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 개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가능하다 > 지난 칼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 개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가능하다

[기고]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방향과 과제

본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란 무엇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7년 우리나라에 닥친 외환위기를 통해 빈곤계층의 생활안정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의 필요성이 생기며 만들어졌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대량실업과 빈곤의 확산, 새로운 형태의 빈곤 출현 등은 우리 사회에 과거와 다른 빈곤대책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했고, 여기에 낙후한 생활보호법성 등 공공부조 개혁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의 적극 활동이 수반되면서 새로운 법 제정이 추진되어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만들어졌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존 생활보호법과 다른 점은 ①‘수급권자’, ‘보장기관’ 등의 표현으로 권리성을 강화했으며 ②인구학보적 기준 삭제 등 수급권자의 범위를 확대했고 ③선정기준의 합리화, 절차적 정당성을 꾀했으며 ④급여수준의 향상과 주거급여항목을 추가하는 등 급여종류의 다양화를 도모했고 ⑤자활계획의 수립을 추가했던 점이다. 이로써 기초법은 우리나라 공공부조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극단에 있는 사회안전망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전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권리로서 보장한다’는 문구에 집약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 인구의 3% 내외만을 포괄하는 기초법은 보장범위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 낮은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 기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수급자의 선정 과정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재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는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비수급빈곤 가구 중 54.5%가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수급권 탈락 사유의 약 25%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것이지만 절반 이상이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9년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과 곽정숙 의원이 공동 시행한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청탈락가구 중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락한 사례(43%)가 가장 많았다. 수급탈락의 사유 중 부양의무자기준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가 수급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부모가 자살하는 안타깝고 불행한 일도 있었다.

두 번째로 소득인정액 기준에 충족하려면 우선 한 달의 수입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더불어 가진 재산(집, 금융재산, 자동차 등)이 일정한 환산율을 통해 소득으로 간주한다. 마지막으로 노동능력이 있는 경우 자활 근로 참여를 조건으로 수급권을 받거나, 자활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실제 소득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할지라도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간주 소득을 책정한다. 소득과 재산에 대한 조사는 수급권 신청자 본인에 대해 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양의무자인 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에 초과할 시 수급권을 받지 못하거나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이렇게 중요한 기준선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현재 1인 가구 기준 55만 원(현금급여 45만 원)가량으로 책정되어 있다. 기초법 시행 초기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40% 정도이던 최저생계비가 30% 정도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더욱 옥죄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빈곤층의 규모를 은폐하는 효과가 있다.

 

더욱 위태로워지는 빈곤층의 삶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들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우려스러운 많은 일이 수급권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복지부는 2010년과 2011년 네 차례에 걸쳐 수행한 복지급여 대상자 확인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복지부는 “행복e음”이라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이하 사통망)을 통해 기초생활수급,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 한부모가족지원, 영유아지원, 차상위장애인연금, 차상위자활, 차상위의료, 청소년특별지원 등 제반 복지급여수급자에 대해 일제정비를 했고, 그 결과 각종 복지급여수급자 44만 8천900명이 수급자격을 잃었으며,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가 11만 6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복지부 발표 어디에도 수급자격 상실과 관련해 왜 수급자격이 상실됐는지, 급여중지 외에도 급여삭감이 된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고 얼마나 삭감되었으며 또 여기 해당하는 가구들의 가구형태는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단지 수급자탈락을 통해 3천962억 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한 달 뒤인 6월 1일 기획재정부는 제1차 ‘재정관리협의회’를 개최해 관계부처장관 및 재정 관련 전문가 등이 참가한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지원사업군 심층평가 결과 및 지출성과 제공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논의에서 기획재정부는 기초생활보장지원사업에 대해 재정지출의 효율성·형평성, 근로능력자 관리 및 근로·탈수급유인체계가 미흡하고, 의료서비스 과다이용의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평가결과에 근거해 지출성과 제공방안으로 ▲비수급 빈곤층 보호 강화 ▲근로능력자 관리 및 자기책임 강화를 통한 탈수급 촉진 ▲의료급여 지출 개선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지출성과 제공방안’이라기보다는 ‘재정축소방안’에 불과해 보인다. 비수급빈곤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일정수준 이하의 주거용 재산 소득환산 비율 완화’를 제시했으나,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처럼 생색내기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비중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과 의료급여 본인부담금을 높이겠다는 방안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사이 현장에서 느껴지는 빈곤층의 삶은 매우 위태로웠다. 사회복지통합전산망 도입 이후 지난 1월을 시작으로 국세청의 사용자 신고분의 소득 자료가 수급권자와 부양의무자 소득조사 자료로 활용되면서 일어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일례로 12년 전 이혼하고 현재 딸과 함께 지내는 장애남성 가장 A씨는 전 부인의 소득이 증가했다며 수급중지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은 일이 있었다. 동사무소는 항의하는 A씨에게 주소 한 장을 내밀며 12년 전 이혼한 부인에게 ‘부양기피사유서’를 받아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소득증가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부양포기각서를 쓰고 이혼한 어머니의 소득증가로 수급액이 삭감된 B씨는 어머니께 연락해봤지만, B씨 어머니의 소득은 실제보다 3배가량 높게 신고돼 있었다. 지인의 가게를 이따금 봐주며 약간씩의 돈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구청은 B씨의 어머니에게 자녀의 수급액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사업주에게 실제 소득에 관한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말했다. 실제 소득에 관한 확인서는 국세청으로도 넘어가고 사업주는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B씨의 어머니는 지인으로서 자신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알고 도와주던 사람을 차마 신고할 수 없었다.

20년 전 이혼하고 식당일을 하며 지내던 C씨는 올해 초 암이 발생했다. 암 수술은 다행히 잘 됐지만,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신청했지만 6개월간의 통화기록에 20년 전 가정의 아들과의 통화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20년 전에 이혼했고 사적 부조를 해왔다는 증거가 없어도 통화를 하고 있으니 부양의무자라는 것이었다. 수급신청에서 떨어지고 이의신청을 진행하는 중이나 C씨의 병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재 병원 근처 쉼터에 기거하며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은 국토해양부·국세청·고용노동부·건강보험공단 등 27개 기관의 213종의 소득·재산자료와 인적사항 정보, 120여 개의 복지서비스 이력 정보 등을 개인별·가구별로 통합한 정보시스템으로 2010년 1월부터 가동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확충해 ‘부정수급자를 걸러내겠다’며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복지부가 삼성SDS와 함께 전산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산망이 도입된 직후부터 3개월간, 8만여 건의 무더기 민원이 발생했을 만큼 오류가 속출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출신고로 가족해체 사유가 분명했던 수급자가 전산망에 뜬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잡혔다며 갑자기 수급이 삭감되기도 했고, 실제 부양도 되지 않는데 사위의 소득이 있다며 수급이 중지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수급자가 결국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그러나 정부와 복지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실태조사와 제도정비는 뒷전이고, 오류투성이 사통망 운영을 강행하고 있다.

특히 복지부는 작년 하반기부터는 국세청으로부터 ‘고용주가 신고한’ 일용근로소득 자료를 입수해 이를 근거로 기초수급자를 조사, 해당 기간 1만 2천 명이 일용소득으로 수급이 중지되었다. 동기간 동안 수급 중지된 수급자 수 3만 9천 명 중 31%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 중에는 고용주의 신고소득이 수급자의 실제 근로 여부 및 실제 급여액수와 차이가 있어 억울하게 급여삭감이 되거나 수급중지가 된 사례도 있다.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은 과도한 개인정보의 노출이라는 문제점을 가짐과 동시에 전담공무원들로 하여금 실태조사는 뒷전으로 하고 오류투성이 전산망에만 의존해 빈곤층의 생사를 결정하게 하고 있다. 더욱 적극적인 실태조사를 권장하지는 못할망정 본말이 전도된 행정체계를 강요하는 복지부의 처우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매우 퇴행시키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바로 진짜 복지의 시작이다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어디서부터 바뀌어야 하는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다시 제도의 본래 원칙과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전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모든 사람의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턱을 최대한 낮추고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본 방향으로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최저생계비 현실화, 이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는 필수적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국민이면 누구나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받도록 규정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이 취지를 살리려면 당사자 개인의 소득, 재산 등을 기준으로 수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부양의무자가 고소득층이거나, 재산을 엄청나게 많이 가진 부양의무자가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소득이 전혀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수급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 이런 때 사후에 수급자가 부양의무자로부터 소득이나 기타 생계를 지원받고 있다고 증명이 되면 지원된 금액을 환수하는 구상권을 행사하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경우가 전체 비수급빈곤층 숫자보다 아주 미미하다는 것은 복지부 스스로 밝히고 있다. 매우 드문 경우를 근거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존속시키겠다는 건 대다수 열악한 비수급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함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하다. 빈곤의 문제를 개인이나 가족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우선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대세가 되고 있다. 빈곤이 대물림되고, 가족을 해체하는 지경까지 이르는 등 기본적인 인간적 생활의 보장은 국가의 시혜적인 보호나 혜택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이에 따른 당사자와 빈곤 관련 활동을 벌이는 사회단체의 문제 제기로 정부 차원에서도 부양의무자의 범위와 기준이 지속해서 축소됐다. 6월 5일에는 이낙연 의원 등 15인의 국회의원이 수급자 선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은 1촌 직계혈족으로만 축소하여 부양비용 징수 요건으로만 활용하자는 기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6월 13일 열린 ‘2012~2016년 국가재정운영계획’ 복지분야 토론회에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고, 부양의무 판정능력 소득기준을 개편하며, 재산의 소득환산율을 내려야 한다는 방향이 논의되기도 했다.

기초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낙연 의원 등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시 2013년에는 9천966억 원을 비롯해 2017년까지 5년간 총 10조 6천784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도 발표했듯이 OECD 주요국의 공공부조예산은 GDP의 평균 1.16%이지만 중앙정부 예산 기준으로 한국은 0.61%로 절반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만 달러로 EU 평균치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증가하는 재정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며, 복지와 기초생활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필요 충족, 빈곤의 확산을 방지하고 사회적 건강과 국민의 권리 증진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복지재정확충이 필요하다.

지난 몇 해 동안 복지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하지만 정작 공공부조의 근간이자 가난에 빠질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약속인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논의는 대두하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재 빈부격차 완화에 거의 유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제도이기도 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부터 진짜 복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함께 요구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조직국장  bonbon72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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