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발달장애인과 함께 한 ‘알기 쉬운 자막’ 방송 제작 연구에 관하여 > 지난 칼럼


성인 발달장애인과 함께 한 ‘알기 쉬운 자막’ 방송 제작 연구에 관하여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 본 원고는 한국발달장애인연구소가 지난해 11월 20일에 개최한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자막’ 방송 효과 분석에 대한 사업 보고회 토론문을 다시 쓴 원고이다. 


 『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존 맥나이트, 1995.-

 

당신들에게 방송에 대하여 묻다

지난해 한국발달장애인연구소에서 진행한 성인 발달장애인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80%가 넘는 응답자가 방송에서 쉬운 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답해 이들이 방송용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소 측은 지난 4월부터 성인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알기 쉬운 자막’을 제작하고, 필자는 연구 진행자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성인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연구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연구소 관련 연구가 당신들과 방송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 온 것은 사실이나 그 연구가 겨우 당신들 입장과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당신들이 직접 방송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사람으로서 본 연구에 참여한 것이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또는 반신반의하든 발달장애인이 일천 여명 넘게 대학을 다니고 있고, 발달장애인 석박사가 배출되는 시대에 이런 연구는 오히려 늦은감이 있다.

더구나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전문가, 부모들이 모여 당신들을 위한 서비스로서의 방송 논의를 지나서 한두 명 걸출한 발달장애인이 곁으로 붙어서 연구에 참여하고 발표하던 초기 형식적 당사자주의를 벗어났다는 점,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팀을 만들어 공부하고 토론하며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은 기존의 1세대 당사자주의를 넘어 조직화, 의식화가 시작된 2세대의 당사자 주의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보적인 의의에도 당사자주의에 측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연구 주제가 여러 측면과 경로를 통해서 성인 장애인의 필요와 요구라는 점은 확인되어 왔지만, 연구 자체가 당사자들의 강한 요구와 문제 제기로 시작하지는 못했다는 점. 둘째, 당사자들의 연구 집단을 구성하고 설문조사 등으로 보충하고자 했지만 그 구성원이 성인 당사자들을 무작위로 구성하거나, 장애 특성별로 구성하거나 계층별, 계급별로 대표성을 살리거나, 방송(모니터링)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거나 특별히 방송을 많이 시청하거나 좋아하는 당사자들을 별도로 선발 구성하지 못해서 성인 당사자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셋째,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토론회 발표자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연구 진술의 분석과 구성에 집필자로 참여하는 학자로서의 발달장애인을 발견하고 참여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텍스트화 하는 작업에서도 참여하여 당사자의 관점과 입장을 관철하고 당사자의 언어로 이를 표현할 수 있는 학자와 전문가 발달장애인 발견과 견인이 필요하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매체를 가질 때 당신들은 강해진다

본 연구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지점은 방송 장르 자체의 목적, 그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9시 뉴스는 뉴스답게, 코미디는 코미디 프로그램답게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뉴스는 정보 전달에, 코미디는 웃음이 터지는 재미를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당사자에 있어 방송이나 미디어는 교육을 위한 도구이거나 동시에 교육의 결과를 확인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으로 보면 위험한 접근법이다.

매체가 의식을 구조화하는 도구로만 쓰였을 때 당사자의 주체성과 정체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 장르 목적 자체가 교육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의사만을 위한 전문 의학드라마를 만들거나 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용어로 대사를 구성하지 않듯이, 경찰 검찰만을 위한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수사 드라마를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려운 내용을 다양한 편집과 효과 보충 자료 등으로 쉽고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지 못하는 제작진이 비판을 받는다(미국의 대표 수사드라마 CSI가 유명해진 것은 법의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 구성과 특수효과 편집 등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발달장애인들은 방송 시청에 있어 그들의 이해력과 인지력을 외부 전문가, 부모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하는가? 본 연구에서 다룬 9시 뉴스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송 제작 의도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본 연구의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여러 미흡한 점도 보인다.
첫째, 본 연구에 방송 전문가, 방송 모니터링 전문가들의 참여가 거의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발달장애인의 문제에 식견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 방송 제작의 전문가들을 본 연구에 참여시키지 못하고 전문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큰 한계이다. 둘째, 해외의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고 연구하려고 경주한 것은 사실이나 여러 제약으로 인하여 보다 폭넓은 해외 사례나 문헌연구 또한 실질적인 매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물론 이 연구에서 방문한 미국의 경우에도 본 연구와 같은 것은 시도한 적이 별로 없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뉴욕시의 <Sprout Film Festival: making the invisible visible (2003년에 제 1회 Sprout Film Festival 개최되었는데 이 영화제는 비영리기구 ‘Sprout’가 프로그램을 짜고 후원한다. Sprout는 1995년 이래로 발달장애 분야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해왔다)>처럼 발달장애인이 제작하고 출연한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목표를 둔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신뢰할 때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본 연구가 중요한 것은 당사자주의를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당사자들이 아닌 전문가들의 간섭이나 개입을 최소화하며 그들의 분석과 토론을 평가하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 자세와 관점은 아직 확립된 것은 아니어서 여러 논쟁과 토의가 필요한 것이지만, 당사자의 장애를 ‘차이’로 인식하려한다면 유효한 자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상과 당사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이다. 그리고 이를 개발하고 해석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몫이다. 마치 우리가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하여 원도우 프로그램이 필요하듯이.

이런 장애인 당사자와 소통하는 인터페이스는 비약적인 쌍방향 디지털 방송 환경발전과 하드웨어개발로 인하여 더욱 현실적으로 가능해졌다. (스마트 TV, IPTV 등) 그러나 정작 전근대적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것을 운영해야 할 사람이다. 발달장애인에 비해 훨씬 오래전부터 방송 안으로 들어와 있는 수화통역마저도 여러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 현 방송 PD들의 인식 수준 아니든가? (2012년 11월13일자 주간 경향 ‘대선후보 TV토론, 이번에 다를까’, 수화통역을 하지 않도록 개선해야한다는 현역 PD의 인터뷰 발언)

기술보다 사람이 휠씬 차별적이며 반 인권적이다. 따라서 이번 소프트웨어적인 사례 연구들을 통해 기존의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연구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 문명을 이용하고 운영해야 할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양성할 것인가 하는 후속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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