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고향, 제주도 가족여행 > 대학생 기자단


시아버님의 고향, 제주도 가족여행

[변미양의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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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어요. 아이들 여름방학이 되면 한번 가자고 전부터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거든요.

시아버지께서는 이제 연세가 칠순이 넘어 일흔둘이 되시지만,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시아버지께서 한국에 가신 건 겨우 서너 번뿐이거든요. 칠십 평생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적인 영향으로,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말을 배우지도 못했고, 할 기회도 없어서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바로 바다 건너 옆 조국을 가깝고도 멀게 만들었던 거죠.

그런데 몇 년 전에 초기 위암으로 수술을 받으시더니, 퇴원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고향 제주도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가고 싶다는 거였어요. 왠지 그 말씀만으로도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3년 전 처음으로 아들, 며느리, 손주들 데리고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오셨죠. 한번 길을 트니까 가기가 쉬워지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가족 모두 제주도에 다녀오게 된 거지요.

몇 년 전까지는 오사카와 제주도 간 비행기는 일주일에 몇 번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발맞춰 외국여행 수요가 늘고, 특히 한류 붐으로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오사카-제주 항공편수도 늘었답니다. 인터넷으로 가장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항공편을 찾았지요.

그런데 제가 8월 중순 항공편 예약을 하기 위해 두 달 전인 6월 말부터 좌석을 알아봤는데, 글쎄 웬만한 건 벌써 매진이 되어 있는 거예요. 가장 성수기인 때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역시 한국과 일본 도항 객이 예상을 넘을 정도로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요. 물론 가격을 걱정하지 않으면 여유 있게 선택할 수 있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이야 그럴 수가 있나요.

가족 다섯 명이 제주도로 출발. 식구가 여럿이니 짐도 꽤 되고 제 휠체어도 있어 이동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마음이 그리 홀가분한 건 아니고요. 사실 오사카는 베리어프리가 어느 정도는 갖추어져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저처럼 손이나 상반신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휠체어만 타면 이동이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그런데 막상 길도 모르고 익숙지 않은 제주에 가려니 과연 휠체어를 가지고 하는 게 편리할지 어떨지 판단이 잘 서지 않더라고요. 도로 사정이나 건물설비 등이 어쩔지 모르니까,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일단은 휠체어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고향의 베리어프리 체크를 겸하게 된 거죠.

항공편은 좌석도 좁고 서비스는 줄었지만 저렴하다는 LCC 비행기입니다. LCC 항공편이 많이 생기면서 얼마 전 일본에서는 비행기 내 통로에서의 휠체어 대응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제가 이용한 항공사는 공항수속 시나 탑승 시 휠체어 승객에 대해 배려 해 주더라고요. 비행기 안 통로가 좁아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안 되는 중증장애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제주공항 도착, 다음은 호텔까지의 이동. 사람 수도 있고 짐도 있으니 택시 한 대로는 무리였는데, 예약한 호텔에 전화를 거니까 승합차로 마중을 나와 주시더라고요. 리프트가 장착된 차량은 아니었지만 다행이죠!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갔어요. 신제주시라고 주변이 새로 정비된 곳이라 도로는 잘 닦여 있더라고요.

하지만 보도는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급경사. 휠체어가 그리 순조롭게 갈 수는 없었어요. 시아버지는 신호등이 없는 큰길에서 손을 들어 휠체어를 안내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이리저리 거리를 구경하며 가장 제주도다운 음식인듯싶어 제주도 흑돼지 오겹살 집에 들어가 맛있게 먹고, 또 차도 마실 겸 아이들도 좋아하는 세계 어디나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어요.

가게를 나올 때 화장실에 들르고 싶었는데 화장실은 건물 2층이라는 표시가 있더라고요. 복도로 나가보니 마침 계단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엘리베이터에 타고 2층을 눌렀는데 단추에 불이 켜지지 않는 거예요. 엘리베이터가 2층에는 서지 않게 되어 있는 거죠. 허둥거리다가 할 수 없이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제일 위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어요.

어이가 없었죠. 2층은 걸어서 다닌다는 건 상식일지 모르지만, 장애인에 대한 생각은 배제된 거잖아요. 씁쓸한 표정으로 그 건물을 나오려고 하는데 경비 아저씨가 부르시더라고요. 미리 얘기해 주면 3층에 있는 다른 사무실의 화장실을 알려줬을 텐데 하면서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구경도 하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조금은 낯설고 서툴지만, 가슴은 뜨거운 고향, 제주도에서의 가족여행. 솔직히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가 한국에 살던 15년 전과 비교하면 시설이나 설비 등 눈에 보이는 건 정말 많이 달라졌고, 장애인을 배려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아직 부족한 부분은 사람들의 오고가는 말과 정으로 채워주는 마음인 것 같고요.

그런데, 이건 그냥 지나가는 말이지만, 광복절 때 본 건데요. 한국에 시집와서 사는 일본 여성들이 위안부(성노예)에 대한 죄스러움을 일본정부를 대신해서 사죄를 한다는 내용의 뉴스였어요. 사실 제 마음이 좀 복잡하더라고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등 한일 간의 관계가 예민한 가운데, 역사청산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비행기 좌석이 만석이 되도록 활발하게 왕래하며 가까워지고 있는 양국 사이에, 마이너리티(소수자)의 입장에서 압력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희 시아버지도 식민지 때 일본 땅 오사카에서 태어나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어렵던 시기, 일본에 사는 한국사람, 재일교포라는 이유만으로 싸늘한 눈총을 받으며 아프게 차별 받으셨던 분이니까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말을 못 하시는 시아버지, 그런 시아버지가 이번에는 가는 곳마다, 제가 휠체어로 도움을 받을 때마다 “고맙습니다”라고 열심히 말씀하시더라고요. 국가 간에 풀어야할 응어리인데,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양국민간의 감정이 이용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작성자변미양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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