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두려움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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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의 가진 자, 못 가진 자 편가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 은행은 새 통장을 만들 때 기본으로 5만원 이상을 예금해야 통장을 만들어 주고, 매월 통장 평균 잔액이 10만원을 유지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2천 원의 거래유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은행은 예금의 3개월간 평균 잔액이 20만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자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런 은행 방침을 다른 은행들도 곧 뒤따라 도입해서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은행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저소득층을 차별하는 야만적인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그 이유를 은행 수익성 개선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서 이자 대신 은행에 오히려 수수료를 주고, 맡긴 돈에 대한 이자를 전혀 못 받는다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해봤을까,
허탈하지만 이게 바로 우려했던 신자유시대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은행의 행태는 사기업인 은행들이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등을 돌려버린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상식이지만 이렇게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경쟁력으로 포장되는 이익 창출이 최고의 가치다. 따라서 은행을 포함한 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신자유시대의 핵심이기 때문에 정부도 기업이 심한 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기업의 행태에 간섭하고 제재할 명분이 없다.
은행이 소액 예금에 대해 이자를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필요이상으로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서 한 가지 불길한 예측을 해보자. 장애우로 등록하면 정부가 주는 대표적인 혜택이 전화요금 반액 할인이다. 지금 장애우들은 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통신의 전화요금 할인을 매우 당연한 혜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만약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한국통신이 이른 시일 내에 완전 민영화된다면, 그래서 사기업화 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사기업이 된 한국통신이 은행들처럼 경쟁력과 수익성 확보를 내세워 전화요금 할인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나선다면 장애우들의 대응 논리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궁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렇듯 우리는 자비와 온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냉정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은행의 야만적인 조치로 이제 저소득 장애우들이 한 푼 두 푼 저축해 재산을 모은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나아가 흔히 말하는 20대 80의 구조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80 중에서도 맨 마지막을 형성하고 있는 저소득 장애우들의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면 장애우 문제의 태반이 저소득 장애우 문제인데, 그나마 저소득 장애우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박탈당하지 않고, 작은 진보지만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생각나는 대로 언급해 보면, 장애우들은 결국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우들이 세력화를 이루고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발언하며, 선거 때는 장애우 문제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정치인을 선출해 정부와 국회를 구성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정치인을 움직여 현존하는 세계 장애우 관련 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법인 ADA를 제정하는 성공한 미국 장애우들의 예를 적극적으로 본받을 만 하다.
하긴 다른 나라와는 정 반대로 도둑놈이 장애우 대표라고 앉아 있으며, 10년이 넘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기가 막힌 우리 나라 현실에서는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일차적인 요건인 장애우들의 세력화가 도무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장애우들의 나은 미래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해보면 다른 것은 제쳐두고 두려움을 가지자는 것이다. 생존에 위기가 오면 살길을 찾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은행의 저소득층 차별처럼, 앞으로 장애우 삶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 그러나 평소 안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긍정적인 의미로의 두려움이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길 기대한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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