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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 복지와 효율, 그리고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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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하는 새봄이다. 이 땅의 "잔인한 4월"의 기운과 함께 생동하는 역사 변천의 힘을 감지하는 때도 바로 이때다. 민주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4·19의 몸부림 이후 4월은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조그만 변화의 조짐에서부터 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열정은 4월부터 신작된다.  "장애인의 날"이 4월에 자리잡고 있음은 우리의 복지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한 까닭에 새로운 변혁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영국에서 몇 달간 교환교수로 머물고 있을 매였다. 그곳 장애인 시설과 장애인이 직접 경영하는 목재공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의 공장장, 장애인 노동자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느낀 것이 있었다. 같은 장애인인 공장장과 노동자가 갖는 입장의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전자가 "자본"의 논리를 토대로 하는 "효율"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노동"의 논리를 토대로 하는 "복지"의 이념을 강하게 제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직업재활이니 장애인 고용촉진이니 운운하며 "일자리 마련해 주기"에만 치중, 소득보장과는 거리가 먼 제도적 장치로 그 허술함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영국인들의 입장 차이는 다소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평소에 쉽게 간과했던 한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나라4백만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되고 있는 장애인 고용촉진 사업이 과연 복지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다시 말하면 할당제니 의무고용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그 대상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그렇다면 대다수 나머지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용이 되는 자와 고용이 되지 않는 자와의 차별성은 고려되지 않고, 고용 자체에만 장애인 복지 사업의 역점을 둔다면 노동을 하지 못하는 나머지 장애인들과의 괴리는 점차 깊어진다. 설사 고용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속에서의 차별성 역시 있게 마련이다. 일반노동자들 경우에도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하면서 그 내에서 차별성을 두는데, 이러한 점들은 자본가의 측면에서 보면 양자간의 결합과 연대를 끊어버리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전체 장애인에 대한 시각에서 출발하지 않는, 정부 정책의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전시효과를 위한 홍보 차원의 사업들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고용촉진 사업은 현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사업의 내용과 방향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복지와 관련한 구도 하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생산과 분배라는 경제구도의 양 축에서 생산을 강조하는 성장학파의 논리와 분배를 강조하는 분배학파의 논리가 경쟁할 때 발전도상국의 나라들은 대부분 성장논리의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성장론자들은 "파이"(pie) 논리를 전개한다.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사회적 배려가 주어질 때 우리는 정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돼지를 키워서 잡아먹자"는 논리 하에 허리를 졸라매고 키우는 데 온갖 심혈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분배론자들은 이 논리에 반대한다. 돼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키우는 데만 정성을 쏟다보면 허기진 사람, 허리가 부러지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을 팽개치면 결국은 성장 자체에 위협이 온다는 논리다.
  양쪽 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주시해야 할 점이 있다. 이 두 가지 논리 중 "국민들의 요구를 진정으로 반영하고 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가", "돼지를 키우는 일에 적극 가담할 수 없거나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배려가 과연 있는가"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보다 나은 경제적 성장을 위한 효율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경제적 성장에 참여할 수 없거나 전혀 다른 면에 가치를 두고있는 자들에 대한 관심이 약화됨으로써 공동체적 삶의 지향성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구조 하에서 적절한 생산에 의한 공정한 분배 메커니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다. 중요한 것은 왜곡되거나 공정하지 않은 분배구조를 공정한 재분배 메커니즘을 통하여 수정해주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국가의 주요한 정책으로서 조세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은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흔히들 얘기하는 성장 후의 분배니 복지니 하는 논리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복지를 못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쉬운 예로 몇 조원씩 하는 탈세의 근원인 지하경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을 한 열매를 누가 따먹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불공정한 분배구조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다. 모재벌의 회장이 제 3야당의 당수로 나와 "내 개인 돈으로 아파트 값을 반값으로 해주겠다"는 공약에 한층 더 씁쓰레함을 느끼는 것은 극히 차별적인 분배구조의 취약성을 정확히 목격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여 그 많은 돈을 혼자서 끌어 모을 수 있었는가. 더구나 다같이 허리를 졸라맨 판에서 말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분배구조를 잡기 위한 조세정책이 새로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함께 공동체적 삶의 지향을 목표로 하는 복지정책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 가진 자의 효율논리만 따라가다 보면 능력 있는 자의 자기합리화를 뒷받침해 주는 결과만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나 때는 이미 늦다.     문제는 능력 있는 자를 위한 제도보다는 능력 없는 자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는 시각을 갖는 데 있다. 왜냐하면 능력 있는 자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능력 없는 자들은 사회구성원들이 책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사회적 배려가 주어질 때 무리는 정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는 가장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있으며 이 땅의 4월을 기리는 모든 이들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작성자조흥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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