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요란했으나 끝은 내용 없는 정부의 ‘도가니’ 대책 > 지난 칼럼


시작은 요란했으나 끝은 내용 없는 정부의 ‘도가니’ 대책

[여준민의 탈시설 이야기]

본문

시설 내 인권침해는 여전한데

“사람들이 온종일 방안에 누워있어요.”

“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도 못해요.”

“목욕탕이 방마다 있는 게 아니라 목욕하고 난 후 알몸으로 거실에 눕혀 놔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얼마 동안은 그렇게 있어야 해요.”

최근 인천의 한 시설에서 일하는 분이 제보한 내용입니다. 그 시설은 몇 년 전부터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져 지역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던 시설입니다.

이사장의 아내가 장애아동시설의 원장이었고, 이사장 처남의 아내가 부원장, 이사장 처남은 장애인생활시설 원장, 노인시설은 같은 교회 지인인 측근이 원장으로 있었습니다. 현재는 그 이사장이 사망한 후 딸이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주인의 장애수당을 각출해서 약 1천만 원가량의 건강보조식품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심각하게 드러난 인권침해 문제가 아니었다 해도 운영자가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있고 친분을 이용한 운영의 개연성에서도 보이듯이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형태임은 분명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도 있었습니다.

거주인 한 분이 7년 동안 이사장의 집에서 가정부처럼 일했지만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안을 알게 된 직원 한 분이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결과는 ‘각하’였습니다. 강제 노동력 착취가 2006년까지 진행된 과거 시점이어서 현재는 차별행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설은 2011년에도 거주인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해 경찰고발조치 되었고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도가니로 촉발된 정부의 대대적인(?) 조사대상 시설에도 포함됐었습니다. 애초 복지부는 미신고시설과 개인운영신고시설, 인화원처럼 특수학교병립 시설 200곳만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법인 시설에 대한 조사계획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설은 조사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2월 9일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니, 위 3개 시설종류를 다 합해도 174개밖에 되지 않아 ‘그럼 나머지 시설은?’이란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 법인 시설이 포함됐던 것입니다. 법인 시설은 애당초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방침에서 벗어나 26개의 법인 시설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건 뒷부분에서 다시 거론하겠습니다.

다만 2011년 복지부 결과발표 자료를 보니 이 시설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노조와 비노조 간의 분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본질을 흐리는 결과가 기록되어 있고, 손바닥 때리기 등의 체벌이 존재한다고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시설 안에서 거주인들에게 ‘체벌’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요?

‘체벌’이 인권침해 실태조사 항목으로 들어가고 조사결과에도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만 보아도 이번 복지부 실태조사가 얼마나 허구인지, ‘인권’의 개념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복지부의 대책 없는 대책

이렇듯 2011년 하반기 이후에도 ‘도가니’는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산의 메아리동산, 광주광역시의 현비동산과 보람의 집, 일반 아동보육시설인 원주의 자신보육원, 김포 프리웰의 장애아동시설 등.

2011년 하반기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도가니 정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회복지법인에 공익이사를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회복지사업법(이하 사복법) 개정싸움을 7년 동안 했음에도 먹혀들지 않았는데, ‘도가니’로 단 3개월 만에 법안 개정안이 통과되었지요. 물론 애초 민간이 준비한 법안에 비해 많이 후퇴한 내용임은 틀림없습니다.

보완과 시행령, 시행규칙 과정에서도 아직 중요한 사안들이 남아있고요. 그래도 사복법과 성폭력특별법을 통해 견고했던 그들만의 시설에 균열을 가할 여지가 생겼고, 가해자 엄중처벌로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은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것도 많이 부족합니다. 가해자만 엄중처벌한다고 해서 성폭력 등이 줄어든다는 통계는 없으며, 외부이사 2인이 포함되어도 지역의 지인들로 구성된다면 그야말로 또다시 형식적인 모양새만 갖출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모처럼의 기회를 또다시 형식적인 구색 맞추기가 되지 않기 위해 지역 인사 추천 시 조건과 기준을 엄중히 하고 성폭력 당사자의 이후 조치 등 다양한 후속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인권의 문제가 ‘감시와 처벌’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지부의 기만적인 실태조사와 대책

그런데 이 두 가지 법안의 개정 외에도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발표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와 그 결과를 토대로 대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시설 거주인에 대한 인권실태조사를 전국적, 조직적으로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실태조사는 매우 큰 관심과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전국적인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겠구나. 그럼 탈시설에 대한 정책들이 나오겠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철부지의 허황한 꿈처럼 무너졌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변화를 가져오려면 공고한 틀을 갖추고 있는 법인시설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몇십 년 동안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던 법인은 미신고나 개인운영신고시설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공식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어 내부고발이 아니면 그 안의 문제점들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시설 정책을 점검한다면 당연히 법인시설이 조사대상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도가니’로 알려진 인화원도 법인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대상 시설 200개 중에서 법인시설은 26곳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복지부 차현미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가 된 적이 있는 시설들을 골랐다”고 하는데, 언론에 드러난 문제만 문제일까요?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애초 기준부터 잘못됐습니다.

 

정부 대책이 ‘인권지킴이단’ 구성? 정부 맞아?

조사대상뿐 아니라 조사방법도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시설은 거주인 인터뷰에 시설 측 요구로 종사자가 함께 설문조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종사자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거주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신뢰하면서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인권상황의 조사 원칙은 일대일 면접 조사여야 합니다. 민감한 상황과 내용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려면 편하고 안전하다는 느낌, 비밀이 보장된다는 원칙이 공유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지난 2011년 정부의 ‘시설 거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그 어떤 의미도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

조사가 이런 식이었으니 대책 또한 형편없는 수준의 ‘인권’ 남발만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대책이라고 하더니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달랑 이거 하나입니다. 그럼 인권지킴이단은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역시 “NO!”입니다.

 

탈시설-자립생활로의 방향전환이 근본 대안

인권은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해야 합니다. ‘보호’라는 말 속에는 스스로 지킬 수 없어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켜줘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보장’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지키고 책임이 있다는 동의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개념과 정의부터 바로 잡아야 그에 대한 올바른 대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첫 출발은 스스로 자신의 인권이 무엇인지 알고 지켜나가는 있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시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집단생활이 가져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권과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이 해결된다면 시설에서의 폭행과 성폭력 등의 심각한 사안들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왜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그곳에 사는 거주인들의 가슴 저 깊숙한 곳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또한, 시설의 폐쇄성과 비민주성 탓에 ‘내부고발’이 아니면 인권침해 사안이 드러나기 어려워 종사자들의 감수성을 키우고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시설 안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환경과 분위기는 ‘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의 해결은 ‘시설’이란 구조의 변화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복지부는 더 큰 틀에서의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땜질하듯 사태를 안일하게 대처하는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정책은 당연히 예산을 수반해야 가능합니다. 어떠한 예산도 없이 마련된 ‘도가니 대책’이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시설의 구조를 바꾸고 거주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탈시설-자립생활’로의 전환정책 수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설은 한순간에 해체할 수 없지만, 정책은 한순간에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거주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작성자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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