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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변미양의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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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시작됐습니다. 일본은 3학기제라서 한국과는 학교일정이 약간 다르지만, 연말연시 약 2주일의 간의 겨울방학, 가방을 팽개치고 아이가 놀러 간 뒤 성적표를 살펴보니 정말 말이 아니에요.

한국의 초등학교는 지금도 수우미양가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1에서 5까지 5단계로 평가하고 등수는 매기지 않아요. 5가 제일 높은데, 둘째 아이 성적표에는 2가 수두룩, 가끔 1도 있고, 지난번 성적표보다 더 나빠진 것 같더라고요.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저녁때 몇 마디 꾸중을 했지요. 그래도 듣는 둥 마는 둥, “네, 다음에는 열심히 할게요” 말은 잘하네.

12월도 일주일 남짓,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2년이 훌쩍 지나가네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은 성적표를 가져오지만, 이 12월에는 어른들의 생활, 경제, 삶을 좌우하는 정치의 성적표가 나왔네요. 한국에서는 19일 대통령 선거, 일본에서도 16일 총선거가 있었어요.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처럼 꺼져버리고 많은 난제가 그대로 남겨진 지금, 국민의 실망으로 반감만 반영된 선거결과가 나와 버렸습니다.

결국, 자민당은 국민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59.32%), 그 표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표를 얻었으면서도 전체 의석의 70%가 넘는 294석(장애당사자 의원은 한 명도 없어요)을 확보했고, 자민당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거머쥐었죠.

일본의 선거와 때를 같이 해서 열린 한국의 18대 대통령 선거부터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정치와 사회 구조 속에 더부살이하던 재일교포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강추위에도 아침 일찍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투표가 마감된 18시부터 사전출구조사에 의한 예상득표율이 전국 뉴스의 톱으로 다루어졌고, 무엇보다 일본의 투표율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은 75.8%라는 국민의 관심을 보도했어요. 3% 정도의 득표차이로 승패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만, 그것이 선거의 결과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 긴박한 투표와 득표 결과에 처음으로 참여한 재일교포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까요. 사실 일본 땅에 살면서 난생처음으로 조국의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한다는 역사적으로 의의 깊은 선거였지만, 결과적으로 투표를 행사한 재일교포는 46만 명의 유권자 중 8%를 차지하는 3만 7천명에 불과했다고 해요.

거기에는 면밀한 원인분석과 해결방안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절차의 번거로움이에요. 재일교포들이 투표하기 위해서는 제1단계로 재외공관(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가서 선거인등록을 해야 하고(7월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제2단계로 재외공관에 가서 투표를 합니다(12월 6일부터 10일까지).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재외공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분들에게는 접근권이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답니다.

물론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적극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겠지만, 특히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들은 역사적, 사회적, 교육적인 환경에 의해 한글을 읽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며, 그런 가운데 선거공약과 후보자의 정책을 개인적으로 입수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겠지요.

대부분 재외국민은 기껏 얻은 선거권이지만 높은 장벽에 의해 정보의 입수에도, 투표권의 행사에도 장애를 갖게 된 거죠. 비장애인들에게조차 장벽이 그렇게 높으니 장애인들은 오죽했겠어요. 그동안 조국의 정치 울타리 밖에 존재했던 재외국민에게 선언적인 의미만이 아닌 실질적인 의미에서 정치참가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과 시행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밤늦게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참 할아버지는 70여 년 평생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러 가셨어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신다는 것 같아요. “성적이 나쁘니 혼내주세요”라는 말이 목청까지 올라왔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아이스크림으로 할까, 피자로 할까, 케이크로 할까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그냥 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아쉬움은 많지만 지나간 건 돌이킬 수 없잖아요. 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그리고 다시 꿈꿀 수밖에요.

 

작성자변미양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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