죠. 제가 요리 경력은 어느 정도 되는 편이라서 면접까지는 항상 수월합니다. 제가 인상도 좋고, 겉보기에는 건장해 보여서 점수를 많이 따지만, 신장장애를 얘기하면 대개는 그 때부터 인상 바뀌죠. 하지만 이제 저는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직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석 때문에 제 생활은 메말라버렸습니다. 투석만 제 때하면 일할 수 있는데, 저를 고용해주는 사람들은 없더라고요.
사실 신장장애우들은 겉으로 보기엔 비장애우들과는 다를게 없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투석’이 필수이기 때문에 직업을 구할때는 밝힐 수 밖에 없습니다. 투석은 무균상태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조명이 밝고 공기의 유동이 없는, 사람들이 없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세심하게 닦고 투석을 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20분내에 끝나지만 이러한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러한 공간이 있는 직장은 별로 없죠. 그리고 이런 장소를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투석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투석을 시작한지 불과 일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너무나 지쳐 이미 오랫동안 투석생활을 해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는 몸에 가벼운 이상이 있어도 어느 정도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저도 남들처럼 직장생활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불과 일년 전, 신장장애를 받아들일때 보다 지금은 몸도 많이 가벼워졌고 무엇보다 의욕도 많이 생겼습니다. 뭔가를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저를 치켜세우고 싶습니다. 장애는 제가 처한 상황인 거지, 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투석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다시 찾을 겁니다. 장애가 저에게 가져다 준 것은 아픔만이 아니란 걸 기억하면서…
글 어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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