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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도 모르는 경찰 문제 있다

형사사법 절차상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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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 절차상의 장애인 인권침해는 장애 유형별로 다양한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형사상 권리가 아닌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나 인권침해로 한정해 볼 때,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상의 ‘정당한 편의제공’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당한 편의’란 장애 유형별로, 이를테면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자료를 주거나 문자로 된 자료나 문서를 음성으로 변환해 준다든지 하는 편의, 그리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수화통역사를 붙여 준다든지, 그리고 지체장애인에게는 이동 편의를 제공한다든지 하는 측면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편의제공의무는 말 그대로 ‘편의’ 제공의 차원일 뿐이며, 형사 절차에서의 ‘인권침해’는 아직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가령, 발달장애인이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거나, 혹은 분명 범죄 피해를 받았음에도 가해자가 무죄 방면되는 일들, 그리고 형사 절차의 과정 중에서 겪게 되는 무시와 차별, 협박 등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인권센터에 접수되는 형사 절차상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보면 발달장애인이 도움을 받지 못해 단독으로 수사를 받아 제대로 진술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에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형사 절차상의 인권침해 사례와 현장에서 실제로 겪고 느낀 점들, 또 ‘원주 귀래 사랑의 집’ 피해자들에게 제공되었던 조력을 살펴봄으로써 장애인의 형사 절차상 인권옹호의 길을 함께 생각해 보자.

   
▲ 지난 12월 2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형사 사법 및 행형절차 과정상의 장애인 인권침해 현황과 대책' 토론회


발달장애인의 형사 절차상 인권침해

사례 1. 지적 2급, 31세 남성 A씨
한 여중생이 다운증후군 장애인 A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에서는 무작정 A씨가 근무하던 인근의 보호작업장을 방문해 근로하는 장애인들을 한 줄로 세우고 지목하도록 했다. 당시 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약 한 달 뒤 길에서 A씨를 만난 여중생이 A씨를 지목함에 따라 경찰이 출동했고, 현장에서 연행해 A씨를 단독으로 조사했다. A씨는 지적장애가 있어 제대로 진술을 하지 못했고, 진술 중 엉뚱하게 범행을 시인하는 진술을 했다. 담당형사조차도 진술을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하는지 난감해했지만, 팀장이 ‘그냥 대답한 대로 써서 처리해라’라고 지시했다. 결국, 재판까지 가서 무죄가 선고됐으나 과정상 문제점이 드러났다.

사례 2. 지적 3급, 21세 남성 B씨
B씨는 집 근처 마트 앞에 내레이터 모델들이 춤추는 것을 좋아해 자주 구경을 갔으며, 해당 마트 점장도 지적장애인임을 알고 B씨를 잘 대해줬다. 그런데 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직원이 B씨를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해 음향기기를 훔치려 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갑까지 채워가며 B씨를 체포했고,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불리한 진술을 유도하는 등 B씨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이후 부모에게 알리고 점장이 상황을 설명한 뒤 신고를 취소해 무마되는 듯했지만, 다시 출석요구서가 집으로 와 경찰 출석 후 진술했다. B씨의 부모는 손목에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수갑을 채운 행위와 단독으로 수사받게 한 점, 또 혐의가 없음에도 경찰서로 불러 불안함과 공포심을 느끼게 한 점에 대해 분노했다.

사례 3. 지적 1급, 18세 남성 C씨
C씨는 커튼이나 식탁보 등에 부착된 ‘레이스’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런데 하루는 20대 여성이 입고 있는 치마의 레이스에 얼굴을 비비는 일이 일어났고 해당 여성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워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C씨의 어머니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적장애인임을 설명하고 고소를 취하해 달라 사정했으나 피해자는 처벌의지가 확고했다. 담당 형사까지 나서 설득했으나 피해 여성은 성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 주사를 맞는다면 취하하겠다고 했다.

사례 4. 지적, 남성
타인에게 장기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비인간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살다가, 인권센터가 구조해 생활시설로 인계한 사례다. 재판에서, 상대방 변호사가 ‘지금 생활하는 곳이 어떠냐. 가족 같으냐’라고 묻자 ‘예’라고 답했고, ‘그럼 그때 당시 생활했던 곳은 어땠냐, 가족 같았나’라고 묻자 역시 ‘예’라고 답했다. 시설 측 담당 직원이 항변하려 했으나 판사에 의해 제지당했고, 결국 가해자는 무죄가 선고됐다.

위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문제점을 꼽아 보자면 ▲발달장애인의 외관이 남들과 다르고 언어 구사가 유창하지 못하다고 해 범죄자로 지목되는 예가 많고 ▲체포나 수사 과정상 얕보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실제로 나이와 상관없이 수사관이 반말을 한다). ▲또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체포되거나, 조력인 등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조사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리고 부모 등에게 통지를 해 준다고 해도 실제 도움은 받지 못하거나 제지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수사관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진술조서에 기록이 남으면 나중에 뒤집기가 쉽지 않으며 또 뒤집는다 해도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진술까지도 의심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해자라도 자신의 범행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거나 피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가 많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발달장애인들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행형 단계 즉, 교도소에 수용돼 형을 집행 받는 단계까지 모든 절차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는 일부가 겪는 예외적인 경우나 별일 아닌 부분적 문제로 볼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큰 도움 못 되는 현행법

현행법상 형사소송법에는 신뢰관계자의 동석 규정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163조 제2항에는 ‘법원은 범죄로 말미암은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 재판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또 제244조의 5에는 ‘피의자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전달할 능력이 미약한 때,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는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직권 또는 피의자·법정대리인의 신청에 따라 피의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위 신뢰관계자의 동석 규정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동석’에만 그쳐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데 그치지, 실제로 진술을 구체화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때가 많고, 또 신뢰관계인이 전문성이 떨어진다든지, 부모 등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사람이면 오히려 방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진술은 수사관이나 법관에 의해 주도될 뿐이고 담당자의 선입견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44조의 5는 직권 또는…신청에 따라…동석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사법기관의 직권이나 재량에 의해 동석하게 되어 있고, 또 ‘신청’에 의하게 돼 있지만 이러한 신청권이 있다는 사실을 장애인 당사자에게 얼마나 성의 있게 설명해 주고 의사를 확인하는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보조인 혹은 조력인의 도움을 ‘신청’에 따라 ‘재량’으로 제공하게끔 되어 있는 것은 문제다. 비장애인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데 심리적 불안상태에 놓인 형사 절차상의 장애인이 과연 어떻게 ‘신청’을 할지 의문이다. 그러므로 지적장애인 단독수사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10월 22일 개정된 장차법 26조 6항은 ‘사법기관은 사건관계인에 대하여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장애인에게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음과 그 구체적인 조력의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경우 사법기관은 해당 장애인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기를 신청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에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2013년 4월 2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조력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의무규정, 그리고 조력을 신청하면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장차법상에 도입됐다.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응해 도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 제도는 도입됐으나, 담당 경찰관들이 이러한 제도를 얼마나 숙지하고 있을지, 적극 적용할지는 실무를 경험하다 보면 그다지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현장의 경찰관들은 법규에 대한 지식이 상당 부분 제한적이어서, 법조문을 직접 보여주면서 조치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장차법 같은 특별법은 법률가들조차도 장애 쪽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면 생소할 따름이다. 이러한 규정은 특별법에 존속시킬 것이 아니라 형사 절차에 관한 중요한 법이니만큼 형사소송법에 편입시켜야 조금 더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진술조력인의 주먹구구식 운영

위와 같이 발달장애인의 형사 절차상 인권침해 해소를 위해서는 진술조력인 등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아직 이 진술조력인 제도는 제대로 구체화 돼 있지 않고, 실제 사례에서도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될 뿐이어서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다.

사례 1. 자폐성장애 2급, 17세 남학생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몸 곳곳에 담배로 지진 흔적까지 있는 학생이었다. 장애 특성상 말을 거의 하지 않는데, 어머니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학생을 몹시 채근하는 성향이 있다. 경찰과 접촉해 편의제공을 요구하고 진술조력인 선정과 조력 과정을 돕겠다고 제안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려 했으나 경찰의 반응은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당신이 대변인이라도 되느냐’는 식이었다. 그리고 상담소나 장애인 단체, 특수교육학과 교수 등의 진술조력인을 제안했으나 참견하지 말라며 엉뚱하게 정신과 의사를 조력인으로 불렀고, 경찰출석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특수반 교사를 조력인으로 불렀다. 그리고 경찰, 의사, 교사와 어머니가 한자리에 모여 피해자 진술을 했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어렵게 마련한 자리는 끝나버렸다.
아무런 원칙도 전문성도 없는 진술조사였다. 여러 사람의 귀한 시간만 뺏었던 것이다. 장차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법 규정만 들어왔다 뿐이지, 누가, 어떻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술을 조력할지는 전혀 구체화 돼 있지 않다. 물론 개인의 특성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할 것이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돼서는 안 된다.

   
▲ (사례1) 집단 학교폭력 탓에 담뱃불로 상처난 자폐성장애 학생 손등의 상처

사례 2.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피해자 신문조사
법학을 전공하고 장애인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오랜 경력을 쌓은 대학교수가 진술조력인으로 참여해 진술조사를 주도했다. 사전에 경찰 측과 미리 연락해 질문 내용을 공유하고, 질문내용을 그림카드로 바꾸어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진술조사는 2박 3일간 예정된 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됐고,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개인의 행동성향과 폭력피해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놀이형식의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충분히 친밀감과 신뢰가 형성되고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둘째 날 오후와 셋째 날 진술조사가 진행됐다. 또 진술조사에는 당시 함께 거주하던 그룹홈의 관리교사가 동석했고, 변호사가 자리를 함께해 중간마다 필요한 부분을 도왔다. 피해자는 그림카드를 골라내는 방식과 OX 카드를 선택하는 방식을 보조수단으로 이용해 진술했고 모든 과정은 비디오 영상으로 녹화됐다.

   
▲ (사례2) 원주귀래사랑의집 사건 피해자 신문조사 과정

완벽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좋은 선례로 남을 만한 진술조사였다. 조력인의 전문성과 장애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진술조사 방식, 또 충분한 심리적 안정의 제공과 변호사의 동석 등 배려가 돋보였던 진술조사였다. 이러한 방식의 조사가 보완되고 확대돼야 한다.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이것은 인권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들은 ‘진술조력인’을 어떻게 선정하고 양성할 것이며,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전문성을 함양하는 것과 어느 정도 같은 조건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드는 것, 그리고 점진적으로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연구 개발하는 일들이 따라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인권 기준 삼아야

지금까지 사례를 중심으로 형사 절차상 장애인 인권문제를 짚어보았다. 대부분의 약자 문제가 그러하듯 문제는 끊임없지만, 대응은 굼뜬 것 같다. 아마도 장애인인권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는 위의 내용은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논의가 체계적으로 구체화 됐는지는 의문이다.
생명의 가치를 수나 양으로 계산할 수 없듯이 인권의 문제도 보편적 다수인을 기준 삼고 기준 이하의 환경에 놓인 소수의 문제를 뒤로 미뤄둔다면, 이는 정의와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국가라 할 수 없다. 인권의 문제만큼은 가장 침해 받기 쉬운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야 진정한 인권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부분에 의해 결정되듯이.

 
 

작성자김강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간사)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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