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보루, 기초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 지난 칼럼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보루, 기초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변화 동향과 우리의 대응 방향

본문

   
 

1. 들어가며

  “구걸을 하더라도 치사해서 수급권을 못 받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무총리에게 26만원을 반납하러 갑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뇌성마비 중증여성장애인 최옥란 열사가 기초법 개정을 위한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가며 했던 말이다. 사실상 유언이 되어버린 이 말은 IMF 외환위기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의 문제점과 당시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열사가 숨진 뒤 8년이 지나고, 법이 시행된 지 11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무엇인가?

  2000년부터 시행된 기초법은 진일보한 공공부조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수급 당사자를 ‘생활보호대상’이라 칭했던 것에서 ‘수급권자’로 명명하여 권리성을 부여하고, 나이·성별·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소득보장제도의 획기적 전환이라 일컬어졌으며, 제도 내에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 7개의 현금‧현물 급여를 보장함으로써 빈곤층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그러나 낮은 최저생계비, 부양의무자 기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독소조항과 진입 장벽으로 제정 취지에 어긋난 제도 운영이 이어져 왔다.

  이명박 정부는 재정 위기를 명분으로 긴축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을 철회하거나, 4대강 사업 등에 집중된 토목예산의 축소 등은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며 복지 예산을 감축하겠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대다수의 노동자 서민들은 다 죽어나가는데,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빈곤인구 중 약 150만 명만이 기초법의 수혜를 받는다. 41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각지대 인구가 방치되어 있다.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 주거 등 모든 사회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다.


2.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 가장 큰 문제점, 낮은 최저생계비

   
 

  지난 9월1일 최종고시 된 2012년 최저생계비는 2011년에 비해 3.9% 인상된 것이다. 이번 결정은 계측연도가 아닌 해에는 물가상승률을 자동 반영하기로 한 중생보위의 결정을 따른 것이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인상 폭을 보였다. 최저생계비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동시에, 한국사회의 빈곤을 가늠하는 지표다.

  그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약 40% 수준에서 2010년 32% 대로 떨어졌다. 최저생계비 수준이 점점 낮아지는 이유는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의 문제에 있다. 최저생계비는 특정소득집단의 생계비 품목을 조사자가 멋대로 합산하는 전 물량 방식에 의해 계측되고 있다.

  이는 절대적 빈곤선 계측 방식으로, 객관적인 사회 지표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문제다. 최저생계비 기준선이 이렇다 낮다 보니,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로 선정되기 어렵고 수급자가 되어도 급여가 법에서 규정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
 
•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 주범, 부양의무자 기준

  기초법은 1촌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선정 및 급여 결정 과정에서 부양의무자 소득-자산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바로 이 부양의무자 기준이 가난한 이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최대의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말미암은 사각지대 인구가 103만 명에 달한다(2009, 보건사회연구원). 생계를 달리하는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가난할수록 가족 관계는 단절되거나 위태로울 가능성이 커지며, 그 역도 성립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인의 소득인정액은 최저생계비에 미달하지만, 수급을 받을 수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존재 자체로 사각지대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우선 보장한 후에 보장비용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자는 안도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제도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부양의무자 소득, 자산 변동에 따라 간주부양비가 책정되어 수급비가 들쑥날쑥 불안정해지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빈곤의 감옥

  기초법은 빈곤층의 생계를 지원하며 자립·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법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수급자가 되면 일을 통해 근로소득이 발생하더라도, 급여 총액에서 추가 소득분이 깎여 결국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급여가 똑같은 보충급여 방식을 적용받는다.

  최근 들어 근로능력평가기준이 엄격해지고, 수급자의 자활사업 참여 및 일반노동 참여를 강조하고 있지만, 자활사업을 통해 실질적인 직업능력을 계발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근로소득공제 등 근로소득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화되지 않는 한, 이러한 정책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오히려 제도가 실질적인 생활 개선 방안 없이 더욱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수급자를 내모는 격이다. 기본재산공제액도 턱없이 낮고, 재산의 소득환산율도 지나치게 가혹하여 저축 등의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형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므로, 기초법이 오히려 빈곤의 감옥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다.

   
 


3.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부양의 실제’를 반영하지 않은 부양의무자 조사의 폭력성

  지난해 연말부터 시행된 부양의무자 조사로 말미암아, 사상 초유의 무더기 수급 탈락, 삭감 사태가 발생하였다. 복지부는 지난 5월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를 하는 등 겉으로는 기초생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를 취해왔으나, 실제로는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를 통해 수만 명의 수급자의 지위를 박탈해왔다.

  복지부가 지난 8월17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3만3천여명이 보장 중지되었고, 14만 명의 급여가 깎여나갔다. 복지부는 적극적인 구제조치를 펼쳤다고 하지만, 전체 수급자 중 상당수가 부양의무자의 소득, 자만산을 근거로 수급권이 박탈된 상황이다.

  이번 수급자 대량 탈락, 삭감 사태는 기초법의 심각한 후퇴라 할 수 있다. 복지부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현행 최저생계비 130%에서 185%로 올려 약 6만1천명을 제도로 포괄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수급자 수를 2011년 160만5천명에서 2012년 157만명으로 3만5천 명이나 축소하였다.

  이번 부양의무자 조사 등 엄격한 자격조사를 통해 수급자를 대거 탈락시키겠다는 것이 복지부의 애초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해진 예산에 맞춰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행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부양의무자 조사를 통한 급여 중지, 삭감 사태는 실질적인 가족관계와 수급권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행정이다. 정부와 복지부의 행태가 지난 7월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두 노인의 자살을 불러왔으며, 지금도 실질적인 부양 지원을 받지 못함에도 탈락, 삭감되어 절망에 빠진 수급자가 생겨나고 있다.

  ‘부양의 실제’를 반영하지 않는 행정처리가 수급자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전북에서는 7년 전 이혼을 하고 연락이 끊긴 남편의 부양능력이 확인되었다며 수급자격이 탈락하였고, 경기에서는 이혼 후 재가한 어머니로부터 비정기적으로 용돈을 통장으로 받았다는 이유로 신장질환자의 수급비가 전액 삭감되었다.

  가족으로부터 그 어떤 부양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임에도, 실질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에게까지 부양의무자로 규정하여 소득과 재산이 있으니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빈곤층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가족과 개인을 양산한다. 서울에서는 결혼 후 독립해 수급을 받으며 지내던 중증장애인 부부 중 남편 아버지(60대)의 소득이 180만원 정도로 증가하였다는 이유로 간주부양비가 측정돼 수급비의 30여만원이 대폭 삭감되었고, 전북에서는 대학생 딸이 아르바이트해 번 돈이 소득으로 인정돼 생계비 10만원이 삭감되었다.

  가난에 처한 개인의 가족 대부분이 가난 속에 살아간다. 그런데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로 얻은 소득을 가구 소득으로 인정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분리된 가구의 소득에 부양의 책임을 묻는 것은 가난한 개인과 가난한 가족을 지속적으로 양산할 뿐이다.


• 정부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방안의 한계

   
 

  위 표를 살펴보면,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30%에서 185%로 완화하는 정부 방안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부양능력 없음 기준을 상향하지 않고, 부양능력 있음 기준을 상향함으로써, 결국 간주부양비가 부과되는 구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즉,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130%가 넘지만 185%는 넘지 않는 빈곤층이 제도로 포괄될 수 있지만, 이들에게 생계비 지원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물론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 개별 급여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만, 빈곤층의 소득보장정책으로서 기초생활제도의 효과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적절한 방식은 아니다.

  이번 부양의무자 조사를 통해 부양의무자 소득, 재산 기준이 초과하지만, 가족관계 단절 상황을 인정받아 수급자로 남게 된 이들에게는 이러한 정책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간주부양비’라는 요소는 삶의 불안정성과 막막함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지원 없이 중장기적인 빈곤 탈출과 자활은 불가능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금 완화하는 것은 사각지대 해소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빈곤정책제도개선기획단, 그러나 정부의 행태는?

  보건복지부는 ‘빈곤정책제도개선 기획단’을 구성하여, 기초법을 비롯한 빈곤층 지원 대책을 종합적으로 점검,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급여체계를 바꿔 생계급여 규모는 줄이며,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 개별 급여를 욕구별 맞춤형 급여로 바꾸는 것을 주된 방향으로 삼고 있다.

  최근 자활 참여 요건과 관련한 최근 지침 변경 사항을 살펴보면, 자활 참여를 강조하고, 생계급여보다는 근로소득을 강화하도록 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일자리대책이 되지 못하는 현재의 자활사업에 대한 평가와 전망 모색, 보충급여 방식으로 근로소득이 발생하더라도, 정부 지원 급여는 그만큼 줄어들어 버리는 현실에 대한 개선 의지 등은 미약해 보인다.

  자칫, 정부와 연구자의 이러한 논의가 예산이나 제도 효율성 논리에 무게를 싣게 되면, 수급권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한편, 급여의 실내용과 유지기간 등이 더욱 빈약해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에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불평등을 확대하는 사회정책 및 구조 전반에 대한 변화 요구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권리 보장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4. 가난한 이들에게 절실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하자!

  기초법의 독소조항을 통한 진입 장벽은 장애인, 노인이나 소위 ‘취약계층’ 일부만이 제도 내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삶의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인양 치부하게 했다. 진입 장벽을 힘겹게 넘어 제도 내로 들어온 수급자들은 소득활동을 할 수도 없고, 차별과 멸시 속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쥐꼬리만 한 수급비로 연명하며 빈곤의 감옥에 갇혀 지내왔다.

  90세 할아버지가 70세가 다 된 딸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며 절망케 하고, 복지 수급이 절실한 장애인 자녀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끊게 하는 이 야만적인 제도를 그대로 내버려두며 ‘복지’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으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빈곤을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상대 빈곤선 도입을 통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전면적인 법 개정 투쟁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작성자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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