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눈으로]현대판 노예를 방치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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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 사는 이씨는 자신의 나이를 잘 몰랐다.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여서 처음 만날 당시 외모로 나이를 짐작해야 했고, 가족이 있는지 어디 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씨가 가죽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사장과 함께 살게 된지는 13년이 되었고, 처음 이씨를 가죽공장 사장에게 넘긴 호프집 사장은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면 된다’고 했다. 13년간 가죽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면서 이씨는 그저 먹여주는 밥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고, 이씨가 도벽이 있을것 이라는 추측 때문에 몇 년간은 사장은 밤마다 바깥에서 방문을 잠궜다. 낮에는 공장에 나와 일하고, 밤에는 방안에 갇혀 지낸 이씨는 가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고, 우리가 갔을 때는 이씨의 머리가 세군데나 찢어져 있었다.
이런 이씨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애완견이나 짐짝처럼 팔려다닌 이유는 이씨가 바로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이씨를 봐온 수많은 사람들은 공장사장이 이씨의 ‘보호자’라 생각했고, 말썽을 부리니 방안에 몇 년간 가둘 수도 있고, 보호자이니 일을 시켜도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보호자이니 사랑의 매란 이름으로 이씨의 머리가 터지도록 때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13년, 아니 호프집까지 하면 십수년이 흘렀고, 이씨는 이제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이씨는 신(新)노예가 되어 공장사장의 ‘보호아래’의 살았던 것이다.
최근 비슷한 일들이 또 언론에 보도됐다. 길잃은 10대 청각장애우를 노예로 부린 사람이 잡혔는데, 그는 25년간 이 사람을 연탄가게에서 운반 등을 시키고,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청각장애우를 25년간이나 데리고 무임금의 노동을 시키면서도 그 문제가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주변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연탄가게 주인의 ‘보호아래’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어느 누가 봐도 ‘갈곳 없는 장애우를 자식같이 보호한다는 허울 속에 현대판 노예를 부리고 있었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한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거나 무임금의 강제노역을 시켜서는 안된다. 폭행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거이전의 자유, 누구에게나 자기결정권이 있음은 물론이다. 너무 당연한 이런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나는 매월 민망하게 쓰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엔 당연한 상식이 비껴가는 외국인노동자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성남에 사는 이씨의 주거문제를 긴급히 해결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매우 어려웠다. 이런 긴급구제 상황에 갈 수 있는 쉼터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무조건 시설에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괜찮은 그룹홈 같은 곳에 당장 들어갈 수도 없다. 주민등록을 부활시키고 수급권 신청을 한다고 해도 임대아파트 입주는 그림의 떡이다.
이씨가 십수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 되었을때 결국 이씨에게 남은 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과 따뜻한 배려가 아닌 쇼핑백 하나의 짐뿐이었다. 지금은 어찌 어찌해서 임시거처를 구했으나 이씨는 결국 시설이냐, 노숙이냐의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노예로 부린 공장사장과, 긴급구제조차 제대로 못하고 방치하는 정부, 이들은 분명 이씨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글 김정하(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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