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손끝으로 깊어가는 가을에는 > 지난 칼럼


농부의 손끝으로 깊어가는 가을에는

[최명숙의 소중한 삶을 사는 벗들을 위한 단상]

본문

  앞집 정원에서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갈바람이 쌀쌀하게 일렁이는 가을 오후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 한 소절에 가을이 묻어 흐르고 햇볕에 널어놓은 이부자리에도 가을이 숨어 있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이 가을 한가운데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거울을 보고 싶어집니다.

  창문으로 내다뵈는 초등학교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넘어져 우는 아이의 뒷모습은 천생 어린 시절 나였습니다. 골목 끝 집 대문 앞에 헌 의자를 내놓고 행인을 바라보며 가을볕을 쬐고 있는 노인을 나 역시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노인 사이에 있는 우리는 소나기 온 뒤에 떴다가 금방 사라지는 세월 속에서 사랑보다는 미움과, 칭찬보다는 비난과, 기쁨보다는 슬픔과 손을 더 많이 잡으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거북이는 오백 년, 개는 10, 매미는 17년을 애벌레로 있다가 열흘 동안 열심히 살다 갑니다. 사람은 80년을 살지만, 매미의 열흘처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먹고살기 위해 하는 노동을 늘 감사하는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짠한 애정을 갖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에게 치료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종종걸음치는 어머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실과 득을 따지지 않고 주는 마음,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찾아와 장애인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모두가 단풍보다 아름다운 가을 풍경입니다.

  평소 장애인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자원봉사자 한 분이 자신에게 돈이 많이 들어온다면 육십쯤 되어서 장애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짓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장애와 고령의 이중적 어려움이 따르는 장애노인들이 편히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양로원을 꼭 짓고, 그런 날이 오면 언제나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남을 업신여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던 이에게도 편안한 방 하나를 꼭 내주겠다고 합니다.

  그 자원봉사자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사랑의 전령사라 명명하고 싶어집니다.

  우리 주위에는 남의 약점을 입에 올리면서 눈이 빛나는 사람, 종교의 교리대로 살아야 참된 삶이고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다고 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진 학식과 부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 재 묻은 사람을 나무라는 똥 묻은 사람, 갑자기 성공하였다고 오랜 지기에게 어깨에 힘을 주며 말투조차 바꾸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쌍한 처지인 사람을 경계하고 거짓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머지않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가슴 아프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보다는 고운 마음과 사랑을 가진 사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 십시일반의 의미를 알고 풍족하지 않아도 나눌 줄 아는 사람, 나보다는 남의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과 조락이 공존하여 채움과 비움, 그리고 진정한 나눔을 배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가을을 손끝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추수하기 전에 들로 나가 금빛으로 출렁이는 낟알을 손으로 쓸어보는 농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가슴 따듯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농부의 결실에 못지않은 큰 결실을 한 가지씩 거두었으면 합니다. 장애자녀가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부모라면 자녀의 장애가 눈에 띄게 호전되고,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취업의 기회가 오고, 장애인과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하는 봉사에 대한 진정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가을이 되길 바랍니다.

 

작성자최명숙 (시인, 뇌성마비복지회 기획홍보팀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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