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습니다…시설은 사람들에게 ‘장소’일까요? ‘공간’일까요? > 지난 칼럼


묻습니다…시설은 사람들에게 ‘장소’일까요? ‘공간’일까요?

[여준민의 탈시설 이야기]

본문

시설은 장소가 아니다

최근 인권연구소 ‘창’에서는 ‘장소와 인권’이란 주제의 강좌를 3차례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참여자 모집 광고를 보는 순간 저에게는 ‘장소와 인권’이란 말이 ‘시설과 인권’이란 말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좀 ‘깔때기’라는 게 실감 나더군요. 왜 장소와 인권을 연관 지었는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저지만 금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설은 장소일까? 인권이 보장되는 곳일까?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사람들의 재미있고 행복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곳일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이 제 안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걸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공지 맨 뒷부분에 언급된 강좌 취지를 읽어보니 역시나 제가 감각은 좀 뛰어난 사람이더군요.

인권연구소 ‘창’에서 <장소와 인권>을 주제로 강좌를 연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모든 사안, 즉 용산참사 사건, 두리반투쟁,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강정마을 지키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희망버스 등은 모두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싸움이었고 그 속에서 벌어진 많은 일은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인권을 뭉개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싸움을 통해 권리가 회복되고 다시 그 장소를 찾았건, 아니면 여전히 피 말리는 싸움을 진행 중이건, 어느새 장소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으면 동시에 그 장소를 앗아간 사람들도 있겠지요? 누구일까요? 국가가 될 수도 있겠고, 법이 될 수도 있겠고, 자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를 보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인, 노인, 아동, 노숙인 등 특수한 상황에 부닥쳐져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당연히 여기는 시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잃어버린 장소’로 취급될 수 있을까요? 강좌를 신청한 제 동기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강좌의 취지가 많은 사람이 장소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예로 들며, 장소 박탈에 대한 불안감이 결과적으로 자기상실로까지 이어지는 사회현상의 원인을 짚어내고, 그것이 인간다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권리의 주체로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었으니까요. 시설은 시설에서 사는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얼마 전 시설종사자 인권교육 강사과정에서 진행한 ‘나에게 시설은?’이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때 이야기를 시작으로 ‘장소성’의 관점에서 시설은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인권교육, 시설이용자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참 많은 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 <도가니> 이후 시설종사자에 한해서는 1년에 8시간 인권교육이 의무화되고, 시설이용자의 인권보장이 과제로 제시되면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부여받은 주제는 ‘시설의 역사와 구조’였습니다. 시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누구의 처지에서 더 강화됐고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구조와 메커니즘을 가졌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헌데 그 전에 고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 장애부모, 장애인권활동가, 장애당사자 등이 참여했는데, 워크숍의 주제대로라면 이분들은 시설에서 ‘인권교육’을 담당하실 분들인 겁니다. 시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권침해에 대해 조언을 하고 대응방법 등을 공유하고,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하도록 해야 하는지, 그 내용과 관점을 정확히 짚어줘야 하는 분들이죠.

아시다시피 인권교육은 인권보장 지침의 내용을 읽고 숙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포장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권’이 무엇인지, ‘시설’이 무엇인지, 강사 자신의 것으로 체화되지 않으면 인권교육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교육은 다만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의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시설 내 인권교육의 목표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계

그래서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 것인가 고민하다가, 평소 각자가 가진 ‘시설’에 대한 생각들을 모으고 생각하는 시간으로 잡았습니다. 각자 A4용지에 ‘내가 생각하는 시설이란?’을 단어로 표현하거나 한 문장으로 표현, 혹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죠.

다양하고 기발한 표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30여 명이 넘었으니 오죽했을까요? 헌데 그렇게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정확히 딱 두 분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은 <섬, 군대, 감옥, 자유, 평등, 인권으로부터 갇힌 공간, 시간표(모든 일정을 똑같이 반복해서 살아가는 곳), 고립된 곳, 사회와 단절된 곳>이란 표현을 쓴, 즉 시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위치된 어떤 가치와 상황에 관한 판단이었습니다. 대부분 활동가나 부모님, 당사자들이 이렇게 표현해주셨더군요.

또 한 쪽은 현상적인 모습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사는 곳, 공간, 즐거운 내 집, 집> 같은 표현이었죠.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적어놓으신 겁니다. 그분들은 현재 본인들이 일하시고 있는 곳의 분위기를 전달한 측면이 강했습니다. 좋은 환경이고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고 소규모화로 강요와 강제보다 자율성이 크게 보장된 곳이라 생각하고 계셨던 거죠. 얼마나 애쓰시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설을 ‘공동체’로 생각하는지 국가의 법으로 규정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지를 서로 헷갈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공동체’가 되었다가 또 어떨 때는 ‘기관’이 돼버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과의 호칭문제에서는 그동안 관계가 있으니까 ○○씨라고 하는 게 어색한 거죠. 만일 ‘공동체’란 인식이 강하다면, 집단을 위해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권이 양보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그건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인권침해일 수 있지만,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게 하는 거죠. 집단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구조의 한계를 인정하고 간다는 것은 이용자 인권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침해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종종 자신들이 노동 문제에서의 시설은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시설이 민주적이지 못하고 명확한 권력관계를 맺은 곳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시설장은 종사자들에게, 종사자들은 이용자에게…. 그렇게 상하관계가 분명한 이상 시설 민주화, 시설이용자 인권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점의 문제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명확한 책임과 역할, 구조의 변화까지도 연결된 중요한 지점이고, 시설의 역사성과 구조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권보장은 민주주의가 실현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권은 실천적 힘

인권교육의 목적은 인권이 침해당한 것을 아는 감수성과 그 침해당한 인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힘을 함께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사례를 보더라도 ‘시설’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느냐가 중요한 논점으로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일 첫 번째의 경우라면, 시설에서의 문제들을 적극 해결하고 나아가 고립이 아닌 선택과 자율성 보장, 개방과 민주주의 실현이란 점까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두 번째의 경우라면, 이야기의 중심과 흐름이 시설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시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좋은 환경과 분위기, 좋은 프로그램 제공 등으로 개선되면 좋다는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지요.

이 두 집단의 차이는 바로 ‘시설’이란 곳의 역사와 구조를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처한 현실을 알고 의견은 소중히 여기되,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희망’은 우리의 실천적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설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먼저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이야기하기가 편해졌습니다. 구조를 살펴볼 때 핵심은 바로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어느새 모든 조직은 위계가 당연하고 지시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숫자의 과부하로 대표를 선출해 그 사람들이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대의민주주의’를 떠올리기에 십상입니다. 상식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조직의 민주주의는 주체들의 참여-소통-결정의 과정을 통해 가능합니다. 시설에서 ‘○○위원회’ 같은 것을 자꾸 만드는 것도 더욱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그치는 위원회였을 뿐 결정은 시설운영진들이 다 하면서 그저 외부에는 “우리는 인권위원회도 있다. 인권이 보장되는 곳이다. 당사자가 참여한다”는 선전용에 그치고 있습니다.

 

무력감을 느끼면 삶의 터전이 아니다

<장소와 인권> 두 번째 강의를 했던 인권연구소 ‘창’의 엄기호 연구활동가는 지금 이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데, ‘교사들의 무기력과 위기의식’을 알게 된 후였다고 합니다. 전교조 세대였고, 그 찬란한 승리의 역사를 경험했지만,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들에게 학교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무장소성, 장소성의 상실”이라고 말합니다.

장소는 그 자체가 가진 특성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투자대상이나 대체 가능한 것으로 바뀌면서 ‘공간’이 되고 ‘장소’는 인간관계를 맺어야 가능한 곳인데, 장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로운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사이버 공간’ 같은 것이 출몰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관계 맺음이 어려운 곳이죠.

그렇다면 시설은 어쩌면 한 번도 변화의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공간’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지만 평등한 관계도 없고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고 재미있고 행복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곳도 아닐 것입니다. 시설은 관리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공간’의 역사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장소’란 말을 들었을 때 ‘시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장애가 있고 가난하고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가는 곳이라 인식되는 ‘시설’도 과연 ‘장소’일 수 있을까요?

강좌에서는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예로 많이 제시되었지만, 저에게는 애초 ‘장소’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거나(인식하지 못하거나) ‘장소’를 되찾으려는 노력 역시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설 거주인’들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소/공간-사회적 관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생애사라는 관점에서의 서사를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설은 이야기가 흘러넘쳐 나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성을 가질 수 없는 ‘공간’입니다. 강좌를 들으면서 탈시설운동이야말로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야 하는 ‘장소’를 회복하려는 운동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장소는 마땅히 ‘집’과 ‘마을’이 되어야 합니다.

지배당하는 ‘장소’의 의미에서 내가 만들어갔던 ‘장소’를 다시 복원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실체적 확인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설이란 ‘공간’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의 장소, 사람의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장소는 삶의 터전이어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작성자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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