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성폭력, 처벌 강화로 끊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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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우 성폭력 공동 대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여성장애우들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고에 더해 성폭력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않았다. 이제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여성장애우 성폭력 근절과 대책을 위한 공청회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을 중계한다.
최근 밝혀진 강릉 정신지체인 K양 성폭력사건은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사건처리에 있어서도 몇 푼 보상으로 무마되어 여성장애우 성폭력의 현주소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여성장애우단체를 비롯,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로부터 여성장애우 성폭력에 대한 연대를 촉발시켰고 32개 단체가 연합한 ‘정신지체 여성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결성을 가져왔다.
지난 4월 18일 공대위는 한국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대통령직속여성특별위원회 후원으로 여성장애우 성폭력 근절과 대책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 강릉 K양 사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신혜수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는 강릉 K씨 사건 등 정신지체 여성 성폭력 사례 발표를 시작으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이예자 상임대표가 ‘여성장애우 성폭력 피해 실태 및 정책적 대안’을, 조창영 변호사(장애우인권센터 원장)가 ‘장애우 성폭력에 대한 법률적 해결방안’을 발제한 데 이어 이상덕 여성특별위원회 정책조정관과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강릉여성의전화 최은경 간사는 K양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K(21)양 사건은 자칫 묻혀버릴 뻔했으나 임신 중이던 K양에게 동네 주민들이 도움을 주려는 과정에서 파렴치한 사건 전모가 밝혀졌고 올 1월 4일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K양은 IQ51(초등학교 1, 2학년)의 정신지체인으로 7년간 5명 이상의 마을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그중 죄질이 나쁜 H씨를 주민들이 고소·고발한 결과 H씨와 정신지체인인 K양 부모 사이에 2백만 원의 합의로 고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가해자인 H씨는 그간 K양에게 우산같은 물품으로 혹은 3∼4천 원의 푼돈으로 꾀어 파렴치한 행위를 했고 그도 모자라 그 사실을 주민들에게 자랑해 제2, 제3의 가해자를 만들었다. H씨는 근래에는 피해자 가족과 주민들에게 협박까지 자행했지만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납득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K양을 조사하면서 묻는 질문에 대답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대답을 안 한다고 소리를 질렀으며 K양의 아버지가 H씨와 합의문제로 다투자 귀찮다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주민을 만류하기까지 했다. 결국 법원에서는 형법상 K양이 심신미약자라 하더라도 가해자의 위계 또는 위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범죄가 명백함에도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셈이다.
이어 이예자(한국여성장애우연합 상임대표) 씨는 ‘여성장애우 성폭력 피해 실태 및 정책적 대안’ 발제를 통해 여성장애우 성폭력의 실태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이예자 회장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기타 여러 단체의 여성장애우 성폭력 상담기록 40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장애우 성폭력은 연령비율로는 20대 미만이 대부분으로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성폭력 상담소 상담건수 46.4%) 증가 추세와 동일했고 장애유형별로는 정신지체가 25명으로 비율이 가장 높아 인지능력과 연관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유형으로는 강간이 29명으로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것보다 월등히 비율이 높아 여성장애우들이 물리적 폭력 앞에 저항력이 약해 극단적인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가해자는 평소 아는 사람이 37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랐고 발생장소는 피해자의 집, 가해자의 집, 시설 및 학교 등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평소 생활 근거지 등 익숙한 장소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해방법은 과자, 돈, 친분관계를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구타, 폭력 등 강제력을 사용한 경우도 15건이었다. 성폭력 빈도도 대부분 수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40명의 피해자 중 본인이 직접 상담의뢰한 경우는 6명에 불과했고, 의료적 처치가 이루어진 것도 불과 3명으로 여성장애우의 특성을 고려한 의료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가해자가 구속된 경우가 드물고, 합의를 하거나 법을 잘 모르거나 절차가 까다로워 고소에 이르지 못하고 고소를 해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되고 있어 여성장애우에게 법은 정말 먼 곳에 있음을 절감하게 했다.
여성장애 피해자의 경우 신체적으로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공포감, 불안, 우울증, 수치심, 환각, 환청 등을 겪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고 사회적으로는 성행동이나 심리적으로 이상행동이 나타나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예자 회장은 여성장애우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사전 예방차원의 여성장애우 인권운동 ▲여성장애우 성폭력 피해 실태 조사 ▲성폭력 관련법 정비·시행령 조속 마련 ▲의료·법률 지원 등 여성장애우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 ▲피해자 신변보장을 위한 쉼터, 피해자 보호시설 마련 ▲장애우 개개인에 맞는 성교육, 성폭력 예방프로그램 실시 ▲장애우 가족 종사자 교육 실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 등을 제안했다.
조창영 변호사는 ‘여성장애우 성폭력에 대한 법률적 해결방안’에서 K양의 정신능력에 대한 진단서를 구비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강제추행한 자에 대한 처벌’에 의거해 처벌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요하고 그마저도 어렵다면 위계,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아 형법 제302조 ‘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으로라도 처벌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그러나 정신지체인의 경우 사리판단 능력이 없어 증언에 번복 가능성이 많고 피해자임에도 자신이 피해자란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 처리가 어려워 이런 이유로 사례는 많지만 판례는 드문 형편”이라며, “또한 몸에 상해가 없고 목격자가 없는 경우에는 가해자 진술과 피해자 진술 사이에서 수사기관이 자의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신고해야 처벌이 이루어지는 친고죄라는 점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길게 끌어 봤자 망신이라는 이유로 합의로 끝내거나 취하하는 경우도 많은데 K양 사건의 경우 심신미약자냐, 항거불능자냐의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점은 정신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인 상태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정신능력인지 현재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일본 고법의 판례는 심신상실의 여성을 ‘IQ 52, 정신연령 6년 10개월, 생활연령 13년 3개월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현재 형법 305조상으로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간음하였을 때에는 폭행, 협박이라는 수단없이 동의했더라도 처벌이 가능하다.
조창영 변호사는 K양의 경우 경계선 정도의 정신지체로 보아 13세 미만의 정신능력에 해당하므로 제8조가 적용되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어렵다면 몇천 원 푼돈으로 꼬임을 당한 것은 사회통념상 위계로 보아 처벌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했다.
조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정신지체 여성장애우 성폭력 대책 몇 가지를 제시했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행위에 대해서는 고소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신지체 여성에 대한 성폭행의 경우 형법 302조에 의해 처벌하는 것은 수사실무상 어려우므로 고소고발 전에 정신감정을 한 뒤 신체감정서를 첨부하여 성폭력 특별법 위반죄로 고소해야 한다. ▲정신지체인은 의사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조사시 의사표현 보조자나 보조진술자가 입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신지체 여성의 경우 형법 302조 위계, 위력을 보다 넓고 완화되게 해석하도록 하여야 하며 친고죄 조항을 폐지하고 끝까지 수사해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초동수사 단계에서부터 인권단체의 연대 대응이 필요한데, 이번에도 언론기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기소 처리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여성특별위원회 이상덕 정책조정관은 현재 민간단체 대표가 파견되어 교육부 등 6개 부처 여성특별위원회에서 근무중이라고 밝히고 관련 공무원을 대상으로 여성 편견 해소 등의 교육을 예정중이고 복지부는 남녀 평등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상덕 씨는 현재 여성장애우 정책이 전무하고 장애여성 보호시설도 태부족임을 지적하고 여성장애우 문제는 입법지원도 필요하지만 편견해소, 취업, 가정 문제 등에 대해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사전예방을 위해 교육, 홍보 활동이 강화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관 합동으로 권한있는 기구를 마련해 여성장애우문제도 현재처럼 분리하여 처리하지 말고 통합적인 체계속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특별위원회는 집행부의 기능은 아니므로 교육홍보에 중점을 둘 예정이고 여성권익 차원에서 여성장애우 지원정책에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에 나선 심영희 교수(한양대 사회학과)는 K양 사건의 경우 주민들의 역할이 돋보였음을 지적하고 여성운동과 지역공동체가 연계하는 등 자율적으로 이것이 도움을 주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가 끝나고 공동대책위는 공동성명서 발표를 통해 K양 사건과 관련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이행되지 않을 경우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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