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대책, 보호에만 머물면 안 된다 > 지난 칼럼


도가니 대책, 보호에만 머물면 안 된다

[편집장 칼럼]

본문

  광주 인화학교를 소재로 태풍처럼 몰아쳤던 도가니 열풍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십 년 간 장애운동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한 편의 소설과 영화가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가니 대책으로 비리의 온상이었던 인화학교와 인화원이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공소시효도 없어져,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는 시기와 상관없이 끝까지 처벌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해 보이는 대책인데, 시설의 사유화를 저지하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도 이제는 더 이상 국회와 정부가 모른 척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도가니가 가져온 이런 대책 하나하나는 분명 큰 성과물들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대책들이 가시화 되고 구체화 되면 분명 우리 사회 장애인 인권과 복지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되짚어 봤더니 도가니 대책들이 모두 장애인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대책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와 국회 대책은 도가니 사태가, 특수학교나 수용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보호를 잘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배경에 이런 전제가 있기 때문에 대책들도 한결같이 장애인 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들만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실태를 보면 장애인들을 보호라는 명분하에 사회에서 격리된 외딴곳에 수용해 놓는 것에서 비리와 성폭력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실정이 이런데 장애인 격리가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마련하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국회와 정부가 보호라는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하면, 그 어떤 대책을 마련한들 그 대책은 장애인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모처럼 우리 사회에 장애인 인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 도가니 열풍이 제대로 된 장애인 인권과 복지 대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장애인들이 이 기회에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으려면 어떤 방안과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그 대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으로 국회와 정부의 도가니 대책은 그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도가니 열풍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갈망하는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가니 열풍은 장애인의 기본인권이 짓밟힌 것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 부조리, 구체적으로 사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서 보듯 기득권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약자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인화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해서 한 목소리로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면,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에만 머물지 않는다. 단죄와 함께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도 차별당하고 배척당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바람을 정의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는 시대적인 화두다. 최근 뉴스를 보면 지금 세계는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로 넘쳐나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결과에서 보듯 특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 정의가 구현되길 바라고, 또 요구하고 있다.

  결론은 도가니 열풍이 단지 장애인 성폭력 대책을 마련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시대의 중심 화두인 장애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의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정의는 고작 보호뿐인가, 그건 정말 아니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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