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비극의 주인공인 여성장애우 > 대학생 기자단


여전히 비극의 주인공인 여성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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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다. 눈부신 봄 햇살의 유혹아래 거리거리마다 연인들의 상큼한 모습에 시샘이 이는 계절이다. 밀레니엄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올 봄에는 유난히도 결혼하는 커플이 많아 IMF로 허덕이던 웨딩업계가 모처럼만에 호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봄 햇살이 좋거나 말거나 외출을 하기 어려운 장애우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는 대단히 적고 더더군다나 그 이성과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결혼에까지 이르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외출이 비교적 수월한 장애우라 하더라도 외형적인 매력과 경제적인 능력이 상당히 좌우되는 요즘 세상에서 이성과의 사귐이나 결혼에 있어 매우 열악한 위치에 놓여있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장애우 임신, 육아 지원시스템 시급

  남성장애우 중 일부는 그것도 극히 제약된 상태이지만 쌓인 성적욕구를 매춘이라는 배출구를 통해 쏟아낼 수단이나마 갖고 있지만 여성장애우의 경우는 이러한 욕구를 대체할만한 아무런 수단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여성장애우의 부모, 형제들은 어차피 결혼은 틀린 것으로 전제하고 평생 순결을 간직한 채 여성장애우들 스스로도 이성과의 교제나 결혼은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념이 더욱 결혼을 어려운 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의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해도 여성장애우의 겨우 임신과 출산이라는 벽 앞에서 고민하게 된다. 여성장애우 스스로나 주위사람들은 여성장애우의 임신과 출산, 육아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터부를 가지고 있다. 임신 과정이나 출산 후 나타날 신체적인 후유증, 유전이나 아이의 건강에 대한 우려, 아이가 엄마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양육할 능력도 없으면서"라는 주위의 눈총, 어느 것 하나 고민 아닌 것이 없다. 여성장애우의 임신, 출산, 육아를 보조해 줄 국가의 시스템까지는 바라지 않을지언정 이러한 고민을 덜어 줄 상담기관이라도 있다면 임신과 출산 육아의 부담감을 상당히 덜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기혼 여성장애우 몇 명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의 사례가 여러 고민 앞에 놓여있는 여성들에게 어떤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만나본 기혼장애우 여성들도 예외 없이 임신을 둘러싸고 적잖은 스트레스에 직면했다. 하지만 당당히 맞서 이겨냈고 아이가 그 존재자체로 주는 기쁨으로도 모든 고통을 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뇌성마비 장애우 여성 K씨는 40대의 노산인데다 장애가 심한 편이라 임신으로 인한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다. 임신하고 달수가 차 후반기부터 허리가 심하게 아팠고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일일이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K씨를 정작 힘들게 한 것은 입원한 병원이 국내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갖춘 병원이었음에도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은커녕 화장실과 좌변기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거의 씨름하다시피 업혀 화장실을 다니다보니 가뜩이나 약해진 신체에 더욱 무리가 갔다. K씨는 최고시설의 병원에 조차도 장애우 출산에 관한 기록이나 자료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C씨(소아마비)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이이 둘을 두었는데 3년 터울로 아이를 낳아 6년 동안 아이 키우는 일에 온통 힘을 쏟아 우울증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하나도 어려운 판에 둘을 키우려나 힘든 고비가 많았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서 엄마를 잘 도와주는 입장이 되자 이제는 오히려 아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든든하다고 한다. 다행이 아이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자라줬다.


  C씨의 아이들을 보면 장애우 부모의 자녀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율성 있는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부분에서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환경이 저절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남은 다른 애들에 비해 의젓해 보였다.


  부모의 장애에 대해 실망할 거라는 고민도 기우이다. C씨는 남들로부터 엄마가 장애우여서 아이들이 어떻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자기관리를 더욱 철저히 했고 자녀들과의 관계가 소원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들은 엄마가 사는 모습 속에서 엄마의 장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장남이 될 수 있으면 엄마의 장애에 대해서 말하지도 묻지도 않는다. 둘째 아이는 아파트내 슈퍼마켓에 계단이 많아 엄마가 불편하다며 커서 슈퍼마켓의 계단을 없앨 거라고 해 엄마를 감격시키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누구 못지 않게 열성적이다. C씨 가정은 그다지 넉넉지 않지만 아이들 교육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 미국에 친척들이 많이 나가 있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열린 세상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유학을 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장애 때문에 학부모 활동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매 학기초가 되면 선생님께 편지로 자신이 장애우임을 알려 양해를 먼저 구하고는 하는데 선생님이 아이에게 각별히 관심을 가져줘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부천에서 안마사일을 하고 있는 L씨(시각장애)의 교육방법은 특이하다. 아이들을 기르는 방법으로 촉각과 청력을 활용해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져가며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도 어떤 장난을 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으며 우는 소리에도 어디가 아픈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학과 공부는 사람들을 붙잡고 교과서를 녹음하고 직접 점역한 자료로 기초적인 수학이나 영어교육을 시켰다. 아이들의 교과서에는 아예 과목 구분이 가능하게 표시를 했다.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일은 절대 대리인을 시키는 법이 없이 유치원도 직접 알아봤고 학부모회 활동도 빠짐없이 참석하곤 했다. 성적표를 받아오면 아이들이 직접 들고 읽어줬는데 빼거나 더하는 법이 없었다.


  L씨는 장남을 현재 카이스트에서 컴퓨터사이언스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L씨는 자녀교육에 온통 시간을 보냈음에도 자기개발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녀는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방송대학 교육학과 4학년 재학중이다.


  C씨(소아마비)는 결혼이란 것과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의미 깊은 말을 해 주었다. "여성장애우들에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보라고 하고 싶다. 결혼을 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단면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인생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앞서 소개한 여성장애우들이 경우는 비교적 순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장애우 가정이 적지 않다. 장애우의 결혼, 임신, 육아 문제는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배려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최근 서강대에서 장애우 산모 봉사대가 발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국가나 민간 주도의 장애우 산모 시스템의 확충이 시급하다.

 

 

장애우 독립 영화의 과거와 현재

  4월 중순 동숭아트홀에서 개막된 여성 영화제에 김진열 씨가 연출한 다큐영화" 여성장애우 김진옥 씨의 결혼이야기"가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장애우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지금까지는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 혹은 여성문제를 주로 다뤘던데 비해 최근에는 장애우를 소재로 한 독립영화가 종종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장애우 독립영화의 효시로는 지난 94년에서 95년초 사이에 박기복 씨가 제작한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1, 2, 3"을 꼽을 수 있다. 거리의 부랑아, 앵벌이, 뇌성마비 장애우들의 소외를 다룬 이 작품은 기획ㆍ촬영ㆍ편집ㆍ나레이션 등 모든 작업이 박 감독 손에서 이루어져 95년 5월 푸른 영상에서 100분짜리 비디오로 출시했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현실을 다룬 평범한 다큐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충분히 충격스럽고 기념비스러운 작품으로 기억할 만하다.


  당시 우리 사회는 당장 선진국이라도 될 듯이 들 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패와 부조리로 썩어 들어가는 환부를 억지로 눌러 감추려했던 문민정부의 독단 속에서 조장된 신기루에 불과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박기복 씨는 우리사회의 감추고 싶은 아픔을 여실히 고발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이 충분히 기념비스러운 이유는 가장 소외받고 억압받는 이들을 그들이 입장에서 다룬 거의 최초의 작업이라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박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전격 구속되었다. 음반 여상물 제작법 위반이 그 이유였지만 애서 감추고 싶은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외압의 냄새가 느껴진다.
우리는 "전사가...."가 발표되던 95년12월에는 인천시 연수구 아암도 노점상 철거과정에서 장애우 이덕인 씨가 골리앗에 매달려 있다가 밤낮없이 퍼붓는 물대포에 바다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대로 필름에 담겨져 "마른잎 다시 살아나"라는 제목의 독립영화로 만들어졌다.


  98년에는 앞서 두 작품과는 달리 서정적인 수묵화의 영상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가 발표됐다. 제 4회 서울 단편 영화제 예술공헌상 수상작이기도 한 스케이트는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경쟁부분에 초청되는 성과를 올렸고 다시 9월에는 동숭시네마텍에서 국내 최초로 단편영화 유료상영 작품으로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조은령 감독은 독립영화의 메카 뉴욕대학 유학시절 한인교회에서 만난 뇌성마비 친구와의 인연을 계기로 줄곧 장애우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박기복 씨의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2"는 의외의 곳에서 상영되었다. 독립예술제 "오프 시어터미아리 오몽"(서울 미아리 예술극장 활인). 여성인권밴드"마고"를 비롯한 인디밴드들의 공연, 연극, 독립영화, 무용, 퍼포먼스 등 모든 종류의 공연을 종일 공연 형식으로 진행해 젊은층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축제였다.


  소위 신세대 매니아들이 주 관객층일 법한 자리에 박기복 씨의 "우리는...."이 올려진 것은 더욱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IMF라는 예견된 암초에 좌초된 소외계층의 상황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란 것을 젊은 세대에 고발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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