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의 볼라드는 장애인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 대학생 기자단


대형 마트의 볼라드는 장애인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장애인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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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보험업을 15년째 하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 최익준 씨는 지난날 대형마트에서 겪었던 일만 생각하면 창피하고, 황당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2009년 어느 날, 최씨는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한 대형마트 1층에서 보험고객을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이용해 마트에 갔는데, 높이 40cm쯤 되는 대리석 말뚝이 마트 출입구를 빙 두르고 있었다. 말뚝의 틈은 걸어서 다니는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넓이였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채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망연자실하게 마트 출입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 한 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왜 그러고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고, 최씨는 그분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최씨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분은 그곳을 지나던 여러 사람과 함께 볼라드(대리석 돌멩이, 100kg가량)를 밀어 길을 넓혔고, 최씨는 출입구를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땅에 박혀있는 돌멩이가 아니었던 데다, 마트 사유지에서 벌어진 일이라 마트에만 얘기하면 금방 적절한 조처가 내려질 줄 알았고 신고는 하지 않았다.

   
▲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한 대형마트 출입구에 설치된 대리석 볼라드

이 같은 대형마트 볼라드의 장애인 이동권 침해 문제는 최씨 사례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이번 사례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다른 장애인들의 비슷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 같은 사실로 짐작하건대 2009년쯤에는 마트에서 쓰는 쇼핑카트 등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출입구를 볼라드로 촘촘히 봉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지난해 11월까지 대전에 있는 7개의 대형마트에는 주 출입로만 빼꼼히 열어놓은 볼라드가 설치돼 있었고, 이에 지역 언론에서 이 같은 문제를 취재·보도했다. 해당 언론사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대전편의시설설치시민촉진단(이하 촉진단)에 전화해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문의했고, 촉진단 측은 주 출입로를 120cm로 열어 놓은 상태에서 나머지 부분에 볼라드를 둘러쳐 놓았다고 해도 현행법으로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어 촉진단은 대전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이하 대전인권센터)로 이런 볼라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 문의해왔다.

인권센터는 회의를 거쳐 전반적인 위법사항을 점검한 결과, 대형마트에 설치된 볼라드(카트 반출방지용)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소방법’, ‘건축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구조물인 것을 확인했고, 그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대전에 있는 모든 장애인단체와 시민단체가 연대해 싸우지 않으면 이 사건이 해결되기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형 마트가 카트 반출방지를 위해 설치한 볼라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차별(비장애인처럼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없게 함) ▲시각장애인 사고 유발 ▲화재 등의 재난 발생 시 장애인의 대형사고 초래 ▲유모차 등 통행 방해 ▲미관 훼손 ▲모든 고객을 예비도둑으로 보는 시각이다.

대형마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재래시장을 잠식하고 자영업자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첨병 역할을 하면서 대형마트는 매년 엄청난 흑자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기네의 작은 자산(카트)을 지키기 위해서는 장애인나 일반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작태를 서슴없이(깊이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일) 저지르고 있었다.

대전인권센터는 위와 같은 초대형마트의 볼라드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10월 17일 대전의 50개 장애인 단체 등에 볼라드철거공동연대를 제안했고, 16개 단체가 참여의사를 보내왔다. 그 중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대전척수장애인협회,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인권센터가 공동대표를 맡고, 황경아 상임대표와 임석식 사무국장을 선출해 대전장애인볼라드철거공동연대(이하 공동연대)를 발족했다.

공동연대는 발족 후 활발한 활동을 벌여 지금까지 두 곳의 대형마트에 설치돼 있던 볼라드를 완전히 철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당 마트들은 볼라드가 장애인나 시민에게 그런 여러 가지의 피해를 주고 있는 구조물인 줄 몰랐다면서 철거 요청 공문을 받아보고 완전한 철거를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공동연대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대전시민을 우롱하는 볼라드를 완전히 철거하기 위해 2013년 1월 15일 마트를 항의 방문하고, 한 곳의 마트라도 계속 버티면서 철거하지 않으면 항의집회를 개시하고, 3월 중순에는 ‘카트반출방지용 볼라드 완전철거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고 관련법 개정을 위한 절차를 밟아 원천적으로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구조물은 설치하지 못하도록 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대전이 될 수 있도록 활동할 계획이다.  

 

작성자임석식(대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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