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자유반디학교를 시작하며 > 도민 기자단


[창을 닫으며] 자유반디학교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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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반디학교는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는 일산지역 부모들이 만든 학교이며 현재 11명의 학생들(초등 5명, 중등 6명)이 필자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유반디학교의 교사가 된 지 한달 반이 되었다. 82년 미국에서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꿈꿔왔던 “학교”를 시작하는데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다. 자유반디학교에는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 발달지체가 있는 아이, 그리고 병원에서 유사자폐라 진단한 아이들이 특별한 장애가 없는 8명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자유반디학교의 아이들은 아침에 자전거로 학교에 온다. 나는 문간에서 아이들을 악수와 담소로 맞이하면서 그 아이의 기질과 기분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수업은 아침을 여는 시를 바른 자세로 서서 낭송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수업의 시작과 끝에 이 시를 낭송한다.


-아침을 여는 시-

확고하게 세상에 선다.

확신을 갖고 나의 길을 가며

내 존재에 깊은 곳에 사랑을 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희망을 안고

내 생각에 자신감을 새긴다.

 

자유반디학교의 수업은 같은 주제를 3-5주 계속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수업의 주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통해 바라본 한국의 근대사” 였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 분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만화 그리기의 기본을 나와 함께 2주 동안 공부하였다. 3주 째가 되었을 때 인터뷰 내용들 중에 흥미로운 부분을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였고 각자가 4-5개의 작품을 완성하여 학교에 전시하였다. 지금 우리는 “학교를 안전하고 아름답고 흥미롭게 만들기”란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무 울타리, 동물들의 집, 허브 화단, 연못 등을 만들고 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심청전”을 인형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인형 만들기와 인형극 대본 쓰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 모든 작업에 교사인 나도 함께 참여하며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 화요일에는 풍물 선생님이 오셔서 한시간 동안 아이들을 지도해 주신다. 지난 한달 동안 아이들은 휘모리, 삼채, 굿거리 등의 장단을 입장단으로 배웠다. 또 이 번 학기에는 북을 배우고 있다. 원으로 둘러앉아 힘차게 북을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금요일 오후에는 수공예 선생님이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에게 수공예를 가르치신다. 지금 아이들은 한지와 나무 가지를 이용한 지등(燈) 만들기를 하고 있다.


교사는 아이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행동과 말로 인해서 아이들의 인생에 잘못 개입할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수업에 임하려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유반디학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지내는 것 또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학부모의 글이 게시판에 올려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아이와 눈을 맞추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7년 동안을 입을 열기를 기다렸고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과 따돌림에 익숙해지는데 15년을 보냈고 16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말과 행동이 오해를 살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반디학교를 다니며 나날이 밝아지는 모습에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단지 그들의 닫힌 세계를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뿐 자칫 무례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무독성의 아주 선한 아이들입니다.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이면 될 일을 저희는 16년간 가슴을 조이며 살아 왔습니다.

저는 요즘 생전 먹어보지 않던 보약도 먹어보고 비타민도 악착같이 챙깁니다. 조금만 이상해도 호들갑을 떨며 병원에 갑니다. 한없이 약하고 순진한 이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습니다. 항상 끝없는 질문과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인내를 가지고 언제나 친절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반디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친절함을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한없이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제가 가진 재능을 학교에 그리고 선하게 자랄 아이들에게 갚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중한 업무와 잦은 출장 때문에 자주 할 순 없지만 학교의 정신과 이상에만 맞는다면 한 달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 토요일이나 금요일 저녁 아이들과 멀티미디어, 영화, 음악, 예술, 분야의 활동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자유반디학교 같은 단체들이 이 땅에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줄인다.


글 김광선(자유반디학교 교사)


 

작성자김광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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