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사랑방] 아름다운가! > 도민 기자단


[여기는 사랑방] 아름다운가!

본문

나이 들어서도 울음소리가 어릴 때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울음소리뿐 아니라 우는 이유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누가 지나다가 그이와 눈만 마주쳐도 그냥 넋놓고 울곤 했는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목을 쭈욱 젖히고 으앙으앙 울어 재끼면 과자 사달라 떼쓰던 시절이 떠올라 묘한 향수를 느끼게도 했지요.
때로는 먼저 상대에게 “이씨, 저리가!” 선방을 놓기도 하지만가끔씩 제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손짓을 하며 말을 걸기도 하고 옆구리를 간지르며 장난을 걸기도 했지요. 그이의 나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흔이 훨씬 넘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제 서른을 갓 넘겼다고도 했습니다.
작지 않은 덩치에 한쪽 팔과 다리를 못쓰는 그이는 뒤틀린 손을 가슴에 대고 구부정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여기 저기를 곧잘 다니기도 했지요. 순갑이라 불리는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느 장애우 시설에서 그곳 가족들의 글공부 모임을 맡으면서였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가족 중에는 옥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 또한 순갑씨와 마찬가지 지체장애를 가진 처지였지요.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옥분씨는 순갑씨와 같은 방을 쓰는 사이였고 사람들은 그들을 모녀지간이라 했습니다.
순갑씨가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그 설움이 다 마를 때까지 누가 달래도 그치질 않았는데 용케도 옥분씨가 달래면 언제 울었냐는 듯 금세 그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지요. 글공부를 하는 옥분씨가 수업중일 때는 몇 시간이라도 어김없이 문밖에서 꼼짝 않고 기다렸습니다.
한 번은 하도 성가시게 해서 옥분씨가 슬쩍 숨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번 놀라고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으려 한답니다. 옥분씨가 아침에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엔 언제나 책 한 권 옆에 끼고 따라오는 순갑씨를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쳐다보면 자기 덩치의 반에도 못 미치는 옥분씨를 가리키며 어눌한 단음으로 “엄마, 엄마” 자랑하느라 아주 신이 났지요. 옥분씨는 “아무래도 순갭씨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디 내가 엄마라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모르것네” 하면서 걱정했지만 잠자리 들 때까지 단 한시도 순갑씨에게 눈을 떼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과연 옥분씨가 순갑씨를 자기 자식처럼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꾸 울고 응석질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런 걸까? 아니면,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구박받는 게 싫어서 그럴까? 그래서 ‘순갑씨를 할 수 없이 챙겨주는 걸까’ 하고요.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순갑씨를 바보라 불렀지만 순갑씨도 나름의 무게로 사람 대하는 기준이 있었던 겁니다.
때로는 옥분씨가 다른 사람 같으면 다시 달랠 일 두려워서라도엄두도 못 낼만큼 순갑씨를 심하게 꾸짖기도 했지만 순갑씨는 신기할 정도로 그 꾸중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사이에 막힘 없는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게 하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순갑씨와 옥분씨의 관계는 글공부 모임을 이끄는 저에게나 또는 공부방 가족들 모두에게 커다란 변화를 갖게 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여러 장애 가운데서도 정신장애가 가장 가슴 아픈 장애라는 생각에 견해가 일치했습니다.
또한 순갑씨의 경우처럼, 비록 심한 정신장애를 가졌더라도 깊은 사랑으로 대한다면 사이소통이 이뤄지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은 불구지만 정신 온전한 우리가 정신장애를 앓는 가족 한 사람씩을 형제나 자식으로 정하고 마음 깊은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 보자고 다짐했지요. 우리가 공부하던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와도 일치되는 문제여서 그 다짐은 곧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변화가 그 후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저와 모두에게 매우 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무는 바람에 늘 묶여 지내던 친구도, 자주 간질을 해서 기운 차리지 못하고 쳐져있던 친구도, 옷 갈아입기를 싫어해서 목욕날마다 전쟁을 치르던 친구도, 비만 오면 발작을 하던 친구에서 사람 무서워하던 친구까지 정말이지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랜 동안 닫아 두었던 그들 마음을 단번에 열게 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사랑에 목말라한 사람처럼 조금씩 다가서는 그들을 보면서 사랑만이 그들을 바꿀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 다친 이들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가족들이 그 같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삶의 지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수용시설에서의 생활이란 일상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어서 자칫 사고가 나태해지고 가벼운 흥미만을 좇게 되는데 내 몸도 편치 않아 귀찮게만 여기던 정신지체 장애우를 진심으로 가슴에 품고부터는 〔생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마치 허물벗기의 몸부림 같았습니다. 인간과 자연, 개발과 파괴, 자본과 경쟁, 속도와 도태, 상실과 회복, 억압과 저항 같은 문제들에까지 다만 지식쌓기가 아닌 실천의 과제로 서 깊이 파고 들었지요.
긴 자각의 시간을 지나 우리가 다다른 문제는 “평등”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살림의 공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신이 먼저 작아지는 실천만이 평등세상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열쇠가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등을 억압하는 구조에 소리 없이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개인의 지향을 보듬기 보다 오로지 관리라는 틀에서 시설을 이끌어 오던 관리자들과 간간이 마찰을 빚기도 했지요. 이전 같으면 “얻어먹는 주제에...”하며 포기하던 문제들을 다시 맞서는 그들을 보며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계기는 순갑씨와 옥분씨가 보여준 사랑의 실천이 씨알 되었음은 설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요. 이제 우리는 자각만큼 실천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비록 장애를 가진 불편한 몸이지만 가진 게 없어 버려 아까울 것도 없는 우리가 먼저 평등을 위한 걸음을 내딛기로 한 것입니다. “장애우를 위한 [평등학교]”는 장애우 스스로가 평등할 권리를 위해 평등할 의무(!)를 지키는 보다 적극적인 실천교육에 앞장 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매일매일 자신에게 묻기로 한 게 있습니다.
“아름다운가.”
“나밖의 사람에게도 유익한가.”
“우리가 즐거이 해낼 수 있는가.”

 

 정요섭 - 자신에게 나누고 섬기는 가난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장애우들과 함께 장애우평등학교를 세우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섭님은 그 이웃들을 위한 ‘안 입는 옷모으기’에도 열심이다.
최근 평등학교의 울타리나무가 될 열사람의 장애우가 쓴
<반짝이고 글썽이는 것들>(나무생각출판사)이라는 책을 엮었다.

작성자정요섭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