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개펄을 걸어가리라 > 지난 칼럼


저 개펄을 걸어가리라

[이서진의 살며 생각하며]

본문

바닷바람을 가르고 자동차가 달렸다.

 그때, 나는 차창을 내다보면서 줄곧 한 가지만 소원했다. ‘저 길을 좀 걸었으면… 발가락 사이로 꼬물꼬물 개흙이 올라오겠지. 개펄은 어쩌면 세상이 열릴 때조차 하느님이 내보이지 않은 마지막 보루일 거야.’ 하릴없이 상상하기 좋아하는 나는 근거 없는 억측과 밑도 끝도 없는 바람으로 실눈을 뜨고 저 망망하게 펼쳐진 뻘밭을 가늠했다. 한 발을 내딛는다면 금방이라도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진흙의 감촉이 발바닥을 간질일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바닷길이 오롯했다. 마치 지나온 내 삶의 족적처럼.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거무칙칙한 개펄이었다. 그 깊이모를 수렁 속을 어지간히 빠져들었던 지난날이 언뜻언뜻 스쳐갔다. 일순간에 정지된 몸이며, 갇힌 자를 비웃듯 날아가는 갈매기 문양의 병실 천장과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흰 벽, 그리고 한밤중에 들려오던 앰뷸런스의 요란한 경고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스르륵 눈꺼풀이 감길 즈음이면 창문으로부터 희뿌옇게 새벽은 고개를 내밀었다. 어김없이. 또다시 날이 밝는구나, 새벽의 절망은 늘 그렇듯 혼곤한 잠속으로 섞여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줄곧 허우적거렸다. 진흙창의 수렁이거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거나. 그 심연을 빠져나오려고 나는 얼마나 용을 썼던가? 엄마를 친구를 혹은 기억에도 없는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며. 그들은 몸부림치는 나를 그저 먼 산 구경하듯 바라보든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흘낏 한번 쳐다보고 그냥 지나갔다. 매정하게. 당신들이 혹은 너희들이 내게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매번 꿈속에서 울었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이듯 주어지는 그 시간에.

우우, 해풍은 거칠고 사납게 차창을 달려들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바람소리에 뒤처질세라 나 역시 와와! 소리를 내질렀다. 체증이 내려가듯 후련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완성한다고. 세르반테스의 단언에 나는 기꺼이 한 표를 더하겠다. 동굴처럼 어두침침한 그 시간을 지나서 나는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으니까. 물론 아직 미완성의 행로에 때때로 온갖 좌절과 열패와 치부에 진저리치는 새벽을 간혹 맞닥뜨리더라도. 욕심이라면 당장 자동차에서 내려 저 뻘밭을 맨발로 걷고 싶다는 것. 발가락 사이로 꾸르륵, 올라오는 부드럽고 찰진 개흙덩어리를 느끼고픈 바람이었다. 태곳적의 비밀한 신비가 진펄 속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을 테니까. 극심한 중복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사랑하던 이들을 다 불러 놓고 그동안 목소리로만 듣던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겠노라 했던 것처럼, 나 또한 사흘 아니라 단 하루만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저 개펄을 걸어가리라. 하늘이 열리고 땅이 솟구치고 바다가 드러날 때 시퍼런 물속에서 끈덕지게 고요히 엎드려 있던 그곳을.

“지금쯤이면 바다가 열렸을 걸.”
손바닥 안에서 일사천리로 모든 걸 알아내고 해결하는 ‘손전화기’를 이름 그대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가 내 등 뒤에서 혼잣말인지 아니면 정보전달 차원인지 모를 말을 했다. 언뜻 돌아본 정맥 불거진 그의 손에는 예의 그 중독기계(?)가 역시나 턱, 누워 있었다.

“가자! 한 시간이면 충분해. 지척에 두고 단 한 번도 ‘한국의 홍해’를 가지 않았다는 건 슬픈 사건이지. 애향심과 더불어 국토사랑의 싹수조차 없다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고.”
손바닥 안의 전화기에서 끝도 없이 딸려 나오는 각종 검색어처럼 그의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고 갖가지 어휘를 나열했다. 한국의 홍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애향심과 국토사랑, 불명예까지 나갈 건 뭔가! 게다가 동정심을 자극하는 ‘슬픈 사건’ 운운까지.

“내 보기엔 거머리와 동고동락하는 신세가 더 슬퍼.”
“아, 이거? 근데 작가선생이 거머리가 뭐야. 좀 빈약한 표현이구만. 바닷가의 참게 정도면 또 몰라도.”
자신의 손전화기를 빤히 쳐다보는 내 눈을 피해 그는 얼른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참게는 끓여 먹기라도 하지. 대체 그 쇳덩이를 어디다 쓸고? 감옥소에 갇힌 것처럼 다들 꼼짝달싹 못하니 원….”
“그러니까 참게 잡으러 제부도에 가자!”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는 ‘제부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말마따나 참게를 잡으리라는 기대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더구나 썰물 때의 황량한 바닷가를 찾느니 모세의 기적을 대면하지 못하더라도 숫제 넘실대는 파도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시큰둥함이 그야말로 거머리처럼 머릿속에 달라붙은 채였다. 따지고 보면 그와 나의 거머리는 도토리 키 재듯 진배없었을까?

산책로를 따라 해안 단애와 아스라하게 펼쳐진 먼 바다의 잿빛 개펄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종아리를 걷어 올린 사람들을 힐끗거렸다. 직립보행의 그 복된 사람들을…. 이루어지지 않을, 아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남몰래 가슴앓이 하듯. 자칫 신파조로 추락할까, 나는 힐끗거리던 도둑관람을 멈추기로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종아리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개흙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오는 건 왜일까? 인공산책로를 들들 굴러가는 내 휠체어를 내려다본다. 때마침 그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떤다. 세상의 호출에 즉각 반응하는 그가 가엾다. 우리는 거머리처럼 세상에 착, 달라붙어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을 싣고 굴러가는 이 휠체어도 그의 손전화기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바닷길을 나올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든 젊은 남녀가 맨발로 개펄을 걸어간다. 그들의 열 발가락 사이로 과연 진흙이 꼬물거리며 올라왔는지 나는 궁금하다. 대뜸 창문을 열고 묻고 싶다. ‘어떤가요? 태곳적 신비가 느껴지나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럭, 내려 보낸다.

바닷물이 들면 개펄은 또다시 수장되어 얼마간의 시간을 엎드린 채 견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채 숱한 종아리들을 부를 것이다. 그 얼마의 시간을 기다린다면 완성을 향해 가는 시간이 내게 손을 내밀고 종아리를 걷어 올리라, 기회를 줄까? 아득한 저쪽 아주 먼 바다로부터 붉은 해가 올라올 즈음이면. 그럼 난 개펄을 걸어가리라. 그 신생의 환희가 충만한 바다 한가운데 길을.

작성자소설가 이서진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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