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대한 장애인 자녀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글 > 대학생 기자단


학교폭력에 대한 장애인 자녀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글

[김형수의 세상보기] 대입을 준비하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드리는 조언

본문

『 아이의 장애가 어떤 것이든 건강한 아이처럼 사랑 받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아이 가 출생 시 건강하든 혹은 장애가 있든 그가 행복하 고 즐거운 가정에서 자란다면 그는 아주 쉽게 행복 을 얻을 수 있고 성인이 되어 만족할 만한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초기에 가족들과의 관계가 행복하면 교육도 쉽다 』(뇌성마비아 가족치료 중에 서, 낸시 R. 휘니 저)

 

학교 폭력을 막으려면 가정에서부터의 폭력부터 당장 멈춰야

우리나라에서 한 개인에게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히는 공간은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학교고, 또 다른 하나는 군대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의 공통의 특질은 대부분 ‘강제성’을 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선택한 ‘학원’에서는 그 공간 안에서 수강생들끼리 폭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원에 문제가 있으면 학생들은 아주 손쉽게 떠날 수 있음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간이 만드는 폭력의 속성 하나를 살펴볼 수 있다.

사실 폭력은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즉각적이면서 분명하게 의도를 전달하면서도 전달 받는 사람의 이의제기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이렇게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단기적으로 산출 가치가 높은 의사소통 방법이지만 산출가치가 높은 모든 단기 투자가 모두 그러하듯이 가장 높은 위험과 리스크, 부작용을 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폭력을 거부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폭력의 효과성 때문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쉽게 학습 되고 쉽게 중독되고 쉽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작금의 학생들의 학교 폭력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근절되지 못한 교사들의 폭력이 만들어 낸 나비효과이고 학습되고 전파된 결과로서 오히려 내성이 강해진 변종 바이러스 같은 변종 폭력성일 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므로 학교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의사소통 방법으로써의 폭력을 마치 바이러스를 박멸하듯 아예 모든 폭력을 원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 모든 폭력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의 자기결정과 선택을 무시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부터 이 폭력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보호를 이유로 자녀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을 하지 않고 작위적으로 판단하거나 폭력을 쓴다면 학교 폭력의 가해 학생들이 ‘그냥 장난이었어요’ 하는 상투적인 대답과 무엇이 다르며, 부모가 의사 소통 방법으로 폭력을 쓰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의사소통 방법을 쓰지 말라고 설득 할 수 있을까?

가해학생의 ‘장난’은 피해학생이 동의하거나 합의한 것이나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난이 아니라 폭력인 것이다. 이런 폭력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장애인 학생의 경우에도 자신보다 약하거나 자신보다 더 중증의 장애인 학생을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애인 자녀를 학교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면 당신들부터 그 어떤 경우에도 장애인자녀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문제행동 수정’이란 이름으로도. 부모님들부터 장애인자녀에게 폭력이외에 자기 결정과 선택을 위한 기회비용을 지불할 의향과 노력이 없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장애인에게 비폭력을 위한 기회비용을 지불한단 것인가?

부모부터 ‘장애’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도 학교생활에서 많은 괴롭힘과 놀림에 시달려왔다. 특히 사춘기를 보낸 중학교시절 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도 무척 힘들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그 당시, 부모님이나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당신들의 반응은 사뭇 의외였다.

부모님은 공감하고 분노하고 걱정하셨으나 전면에 나서서 막아주시거 나 보호해주시는 않았다. 부모님의 결론은 항 상 필자가 적극적으로 학우들을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부모님들이 보면 잘 용납이 안 될 수도 있겠으나 당신이 그렇게 하셨던 하나의 근거는 부모나 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매 순간 필자가 받는 놀림과 괴롭힘, 나아가 차별을 다 막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국에는 스스로 방어하고 설득하고 헤쳐오라는 뜻 이셨다. 부모님은 단지 그런 자기 방어력을 위해 필자에게 나의 장애를 스스로 긍정하도록 많은 정보와 설명과 격려를 해주셨을 뿐이다. 나는 자라면서 가족 안에서 측은한 장애인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로지 뇌병변장애를 가진 집안을 일으켜 세울 ‘막내아들’이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왜 비장애인 친구들이 나를 놀리고 괴롭히는지 지금의 신문 사설처럼 어린 나를 붙들고 참으로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런 놀림과 괴롭힘에 대한 대응방식까지 말이다. 결론은 놀림과 괴롭힘도 호기심과 관심과 악의적인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그에 따라 ‘분노’ 이외에도 다른 대응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후에도 친구들의 괴롭힘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그 놀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배우고 깨닫는 순간, 그러한 비장애인 학생들을 이해하는 순간, 나의 존엄은 내 스스로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았다. 내 장애가 내 고통과 열등감이 아니라 내 자신의 여러 면의 신체적인 물리적인 정신적인 일부분일 뿐이고, 내 인생의 일부분이고, 내 자긍심이며, 내 정체성이 되어갔다. 더 이상 스스로 측은하여 혼자 울지 않았다.

부모 스스로 장애에 대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장애를 가진 자녀 자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 자체가 자녀에게 폭력적이며 결국 그 감정은 부모로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존감이 무너진 부모는 가족 간의 소통에서, 장애인 자녀와의 의사소통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다.

장애를 긍정 받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 앞에서 끊임없이 불신과 좌절과 싸워야 하며 자기 자신을 부정해 야 한다. 그래야 부모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 기 때문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역시 자녀가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기 사는 지역에 장애인 복지관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땅값이 떨어 진다며, 미관을 해친다며 반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인 자녀를 두었다고 해서 장애감수성이나 인권감수성이 객관적으로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런 자각을 바탕으로 장애인 자녀에게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너를 차별하고 괴롭혀도 너와 함께 할 가족들이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 사랑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 가족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장애인 자녀에게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만들어 세상의 차별과 사람들의 괴롭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싸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애를 이해하고 비장애인의 고통도 이해하고 소통하며 정면 승부를 벌일 수 있도록, 장애인 자녀 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말이다.

폭력에 대한 부모의 감정이 아니라 당사자의 의견과 바람을 존중하라

장애인학생에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그 부모들은 감정이 폭발한다. 일반적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사과를 원하며 학교 차원의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필자는 그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다. 왜냐하면, 불거지는 학교 폭력은 일시적이거나 단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학생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아주 긴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에 그 심각성이 있다. 그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장애인이거나 장애를 가진 김형수란 학생이란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에 장애인학생이 있었을 뿐이고 누구든지 간에 약한 자는 누구나 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발적인 폭력사건은 어른들의 결정대로, 생각대로 해결해도 되겠으나 그렇지 않은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 학생이 두 번 다시 이런 폭력 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이고 학교로, 학업으로 제대로 복귀하는 것이며, 장애인학생의 폭력뿐만 아니라 해당 교실에서 아예 그런 상황이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폭력은 학생 개인의 인성의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평소에 부모님들이 장애인 자녀에게 스스로 자기 표현을 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잘 들어주고 있다면 학교 폭력이 장기화되기 전에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며, 평소에 자녀에게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해주고 인정해 준다면 큰 생채기를 입기 전에 자기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장애인 당사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의견을 존중한다면 가해자 학생 들도 전면에 나서서 자녀들을 물불 안가가리고 보호하는 명분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애인 자녀 부모님 당신들부터 자녀의 수많은 실패 앞에서도 당당하고 신뢰하고 대화하려는 기회비용과 의지와 노력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사회도 그러할 것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facebook.com/eduable, guerni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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