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강정해군기지 문제는 장애인 문제다 > 대학생 기자단


제주강정해군기지 문제는 장애인 문제다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10년의 꿈 제주도, 그리고 강정마을

제주도는 필자에게 10년의 꿈이 있는 섬이다. 대학교 입학 때부터 10년 동안 운전을 배우고 내 차를 가지게 되면 직접 운전을 해서 제주도를 일주하며 제주도의 구전 설화와 신화를 연구하겠다는 국문학도의 꿈이 있는 섬이다.

제주도 이야기와 존재는 목발을 짚으며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절절하다. ‘설문대할망’의 몸과 누운 자리로 만들어진 제주도의 땅과 들녘을 다리가 아파, 겨드랑이를 아파하며 띄엄띄엄 답사하기엔 진정한 감흥을 삭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지적장애인대회가 끝났을 때 1년이 채 안 된 운전면허증을 두 손에 꼭 쥐고(?) -<함께걸음> 2010년 6월호 참조- 제주공항에 있는 자동차 대여점에 출입문을 홀로 두드렸다.

혹시나 장애인이라 거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조금 안고서.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10분 뒤에는 차에 앉아 제주도를 둘러볼 수 있는 키 높은 SUV 차의 열쇠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차에 타서 양발 운전이 가능하게 운전석 위치를 고치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종이지도에서 강정마을을 찾아가는 찻길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간간이 서울에서 듣던 강정마을의 투쟁 소식, 제주 사람도 자가용이 없으면 두세 번 이상 대중교통을 번갈아 타야 당도할 수 있다는 구럼비 강정마을. 목발을 이용하는 국문학도 장애인의 10년 꿈, 그 미안함의 끝자락에 그렇게 뒤돌아 앉아 외롭게 울고 있던 강정마을이 있었다.

마치 강정마을과 이별여행을 위해서 운전면허를 딴 것처럼, 혼자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자동차를 빌린 것처럼. 장애인 콜택시가 없어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없어서 강정마을에 가기 어려운 만큼 운전대를 잡은 필자의 마음은 불편하고 아팠다.

필자가 강정마을을 접하면서 괴로웠던 것은 단순히 평화와 생태를 파괴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정마을과 해군기지를 둘러싼 그 수많은 논쟁과 해적기지 발언에 대한 마녀사냥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위정자들이, 국방부가, 군대가, 10여 년 전으로 퇴행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본인’과 ‘이화여대생’이 목숨을 걸고 테러 위협을 받으면서 1999년 12월 23일 전원재판부 판결로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8조 1항, 이른바 군 가산점 등 위헌을 확인한 이후 지난 시간 동안 벌어졌던 군대의 음모와 작전이 작금의 강정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제주도의 돌과 바람과 하늘은 쇠붙이 목발도 품에 안고 받쳐주고 있건만 육지에서 온 쇠붙이 굴착기와 경찰은 그렇게 제주 할망들을 파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국가안보를 이기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군사 정권체제다

첫째, 강정마을 문제의 여론을 만드는 것에 있어 어느 보수 언론은 ‘두 얼굴의 트위터…낮엔 “구럼비 바위” 밤엔 “섹드립(섹스+애드리브, 야한 농담) 할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해군기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러한 행태는 군 가산점 문제가 촉발되었을 때 특정 여대를 공격하고 게시판을 통해 여성 전체를 인신공격했던 그 모양새 그대로다.

둘째, 김지윤 씨의 트윗에 올린 해적기지 사진과 글에 대하여 군대와 국방부와 군필자가, 군대에 자식과 형제자매를 보낸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분노하고 그런 국민의 피해의식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해군기지 찬성 측의 정치적 수법도 군 가산점 부활론자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 해적기지 발언을 그들이 보호해주고 있다는 여성이나 장애인과 같은 군 면제자나 미필자가 아니라 건장한 남자가 했다면 그렇게 국방부가 나서서 기자 브리핑을 하고 고소를 통해 여론을 만들어 갈 수 있었을까?

그 발언 사건으로 말미암아 애초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주의 문제가 더 컸던 강정마을을 군대의 소중함이나 고생도 몰라주는 이기적인 집단, 심지어 북한을 추종하는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조그만 시골 마을 전체를 하루아침에 국가안보를 외면하는 반국가 단체로 만든 그 놀라운 창의력과 연출력은 십 년 전 군 가산점 문제를 남녀 대립 문제로 끌고 가 어부지리를 얻었던 국방부의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이다.

더욱 비참하고 두려운 것은 권력자들의 이렇게 만들어 가는 여론에는 군대와 군사력만이 유일하게 국가안보를 보장한다는 그 바닥에 깔린 쿠데타적인 철학과 발상이다.

허약한 민주주의는 남침을 일으킨다며 자신의 쿠데타는 구국의 쿠데타일 뿐이던 박정희 정권과 지금이 뭐가 다를 것인가?

그런 군사주의야말로 장애인을 사지로 내모는 가치관으로 가장 경계해야 하고 거부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민의나 환경의 가치, 구럼비 바위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런 민주주의야말로 그런 환경이야말로 그런 바위·탱크를 파괴하는 반대 주민을 손 망치로 찍어 내리는 정권·군대라면, 장애인들은 언제나 국가 안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존재라고, 심지어 비용만 발생시키는 존재라고 낙인찍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력만이 국가안보이고 국가안보에 관련한 비판을 금기시한다면 그 사회는 아무리 형식적으로 문민정부이고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그것은 가면이자 가식일 뿐이다.

절대 권력이 있는 자가 어느 비판에 대해 발끈하며 힘으로 누르고자 한다면 오히려 그 비판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권력이 어떤 비판을 받아 억울하면 그런 비판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면 그만이다. 해군이 해적이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그렇게 비판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게 공권력의 정당성이지 않은가?

 

   
 

군대와 군사력만이 대안이라는 생각 자체에 장애인운동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국민을 신체적인 기준만으로 차례 짓고, 군사력만이 국가안보의 대안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무리 부정한다 하더라도 장애인과 미필자, 여성 등을 국가안보에서는 언제나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며, 군사력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것이며,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군사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십 년이 넘도록 군필자를 위한 제대로 된 보상책을 만들지도 않고 마냥 군 가산점 부활만 고집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강정 마을은, 구럼비는 ‘설문대할망’이 자식을 위해 밥을 짓다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가 싸우고 다치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며 순순히 폭약에, 굴착기에 당신을 내어 주실 것이다. 나중에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할망의 희생을 알아차리고 슬퍼했던 그런 아픔들을 반복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facebook.com/eduable, guerni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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