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를 대체할 새로운 장애 분류 ‘ICF’ > 지난 칼럼


장애등급제를 대체할 새로운 장애 분류 ‘ICF’

[기고]장애 판정의 새로운 페러다임 ICF

본문

요즘 장애계에서 ICF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대안으로 ICF의 적용을 말하기도 한다. 또 정부도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바꾸겠다며, 연구용역을 주었고 ICF를 적용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체 ICF란 무엇이며, 우리의 현실에서 사용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즉, 뇌성마비나 뇌졸중으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귀가 안 들리거나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 자폐증이 있는 장애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 신장·폐·간·심장의 기능이 안 좋은 장애인 등 병을 앓고 있거나 병으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 법률도 그렇다. 법률에서 이렇게 정하는 이유는 복지급여를 제공할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다. 또한 복지급여 제공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등급을 부과한다. 질병이나 그 후유증이 더 심하면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1등급에서 6등급까지 나누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의 기준을 만들고 등급을 부과하는 이유는 복지급여를 제공할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행정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활도 불편하고 돈도 많이 드는 다른 질병, 예를 들면 암환자나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은 장애인이 되면 안 되는가?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 외부 출입도 힘든 사람들은 장애인이 되면 안 되는가? 또한 활동보조지원을 받을 수 있고 앉아서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지체 1급 장애인이 활동보조지원도 못 받고 중도장애로 인해 점자교육도 못 받은 3급 시각장애인 보다 장애가 더 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1급 장애인이 3급 장애인 보다 손상의 정도는 더 심하겠지만 사는 형편이나 삶의 질이 정말로 더 안 좋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대안이 확 떠오르지는 않지만 뭔가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외국 장애인들도 똑같이 했다. 외국도 복지 급여 제공을 위한 행정문제 때문에 현재 우리와 같은 장애인 정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WHO(세계보건기구)에 모여서 새로운 대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WHO의 공식적인 장애분류체계는 1980년 이전까지는 없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는 질병분류체계인 ICD(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만 존재하였는데, 이는 의료적 분류에 따른 질병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재활전문가들은 손상(Impairment)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상의 중요도 즉, 기능적 결과와 사회적 결과를 함께 고려하면서, 이를 통합하여 개별적인 분류틀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였고, 1973년부터 비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논의가 계속되었고, 이에 대한 결과로 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의 제1판이 1980년에 발간되었다.

ICIDH는 신체적 차원에서의 손상(Impairment)이 개인적 차원의 장애(Disability)를 유발하고, 이는 사회적 차원의 사회적 불리(Handicap)을 만든다는 논리다. 이처럼 신체적 차원의 손상에서 벗어나 신체적 차원이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장애 개념을 따르게 되는 경우에는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결과를 중심으로 장애를 설명하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ICIDH가 WHO의 공식입장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사회적 책임론이 활발하게 제기되면서 복지 급여의 확장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ICIDH가 WHO의 공식입장으로 유지되면서 세계 각국의 장애인으로부터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정말로 인과모델에 따라 손상(Impairment)→장애(Disability)→사회적 불리(Handicap)의 한 방향으로 흐를까? 손상이 심하지 않은데 사회 참여가 배제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가마다 개인의 손상의 정도는 같은데 사회 참여 정도가 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Handicap 등 너무 부정적 용어만 사용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을 더 안 좋게 하는 것은 아닌가? 환경요인에 대한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하지 않은가? 등과 같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WHO는 1993년 ICIDH의 개정을 위한 절차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1997년 3월까지 수년간 여러 제안을 모았고, 이후 협의 과정을 통해  ICIDH개정안이 2001년 5월 제54회 WHO 총회에 정식으로 제출되어 의결되었다. 의결되면서 명칭을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기능, 장애, 건강에 대한 국제 분류)로 수정하였다. ICF는 장애에 대한 역동적 설명과 긍정적 용어의 사용을 위한 세계적 노력의 결과였다.

ICF는 장애에 대한 개별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통합을 위한 시도였다. 또한 국제질병분류 체계인 ICD-10과 병행해서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ICD-10은 질병의 진단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ICF는 기능(Function)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ICF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되어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건강에 관련된 요소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ICF는 인간의 기능과 기능의 제한 요소들의 연관된 상황을 묘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ICF의 장애는 개인의 건강상태와 개인요인, 그리고 개인이 살고 있는 환경을 대변하는 외적요소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건강상태에 있는 동일인물이라 하더라도 환경이 다르면 그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방해요소가 있거나 촉진요소가 결여된 환경은 개인의 활동, 참여에 제약을 가한다. 반면 촉진요인을 가진 환경은 개인의 활동, 참여를 강화시킨다. 사회는 방해요인(예를 들면, 접근이 어려운 건물)을 만들어 내거나 촉진요인(예를 들면, 보조기구)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의 수행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즉, 장애는 손상, 활동제한, 참여제약에 관한 사항을 모두 기술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건강상태(손상, Impairment)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기능은 신체의 기능과 구조, 활동, 참여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기능들은 건강조건과 상황적 맥락에 속하는 환경 요소(사회의 인식, 건축물의 장애요소 정도 등)와 개인적 요소(성, 연령, 인종, 습관, 대처양식 등)의 양 측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ICF를 실제 생활에서, 우리의 복지 영역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ICF를 적용할 경우 현재와 같이 건강조건, 즉 손상의 정도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요소와 개별적 요소를 모두 합쳐보고, 이를 토대로 신체 기능과 구조는 어떤지, 활동은 어떤지, 참여정도는 어떤지를 기술하는 것이다. 즉, 지체 1등급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범주화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ICF는 문자와 숫자 조합 방식을 이용한다. ⓐ①②③④.㉮㉯㉰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각각은 한 자리를 사용하고, ②는 두 자리를 사용한다. 이처럼 (.)앞에 4단계가 사용되는 것을 상세판이라 하며, 이는 ICF에 능숙한 전문가들이나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앞에 2단계만 사용하는 경우를 요약판이라고 하는데, 실생활에 응용하거나, 설문조사 및 건강 상태 평가에 사용할 경우에 사용한다. 즉, 요약판에서는 ⓐ①②.㉮㉯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다. ⓐ는 신체기능, 신체구조, 활동과 참여, 환경요인을 표시하는데 문자 ‘b’ ‘s’ ‘d’ ‘e’가 이용된다. ①은 각 장을 표시하는 것인데, 신체기능에는 8개, 신체구조에는 8개, 활동과 참여에는 9개, 환경요인에는 5개의 하위 카테고리가 있다.

예를 들어 b2는 ‘감각기능 및 통증’, e5는 ‘서비스, 시스템 및 정책’에 관련된 것이다. 그 뒤에 오는 ②은 2단계 구분으로 두 자리를 사용한다. b210은 ‘시각기능’과 관련된 것이고, e560은 ‘미디어 서비스, 시스템, 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인 ③, ④는 각각 한 자리 숫자로 표시되며 더 상세히 기술하는 것이다. s2102는 시력의 질에 관한 사항이고, 한 단계 더 나아가 s21021은 색깔을 구별하고 맞출 수 있는 시각 능력에 관한 것이다. e5601은 미디어 시스템에 관한 것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한정 자막을 제공할 필요, 신문 혹은 여타 출판물의 점자판, 텔레텍스트의 라디오 송신 등이 포함된다. 환경적 요인은 네 번째 단계가 개발되지 않았다.

(.)이후는 평가치라고 하는 것인데, 한자리 또는 두 자리 이상의 숫자로 구성된다. 어떤 코드를 이용하든 적어도 하나의 평가치가 그에 수반되어야 하며, 평가치가 없을 경우 코드는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제1평가치(㉮)는 각각의 구성요소에 있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0은 이상 없음, 1은 경도이상, 2는 중도이상, 3은 고도이상, 4는 완전이상을 나타내며, 8은 분류되어 있지 않음, 9는 적용불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s21021.2는 색깔을 구별하고 맞출 수 있는 시각 능력의 중간정도의 손상을 뜻하는 것이다. 환경 요인의 경우에 제1평가치는 환경의 긍정적인 역할(촉진역할) 정도 혹은 부정적인 영향(방해 역할)의 정도를 가리키는데 이용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0에서 4까지 사용한다. 촉진역할을 할 때는 (.) 대신 (+)가 표시된다. 즉, e5601+1은 경미한 미디어 시스템이 마련되어 촉진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고, e5601.3은 심한 상태로 미디어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방해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평가치는 각 영역별로 3차까지, 즉 ㉯, ㉰까지 사용될 수 있다. 신체구조 평가치의 측정기준을 보면, 제1 평가치(㉮)는 손상의 정도, 제2 평가치(㉯)는 손상의 특징, 제3 평가치(㉰)는 손상의 위치를 나타낸다.

또한 개인의 특정 상황을 표현할 때는 하나의 부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서 상황 묘사가 가능하다. 신체 기능과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참여와 활동을 설명하고, 환경 요인을 설명함으로써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평가들도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하면 행정적으로 또한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현재와 같이 신체적 건강조건만 살펴보고 범주화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장애 분류 및 등급 방법은 장애 내 불평등을 유발하고, 인간을 고기와 같은 등급으로 기술하는 등의 비인간적 측면이 너무 강하다. 또한 상황마다 손상으로 인한 장애의 정도, 즉, 활동이나 참여의 정도가 다를 수 있는데 이를 적절히 반영 못하는 한계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ICF의 장애 정의일 수 있다.

전 세계는 ICF의 적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장애인 통계도 ICF에 기반을 둔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ICF를 너무나 어렵고 다른 나라에서나 쓰는 개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우리가 사용할 개념으로 가까이 가져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성자이동석 성공회대학교 박사과정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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